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io AL, LG아트센터 제공 |
[OSEN=장우영 기자] 배우 전도연이 딸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도연은 11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연극 ‘벚꽃동산’ 인터뷰를 진행했다.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고전을 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재창작한 공연이다. 전도연은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송도영 역을 맡았으며, 이야기는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났던 송도영(전도연)이 서울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은 그녀의 오빠 송재영(손상규)의 방만한 경영으로 실적이 악화되고, 그녀와 가족들이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아름다운 저택도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자수성가한 기업가인 황두식(박해수)이 그들에게 찾아와 몰락해 가는 기업과 저택을 보존할 방법을 제안한다.
전도연은 ‘벚꽃동산’ 출연 계기에 대해 “그동안 연극 출연 제안이 많진 않았다. 몇 번 있었는데 내가 무거운 걸 많이 하다 보니 연극에서는 나도 즐거운 걸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둡고 무겁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작품들을 제안받아서 고사를 했다”며 “‘벚꽃동산’ 책 역시 재미없게 읽어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사이먼 스톤이 연출한 작품을 스크린으로 보게 됐다. 그걸 보고 거기에 출연한 배우가 부러워지면서 나도 피가 끓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전도연은 “내가 작품적으로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K콘텐츠가 많아지고 글로벌해졌지만 나는 장르적으로 갇혀있고, 다양한 작품이 나오지 않아 갈증이 있었다. 그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고민을 오래 했는데 내 안에 내재된 걸 쏟아내고 싶었다. 사이먼 스톤이 연출한 작품을 보는 순간 에너지를 쏟아내고 보는 내가 그 에너지를 받고 있다는 걸 보며 피가 뜨거워졌다”라고 말했다.
워크샵 등을 통해 캐릭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연출을 맡은 사이먼 스톤과 의견을 주고받은 전도연. 그는 “송도영이라는 인물은 누구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당황스러웠는데 제일 이해가 안 된 건 나의 상처와 고통, 아픔을 딸들에게 표현하고 전가하는 부분이다. 일반적인 엄마들과 달라서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지만 자식들도 어느 순간 부모의 상처, 치부를 알게 된다. 송도영은 단편적으로 한 번에 보여서 불편할 수 있지만 살아가는 걸 보면 나도 겪고 있고 내 딸도 겪었을 수 있다. 관객과 대화할 때 ‘우리 엄마랑 닮았다’고 해서 큰일 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송도영이 아주 이해를 받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일타스캔들’을 시작으로 ‘길복순’, ‘벚꽃동산’까지, 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해오고 있는 전도연이다. 실제로도 딸을 두고 있는 전도연은 “사실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엄마를 잘 모르겠다. 내 엄마를 보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내가 생각하는 엄마라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보니 잘 모르겠더라. 두려움이 컸다. 나도 불안정한 인간인데 한 아이를 올바르게 키워낼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웠다. 내가 생각한 건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자’였다. 아이가 오히려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딸이 어떤 날은 ‘왜 엄마는 나 잘 때 미안하다고 하냐’고 하더라. 모르겠는 것 투성이어서 나도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아이와는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딸은 ‘일타스캔들’부터 보면 내가 나오는 걸 낯 뜨거워서 잘 못 보겠다고 하더라. 창피하다고 하더라. 그래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응원하고 존중한다. 내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지내고 있다. 실제로도 싸우고 말 안 하고 그러다가 문자나 편지로 화해하고 그런다.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모녀 관계다”라고 이야기했다.
연극 ‘벚꽃동산’은 오는 7월 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에서 공연된다. /elnino8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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