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는 사람은 말이 있다
제22대 국회가 시작됐다 21대 국회의원 상당수는 지난 29일 임기를 마치고 여의도를 떠났다. 국회의 선수 교체기, 스포트라이트는 새로 구성된 국회에 쏠리지만 ‘떠나는 사람은 할 말이 있다’. 지난 4년간 한국 정치를 최전선에서 경험한 이들의 말에 21대 국회의 명암과 22대 국회에서 기대할 변화의 단초가 담겼다.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여의도 밖에서 또다른 정치인의 길을 시작하는 이들의 말을 들었다.
제22대 국회가 시작됐다 21대 국회의원 상당수는 지난 29일 임기를 마치고 여의도를 떠났다. 국회의 선수 교체기, 스포트라이트는 새로 구성된 국회에 쏠리지만 ‘떠나는 사람은 할 말이 있다’. 지난 4년간 한국 정치를 최전선에서 경험한 이들의 말에 21대 국회의 명암과 22대 국회에서 기대할 변화의 단초가 담겼다.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여의도 밖에서 또다른 정치인의 길을 시작하는 이들의 말을 들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9일 국회 본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21대 국회 의정활동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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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22대 국회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는다면 정의당의 존재 여부가 아닐까. 녹색당과 연합한 정의당은 지난 4·10 총선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2.14%를 받아 최소 득표율 3%를 넘지 못했다. 당의 얼굴이던 정치인 심상정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0석’ 결과지를 받아든 정의당은 소속 의원이 없는 원외 정당이 됐다.
절망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22대 총선에서 서울 마포갑 지역구에 녹색정의당 후보로 출마했고 8.7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에겐 낙선 직후 3일 동안 ‘후원금 폭탄’이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 4년 정치인 장혜영의 깃발은 언제나 약자 곁에 있었다. 2022년 4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촉구하며 삭발을 감행했고,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실종된 지난 총선 국면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 국회의원’으로 소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장 의원은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 날인 지난 29일 국회 본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치적 다원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준으로 볼 때 21대 국회에 대한 평가는 ‘마이너스 1점’”이라고 했다. 이어 “정의당은 모두가 퇴보할 때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위해 자리를 지켰다는 점에서 자긍심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정의당 원외 퇴출’이란 총선 결과에 대해선 “양극단의 정치 지형 속에서 정치 노선을 분명히 정하지 못한 점을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향후 계획을 묻자 “총선에서 발견한 가능성을 처음부터 직조해 나가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답했다. 그는 22대 국회의원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로 “180명 국회의원이 한 명 같은 의정활동을 하면 안 된다”며 “의원 300명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내가 용기 내지 못함으로써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질 수 있는 시민의 존재를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1대 국회를 100점 만점으로 평가해달라.
“정치적 다원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준에서 봤을 때 21대 국회에 대한 수치적 평가는 마이너스 1점이다. 4·10 총선 직전 이뤄진 공직선거법 개정은 결국 비례대표 의석수를 1석 줄이는 것으로 귀결됐다. 응답자의 70%가 비례대표 증원을 찬성한 국민 공론조사 결과와 정확히 배치됐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꼽는다면.
“임기 마지막 날이자 새로운 임기를 이어갈 수 없는 지금이 가장 아쉽다. 당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원내 제3당이자 대표 진보정당이라는 위상을 가졌던 정의당이 원외에서 다시 일어서야 하는 상황이 가장 도전적이면서도 또 아쉽다.”
-정의당의 성취는 무엇이었을까.
“두드러진 입법 성과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다. 입법 운동을 시작한 분들도 정의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씀을 주셨다. 다만 원내 정당의 존재 이유가 단순히 법안을 만드는 것에만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정치 현장이라고 여기지 않는 곳들을 찾아 왜 이 현장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연결되는지 끊임없이 설명해온 것도 성취였다. 특히 21대 국회에서 퇴보한 가치 중 하나가 성평등이라고 볼 때, 대단히 전진하지 않더라도 정의당이 그 자리를 지킨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의원으로서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
“정치를 시작할 때 국회의 마이크가 ‘나’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이들을 대변하고 싶었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나를 닮은 정치, 나를 국민으로 인정해주는 정치가 가능하단 걸 알려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다.”
