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의원은 지난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원내대표 시절 정치의 ‘ABC’를 무시한 윤 대통령과, 대화가 안 통하는 여당을 상대하면서 어려움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그는 “원내대표 간의 대화로 정치적 문제를 타결하는 것이 현 정권 아래에서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이렇게 되면 야당은 의석수에 기대게 되고 일방처리 비판을 받는 상황이 계속돼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번 국회에서 민주당의 활동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는 두 가지 답을 내놨다. 국민들의 억울한 죽음이나 민생 문제를 치열하게 대한 점에선 80점을 주겠지만, 윤석열 정권의 실정을 막지 못한 책임을 생각하면 50점 이하를 주겠다고 했다.
그는 극단적인 대립과 혐오가 판치는 정치에 아쉬움을 전했다. ‘당원 중심 정당’이란 구호 아래 팬덤정치의 우려를 키우는 민주당을 향해서도 따끔한 제언을 내놨다. 박 의원은 “당원 중심의 국민정당으로 진화하고 확장해야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이재명계 3선인 박 의원은 이번 22대 총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논란이 됐던 하위 20%에 포함되며 패널티를 안는 바람에 친이재명계 경쟁자에게 3표 차로 패해 여의도를 떠나게 됐다. 그는 “22대 국회에서는 대통령과 여당이 권력을 독식하는 승자독식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개헌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민주당이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다른 야당과 힘을 합쳐 시급한 민생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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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의 민주당 활동에 몇 점을 주겠나.
“사실 21대 국회는 코로나19로 시작해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으로 마감되고 있다. 코로나는 국민건강, 채 상병은 국민의 억울한 죽음의 문제다. 이런 문제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다. 민주당은 국민의 삶의 문제나 억울한 죽음과 같은 실질적 민생 문제를 치열하게 대해왔다고 생각한다. 국민들 눈엔 미흡하겠지만 80점 정도 줄 수 있다고 본다.”
-낮은 점수를 줄 만한 부분도 있나.
“대선에 지고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며 무능과 실정, 폭주를 보여준 것은 민주당의 온전한 책임이다. 이를 보면 50점 밑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또 민주당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환되는 그 과정에 당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두고 혼란도 있었다. 다수당이면서 야당이라 매사 반대만 할 순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정책을 주도해 나갈 수도 없는 묘한 지위에 있었다. 다만 그런 문제들을 겪으면서도 어느 정도 대처를 해온 것은 평가할만하다.”
-아쉬웠던 부분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우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남용을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했다. 또 검찰개혁 법안이 통과됐는데, 이를 윤 정권이 시행령 정치로 무력화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선거제도 개혁을 매듭짓지 못한 것도 아쉽다. 위성정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거대양당의 기득권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으로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끝내 해내지 못했다. 저출생이나 기후위기 등 국민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도 국회와 정치권이 아무런 결정을 못하고 방치했다. 22대 국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깊이 토론하고, 결론낼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개헌 기회를 놓쳐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통령 직선제로 상징되는 87년 체제는 민주화를 이루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통령 직선제라 해서 꼭 좋은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고, ‘대통령 한 사람의 선의에 기댄 국정운영이 국민들을 안심시키냐’는 고민도 있다. 몇 차례의 대통령 선거와 그 뒤 벌어지는 고통스런 상황들을 보며 국민들도 고민을 시작했다고 본다. 우리 헌법에서 규정한 대통령의 권한은 매우 막강한데, 대통령과 대통령을 보유한 정당이 독식하는 현재의 승자독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렇다면 개헌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2대 국회에서 개헌을 꼭 해야 한다.”
-원내대표 임기 중 무엇이 힘들었나.
“여당과의 대화가 매우 어려웠다. 윤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한 번도 안 만나고 원내대표인 나를 만나려 했는데, 이는 정치의 ABC를 무시한 것이었다. 또 여당과 쭉 대화해보면 대화가 진척이 되다가도 어느 단계에서 막히는 걸 느꼈다. 원내대표 간의 대화로 정치적 문제를 타결하는 것이 현 정권 아래에서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야당은 의석 수에 기대게 되고 일방처리라는 비판도 받게 된다.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돼 안타까웠다.”
