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개원한 5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 설치된 교통 표지판 너머로 본청에 걸린 축하 현수막이 보인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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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뒤흔들 ‘8석의 정치’
21대 국회 폐원 이틀 전인 지난 5월 28일 본회의에서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은 반대 111표로 부결됐다.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 개입 의혹 수사를 막기 위해 ‘반대 당론 채택’, ‘탈당 조치 압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표 단속을 한 결과였다. 22대 국회의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뚜렷이 보여준 ‘표 대결’이었다. 여당이 끝까지 챙긴 이 반대표는 22대 국회에서 108표로 쪼그라들게 됐다. 보수 성향의 개혁신당까지 설득해야 22대 국회에서도 111표를 겨우 유지할 수 있게 된다.
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은 ‘8석’ 관리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여권이 ‘100+8석’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개헌·대통령 탄핵 저지선이 무너져 22대 국회의 정국이 과연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21대 국회에서 행사한 14건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108석 중 8석의 의원만 국회 본회의 재의안 의결에서 찬성 쪽에 표결하면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된다.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의 재의결 요건을 채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다른 비쟁점 민생 법안들을 뒤로한 채 21대 국회에서 ‘무리하게’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을 강행한 것은 이런 22대 국회 상황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윤(비윤석열)계 의원들을 흔들어 여권에 균열을 내겠다는 사전 작업이었다. 비록 야권의 시도가 무산됐지만 22대 국회에서는 어떻게 판도가 바뀔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런 만큼 국민의힘은 22대 국회 후반기까지 어떻게 108석만으로 단일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전반기 국회의장에 오를 우원식 의원은 민주당 내의 의장 후보 선거에서 시종일관 “8석의 정치”를 강조하며 여당 의원들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서 8석이 이탈한다면 개헌, 그리고 만약의 경우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여권은 온갖 정치적 풍파에 시달리게 된다. 8석이 사생결단으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된 것이다.
위기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낮은 국정 지지율에서 비롯된다. 현재 20%대인 지지율이 만약 10%대로 추락하면 여당 의원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커진다. 황우여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여당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을 따라 20%대로 추가 하락할 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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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위기는 오는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전후해 닥쳐올 수 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출마 여부가 국민의힘 내부 권력 관계를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비윤’이 된 한 전 위원장이 대표로 선출돼 윤석열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윤-한 갈등이 친윤-비윤 갈등으로 비화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한 전 위원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 지지층의 출마 요구가 60%를 넘어선다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출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 소장은 “60대 이상, 영남지역 등 보수층에서 윤 대통령으로는 더 이상 여당의 지도 리더십이 한계가 있다며, 한 전 위원장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분석했다.
한 전 위원장이나 나경원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 비윤 정치인이 국민의힘 대표가 되면 ‘용산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비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여당의 운명은 지금과 같은 수직적 당정 체제를 벗어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며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오히려 이재명 대표 중심의 민주당에 위기가 넘어가게 된다”고 전망했다.
전당대회에서 또 다른 변수가 있다. 여당이 1인 대표체제가 아니라 집단지도체제로 바뀌는 방식이다. 대표 선거에서 떨어진 2, 3위의 후보가 최고위원이 되는 일명 ‘하이브리드 집단지도체제’를 황 위원장이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형식 한길리서치소장은 “국민의힘이 집단지도체제로 바꿔 한 전 위원장을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집단지도체제 내에서 윤 -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윤 대표 체제에서 윤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도 언급되지만 현실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엄 소장은 “지금 여당에서 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탈당이 여당으로서는 더 좋은 기회를 주겠지만 탈당이나 친윤 신당은 엄포에 불과하며 국민의 지지가 없이는 턱도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의원)는 “여당을 이탈했던 김무성·유승민 전 의원만 보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서 “이준석 의원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이유로 여당 의원들이 탈당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리가 만무하다”고 말했다.
오는 7월 전당대회 이후 또 다른 위기는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닥쳐오게 된다. 김상일 평론가는 “지방선거 국면으로 들어서면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때문에 지방선거 출마 예상자들의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쇄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 5월 30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서로 격려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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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석으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정국은 여당에는 늘 위기로 존재하게 된다. 지난 5월 28일 채 상병 특검법안이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된 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21대 국회 때 103석에서 출발한 국민의힘이 대선에 승리한 후 조금씩 회복한 게 113석인데, 지난 4월 총선으로 한순간에 108석으로 까먹었다”고 말했다. 여분의 8석으로 늘 위기상황을 맞아야 하는 여당의 비애를 토로한 것이다.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강공으로 8석 마지노선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다. 당론 제1호 법안으로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된 채 상병 특검법안을 발의했다. 8석의 이탈표를 적극적으로 공략해 여당을 뒤흔들겠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긴다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전면 개헌의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 개헌·탄핵 국회가 될 수 있을까
개헌·탄핵은 22대 국회에서 그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돌출될 수 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그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 정국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22대 국회 개원을 전후해 여야가 개헌·탄핵에 대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권 중진인 나경원 의원은 지난 5월 27일 당선인 신분으로 나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에서 4년 중임제개헌 논의 과정에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논의 필요성까지 언급했다가 다음날 곧바로 “대통령 흔드는 개헌은 저 역시 반대한다”며 태도를 바꿨다. 추경호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가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식의 문제 제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확고한 반대입장을 밝히자, 나 의원은 개헌에 대한 자신의 정확한 의사를 바로 잡은 것이다. 여권은 임기 단축 관련 논의를 야당의 개헌 선동 프레임으로 몰아붙였다.
