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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4 (일)

[기자수첩] 中 바이오 빈자리,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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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유병훈 기자




“한국 바이오산업은 중국과 비교해 과학 수준이 비슷하거나 더 높고, 비용이나 속도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바이오 보안법(Biosecure act)으로 한국이 중국의 대안이 될 가능성이 큰 이유입니다.”

한 국내 바이오 기업의 대표는 지난 3~6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2024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에 참석하고 이렇게 말했다. 올해 바이오USA의 가장 큰 화두는 바이오보안법이었다.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바이오보안법이 시행되면 2032년 이후에는 미국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기업이 우시바이오로직스나 BGI 같은 중국 바이오 기업과 계약할 수 없다. 미국이 중국 바이오산업을 고립시키고 자국과 동맹국 중심의 바이오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한 법이다.

중국 바이오기업들은 최근 몇 년간 바이오USA의 한 축을 맡았지만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바이오보안법의 여파로 크게 위축됐다. 중국 최대의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처음으로 행사에 불참했고, 중국 기업들이 모인 중국관도 30~40개 기업이 뭉친 한국·일본·대만관과 다르게 18개 기업만이 자리 잡았다. 향후 글로벌 바이오산업 구도를 암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국 기업들, 특히 CDMO 기업들은 앞다퉈 “우시바이오로직스의 빈자리를 우리가 차지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업계뿐 아니라 첨단바이오비서관을 포함한 용산의 대통령실 인사들까지 행사장에 들러 “바이오 산업을 보건 안보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바이오보안법이 한국에 기회라는 점을 산업계와 정부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USA는 한국 바이오 산업의 취약점도 여실히 드러난 자리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바이오 산업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서 중국 시장이 필요한데,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게 마냥 기회라고 보기 어렵다”며 “한국의 바이오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한국 외부의 시각도 냉정했다. 인도의 엔젠바이오사이언스라는 CDMO 업체 관계자는 기자에게 “한국 CDMO 산업은 생산 규모가 압도적이지만, 항체 말고는 다양한 모달리티(치료 방식)를 생산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CDMO는 그래도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돼 사정이 나았다. 신약을 개발할 제약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이 더 희미했다. 일부 회사를 제외하면 인지도 높은 신약을 개발한 회사가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중소 제약사가 난립하면서 충분한 규모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적당한 매출 규모가 나오는 한국 중소 제약사들이 상속을 목적으로 추가적인 투자나 혁신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제약산업이 서구처럼 합종연횡을 통해 충분한 규모를 갖춘 몇개의 기업으로 재편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임상시험 때문에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기간이 점점 커지는 산업 특성상, 기업 규모가 커야 제대로 된 투자와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변수와 장애물을 거쳐야 할 문제지만, 바이오 산업이 향후 한국을 이끌어 갈 주요 동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정부와 업계가 적극 나서야 할 시급한 현안이기도 하다. 중국의 고립과 이탈이라는 초대형 변수가 한국 바이오 산업에 기회로 작용하려면, 업계 스스로 기회를 잡을 만큼 충분히 준비돼야 하기 때문이다.

유병훈 기자(itsyo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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