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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6 (화)

“공급 파트너일 뿐” 빅테크 큰그림 그릴때 부품사 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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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Chip)만사(萬事)

AI별들의 현장서 작아진 한국 위상

HBM 공급에도 시장 선도 역부족

삼성 등 AI 주도권 비전·전략 절실

헤럴드경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일 타이베이 국립대만대 종합체육관에서 한 ‘컴퓨텍스 2024’ 기조연설에서 하반기 출시할 AI가속기를 선보이는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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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지난주 반도체·전자 업계를 뜨겁게 달군 대만의 ‘컴퓨텍스 2024’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대만의 대표 테크 행사지만 PC 시장의 축소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걷다 AI 돌풍을 타고 화려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엔비디아, AMD, 인텔, 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CEO가 총출동해 컴퓨텍스, 더 나아가 대만에 대한 존재감이 급부상한 자리였습니다.

반면 약 4일간의 컴퓨텍스 현장에서 체감한 한국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초라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은 고성능 메모리를 공급하는 ‘부품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는 반도체 강국 한국은 왜 유독 컴퓨텍스에서 작아 보였을까요? 대만 컴퓨텍스 현장의 실감나는 뒷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늘 칩만사에서는 다소 씁쓸한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AI 별들의 현장서 한국은 딱 HBM ‘부품사’ 정도?=지난 4일 대만 현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HBM(고대역폭메모리) 공급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훌륭한 메모리 공급 파트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날 현장을 찾은 한국 기자들의 최대 관심은 단연 HBM이었습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을 언제쯤 납품할지가 관건이었죠. 이 자리에서 황 CEO는 삼성전자의 HBM 공급이 진행될 것이라며 현재 테스트 진행 중으로 세간 평가와 달리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HBM에 대한 한국 기자들의 잇따른 질문에 다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메모리 공급 파트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는 발언에서 볼 수 있듯, 엔비디아에 HBM은 자사 AI 가속기의 성능을 높여주는 하나의 부품 정도로 간주한 셈입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지난 30여년 간 ‘메모리 1위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졌음에도 대만 컴퓨텍스 같은 글로벌 행사를 단 하나도 키워내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동시에 PC 시대에만 머무를 것 같았던 대만의 급부상이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실제 대만의 ‘AI 저력’은 탄탄해보였습니다. ▷애플 주요 제품을 조립·제립하는 폭스콘 ▷글로벌 컨슈머 및 게이밍 노트북 시장에서 톱5에 드는 에이수스와 에이서 등 세트업체 뿐 아니라 ▷콴타 ▷기가바이트 등 AI 서버 제조 업체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만계 미국인을 CEO로 두고 있는 엔비디아, AMD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행사 내내 ‘원팀’을 강조했습니다.

▶엔비디아가 전 세계에 알린 ‘철학’...삼성에도 시사점=지난 2일 젠슨 황 CEO는 컴퓨텍스 개막 이틀 전부터 국립 타이완대학교 스포츠센터를 전체 대관해 약 6500여명을 대상으로 키노트를 열었습니다.

약 2시간 동안 이어진 키노트는 한 마디로 경외로웠습니다. 키노트 시작을 알리는 첫 영상부터 엔비디아의 비장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황 CEO는 영상에서 “모두가 우리가 GPU를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엔비디아는 그것보다 훨씬 더 이상이다”라며 이번 키노트의 기획, 제작 등에 아주 세세하게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연설 내내 AI 시대 속 엔비디아의 철학과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청사진에 대해 아주 명확하고도 실감나게 강조했습니다. 엔비디아의 AI 기술은 더이상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 세계 곳곳의 산업에서 실제 변화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엔비디아 AI 반도체가 활용되는 분야는 첨단 공장, 로봇, 우주, 생성형 AI, 게임, 디지털트윈, 미래예측기술 등 무궁무진했습니다. 황 CEO는 단 2시간 동안 수천명의 청중을 엔비디아의 철학과 비전에 공감하도록 했고, 매료시켰습니다.

젠슨 황의 연설은 국내 초격차 기술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만큼 AI에 대한 방대하고 다채로운 세계관을 공개적으로 전달한 적이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도 됐습니다. 삼성전자가 가진 세계 1등 메모리, 세계 2위 스마트폰, 글로벌 가전 등 그 저력은 분명합니다. 삼성전자도 AI를 강조하며 곳곳의 사업에 적용하고 있고, 개별 행사와 CES 등을 통해 AI 전략을 설명하고 있지만 엔비디아처럼 거대한 철학과 비전 등을 담은 메시지를 더욱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국내서도 컴퓨텍스와 같은 글로벌 테크 행사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글로벌 빅테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에 자사 철학을 알리는 무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삼성전자 반도체가 5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달 31일 약 2주간의 미국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미국의 주요 IT·AI·반도체·통신 관련 기업 CEO 및 정관계 인사들과 릴레이 미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 회장은 이번 미팅을 하면서 “모두가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잘 해내고 아무도 못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먼저 해내자”고 강조했습니다. 급변하는 AI 시대에 삼성만이 잘 할 수 있고 먼저 할 수 있는 전략과 비전에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있습니다. 김민지 기자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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