야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22대 국회에서의 개헌안은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하면서, 2026년 지방선거 때 대선을 함께 실시하는 것이 골자다. 총선과 함께 2년 단위로 정권 평가 선거를 치르겠다는 안이다. 채 상병 특검안 뿐만 아니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한 김건희 여사 특검안이 ‘본회의 통과-거부권 행사-본회의 재의안 통과’라는 수순을 만약 거친다면, 특검 정국이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치게 된다. 그 결과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분출하는 상황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엄 소장은 “지금은 개헌론이 때 이르고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만약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폭락하고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온다면 이런 식의 개헌안도 윤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상돈 교수는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에 회의적인 시각을 피력했다. 이 교수는 “야당은 수도권 총선에서 늘 이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는데 여당은 대선에서나 겨우 승리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이런 거대 야당이 내각책임제를 선택하지 않고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을 선택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복잡한 역학 관계 때문에 권력 구조 변화를 포함한 개헌이 그렇게 쉽게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 정당의 특성상 개헌을 위한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홍형식 소장은 “보수 정당은 윤 대통령에 반대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지도자가 오면 재결집하기 때문에 다음 대선 때까지 108석의 단일대오가 무너지는 일은 쉽게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헌이든 탄핵이든 여권의 8석 균열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정치평론가)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개헌 의제를 던지는 등 개헌론이 나오고 있지만 개헌 특위는 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적극적인 의지가 없는 한 여당의 수용 가능성과는 별도로 큰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5월 30일 22대 국회 첫 의원총회를 마친 후 계단을 오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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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론은 여당 내에서 금기사항에 속하지만 야당은 솔솔 바람을 넣고 있다. 지난 5월 29일 21대 국회 마지막 날 민주당 최고회의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부적절한 전화 통화가 박근혜 정권 탄핵 때 태블릿PC처럼 윤석열 정권 탄핵의 스모킹 건이자 트리거가 될 것인지 온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거사를 환기하며 정 최고위원은 “탄핵 열차가 기적소리를 울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다음날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하고도 위험한 사안을 민주당은 너무나도 가볍게 취급하고 있다”면서 탄핵에 대한 거부감을 피력했다.
민주당이 22대 국회 개원 후 추진 중인 당헌·당규 개정안도 탄핵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당대표 사퇴 관련 개정안에 대통령 궐위 등 국가 비상상황 발생 시에 대해서도 대표 사퇴를 유연히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탄핵 국면으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엄경영 소장은 “만약 한 전 위원장 같은 비윤 지도체제가 들어서더라도 특검은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어도 탄핵의 경우 보수층의 반대로 쉽사리 추진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돈 교수는 “야당이 탄핵이나 개헌을 강공으로 밀어붙이면 민심이반이라는 역풍을 가져올 수도 있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형식 소장 역시 “탄핵이라는 국면은 지금의 민주당이나 야권 지지율로는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보수층의 탄핵 반대보다 두 배 이상의 탄핵 지지 찬성률이 나와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 야당 지도자의 사법리스크
22대 국회가 거대 야권에 기회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거대 야권 역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라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월 총선의 야권 압승으로 사법리스크는 다소 위험 수위가 낮아진 듯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조국 대표의 대법원 판결은 일정대로 내려지겠지만, 이 대표에 대한 법원 판결과 검찰의 추가 수사가 안개 속으로 접어든 형국이기 때문이다. 엄경영 소장은 “야당의 사법리스크는 이번 총선으로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보았다. 홍형식 소장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 동안 논란이 되다가 나머지 1년 대선 국면에서는 사법 절차가 중단되는 상황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사법리스크 국면 자체가 야당의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 또는 윤 대통령 탄핵을 불러오는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야당으로서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하기 전 대선을 치르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돈 교수는 “윤 대통령은 4월 총선 이후 여기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굳힌 것 같다”면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22대 국회에서 제로섬 게임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탄핵론과 개헌론에 밀리지 않으려는 여권과 의석수로 여당을 몰아붙이려는 야권의 힘 싸움이 이미 22대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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