-체포동의안 가결, 공천을 두고 당내 갈등도 많았다.
“원내대표를 하면서 ‘담대한 변화’라는 가치를 내세웠는데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는 견고한 통합을 이루지 못한 내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 사실 이것도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술수였다고 본다. 부결되면 ‘방탄의 길’이고 가결되면 ‘분열의 길’, 그것이 민주당에 씌워진 굴레였다. 다만 민주당을 궁지로 밀어 넣으려는 올가미를 제대로 잘라내지 못한 책임은 내게 있다. 그것이 당원들의 실망과 분노로 이어졌고, 총선 공천까지 이어졌다고 본다. 물론 우리 당이 더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공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일관되고 투명한 시스템으로 공천이 이뤄진다는 믿음을 구성원들과 국민들에게 줄 필요가 있다. 이는 정당민주주의는 물론, 민주주의 전반에도 중요한 가치다.”
-극단적 대립에 따른 혐오정치의 문제도 있다.
“정치적으로 반대하고 거부하는 것은 자유지만, 상대를 혐오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걱정스럽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흉기 테러로 심각성이 분명해졌다. 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혐오·증오 표현을 차단하기 위한 법안도 내고 노력을 했는데 개선이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혐오·증오를 조장하는 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는 혐오·증오 표현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으면 한다.”
-당에서도 일부 강성 당원의 행태가 논란이 됐는데.
“좀 전에 말씀드린 이들과 같은 반열로 이야기하면 당원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웃음) 나도 그렇게까지는 보지 않는다. 당원은 정당의 존립 기반이다. 정당의 가치와 정책을 실현하는 원동력이다. 다만 ‘당원 중심 정당’이란 말은 과거 ‘제왕적 총재’나 ‘1인 지배 정당’ 문제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말이었다. 정당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개념인 것이다. 민주당도 그 방향으로 계속 진전되고는 있었지만, 당심과 민심을 일치시키는 노력은 필요할 것이다. 당원 중심의 국민정당으로 진화하고 확장해야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
-당원 중심의 국민정당으로 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당심과 민심의 절묘한 조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당원들 안에도 생각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하다. 이것들을 어떻게 균형잡고,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인가라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번에 탈당한 당원들의 경우, 당에 대한 열정이 상당하신 분들이었다. 이런 당원들이 다른 이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 시너지를 내게 할지 당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지금 굉장히 위협받고 있는 상황인데, 이럴 때 민주당이 정당민주주의를 더 확실히 하면서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됐으면 한다.”
-22대 국회서 야권의 과제는.
“야당이 절대다수이니 성과를 내야할 것이다. 특히 야권이 힘을 합쳐 당장 급한 민생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 당이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하면 국민들의 피로도가 쌓일 수 있다. 억울한 죽음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있었고 이태원 참사, 그 전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국회가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에 관한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을 재의결하지만,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야권에선 탄핵 얘기도 나온다.
“채 상병 사건의 수사에서 진실이 나오면 국민 여론이 움직일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관여가 드러나면 탄핵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야권은 그 진실을 알리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 먼저다. 탄핵은 대통령 본인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이를 위해서는 윤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완전히 다른 자세를 보여야 한다.”
-22대 국회에 당부할 말은.
“유엔이 대한민국의 지위를 선진국으로 격상했지만 노인빈곤율이나 자살률, 출생률 등 아직도 나쁜 쪽으로 1위를 기록하는 것들이 많다. 특히 양극화는 중요한 문제다. 저출생 문제도 여기서 기인한다고 본다. 내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사회적 가치법’을 내놨는데 심의조차 못하고 폐기하게 됐다. 우리 사회가 모두의 행복을 위한 사회가 됐으면 하고, 다음 국회에선 이같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됐으면 한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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