-국회 폐원을 한 달 앞두고 ‘10대 법안 입법 촉구’ 천막 농성에 돌입한 이유는 뭔가.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지난 28일까지 총 27일간 농성을 진행했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세상을 바꾸고 더 낫게 하는 것이란 점에서 끝까지 싸우고 싶었다. 정권 심판 바람을 타고 야권이 많은 의석을 얻었지만, 시민의 실제 삶이 나아지기 위해선 구체적 의제의 진전이 있어야 한다. 요구했던 10개 법안 중 4개가 본회의에서 다뤄졌다. 나머지 6개는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한 정당의 승리가 과연 시민의 승리인가 하는 숙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9일 국회 본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21대 국회 의정활동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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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총선 패배 원인을 꼽아본다면.
“결과론적인 평가는 많이 나왔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가 담긴 방향의 씨앗을 가진 논의는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양극단의 정치 지형 속에서 정의당의 정치 노선을 분명하게 정하지 못했다. 그 불분명함이 유지돼 온 구조적 원인을 냉정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다당제의 제도화를 이루려 했지만 실패했다. 위성 정당이란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대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22대 총선에서 위성 정당 사태는 또 반복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정부·여당 견제와 양당제 견제 두 역할이 동시에 주어졌다. 각자가 가진 이견을 서로 존중하면서도 내부에서 치열하게 토론했어야 하는데 그걸 너무 두려워했다.”
-정의당 안팎에선 소수자·페미니즘 등 ‘소수자 정치’ ‘정체성 정치’에 치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는 되묻고 싶다. 그럼 진보정당이 페미니즘을 버렸어야 했나.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장혜영·류호정으로 대표되는 어느 한 단면을 주목하려면 ‘배진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란 질문도 함께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소수자 정치란 다섯 글자에 사회적 약자의 삶을 전부 가둬버리는 ‘그 정치’가 진짜 문제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서울 마포갑에 출마해 8.78% 득표율을 얻었다. 이 숫자의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나.
“한 번의 패배에 굴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사실 늘 궁금했었다. 나는 이런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시민들도 과연 같은 마음일까. 이번 총선 결과로 그 답을 어느 정도 얻은 것 같다. 정치를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로 받아들였다.”
-거대 양당 체제에서 진보정당의 독자 생존법은 무엇일까.
“이것이야말로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가 필요한 문제다. 우리가 마주한 모든 객관적인 상황이 양당의 한쪽 편에 서지 않으면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할 수 없다는 명제로 수렴한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모순이다. 양당에 기댄 정치는 기생 정치이지 독자 정치가 아니다. 독자적 진보정치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선 ‘한국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정치는 무엇인가’라는 열린 질문을 던져야 한다.”
-22대 국회에선 페미니스트 국회의원이 보이지 않는단 지적이 나온다.
“임기 초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가해자·피해자가 싸우는 형국이 지속하면서 큰 변화가 찾아왔다. 민주당이 성평등 정당을 표방하며 형성해온 페미니즘 전선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이후 닥쳐온 퇴행은 정의당만으로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최소한 깃발만은 지키고 서 있겠다는 심정으로 버틴 것 같다. 그 퇴행의 결과가 22대 국회로 이어졌다고 본다.”
-22대 국회에 제언한다면.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자신을 바라봤으면 한다. 국회에선 의원 스스로가 300분의 1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0과 1의 문제일 수 있다. 5000만 시민을 대표하는 의원 300명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180명 국회의원이 한 명 같은 의정활동을 하면 안 된다. 내가 용기 내지 못함으로써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질 수 있는 시민의 존재를 알아주셨으면 한다. 그 책임감, 무게감을 느끼며 용기를 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향후 계획은.
“심상정 의원이 정계 은퇴를 하고 곧바로 원내대표 직무대행을 맡았다. 총선이 끝났지만 하루도 쉬지 못했다. 차기 지도부에서의 역할을 제안한 분들도 계셨다. 4년간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으로서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 생각했다. 마포구 지역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은 계속한다. 총선에서 발견한 가능성을 처음부터 직조해 나가는 그런 시간을 가지겠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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