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시위 탄압 등 반인권 정책·경제난 심화
"이란 정권은 변치 않을 것" 회의론도 나와
이란 시민들이 21일 수도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19일 헬기 추락으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진이 붙은 광고판 앞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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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일(현지 시간), 이란 사회의 애도 분위기가 다소 무덤덤하게 이뤄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편에선 은밀한 축하마저 이뤄졌다. 인권 탄압을 일삼던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컸던 탓이다. 다만 대통령의 죽음에도 이란 정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란 무력감도 감지됐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분열된 이란 사회에서 대통령의 죽음은 조용한 애도와 은밀한 축하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이날 라이시 대통령에 대한 애도는 조용하게 이뤄졌으며 "다른 고위 인사들의 죽음에 수반된 대중의 격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짚었다. 이란의 국민 영웅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이 2020년 미국 공습에 사망했을 때 이란 사회는 분노와 슬픔으로 뒤덮였지만, 이번에는 비교적 덤덤했다는 것이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일 새벽 이란 곳곳에서 그의 사망을 축하하는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고 있다. 엑스(X)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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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인, 반인권적 만행·경제적 고통에 시달려
오히려 한편에서는 은밀한 축하 분위기가 포착됐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날 새벽 여러 도시에서 불꽃놀이가 있었다며 "많은 이란인은 비밀리에 (사망을) 축하했다"고 전했다. 이란 중부 이스파한의 한 상점 주인은 "사람들이 축하하기 위해 계속 찾아와 과자 판매가 급증했다"며 "많은 이들이 정부 스파이를 겁내 행복을 숨기고 있다"고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강경보수 성향 라이시 대통령은 반(反)인권적 만행을 저질러온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는 2022년 이란 사회를 휩쓴 '히잡 시위'를 유혈 진압해 수백 명을 사망케 했고, 판사로 재직하던 1988년에는 반체제 인사 수천 명을 처형시킨 '사형위원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그는 인권 침해 혐의로 미국 제재 대상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그가 재임한 동안 경제적 고통도 컸다. 영국 BBC 방송은 "이란 통화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은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중동 무장단체 지원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이란인 다수는 이 돈을 국가에 투자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BBC는 지적했다.
라이시 대통령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일 이란 시민들이 거리에서 춤추고 있다. 엑스(X)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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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정치 변화 없을 것" 무력감도
다만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 사이에선 회의론도 나왔다. 라이시 사후에도 이란의 근본적인 정치 지형은 그대로일 것이란 무력감 때문이다. 수도 테헤란에 거주하는 라일라(21)는 "그의 죽음은 슬프지 않지만, 이 정권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슬프다"고 로이터에 토로했다. 한 이란 상점 주인 레자(47)도 "누가 신경 쓰나, 강경파 한 명이 죽고 또 한 명이 이어받아 우리의 비참함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도 "이란의 기득권은 강경보수 진영이 갖고 있고, 권력 투쟁도 그 안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란에서는 6월 28일 대통령 보궐선거가 실시될 예정이지만, 이란 대선은 사실상 결과가 정해져 있다고 외신들은 지적한다. AP통신과 NYT에 따르면, 2021년 이란 대선에서 라이시 대통령은 주요 경쟁자들의 출마가 모두 금지된 가운데 62%를 득표해 당선됐다.
앞서 라이시 대통령은 전날(19일)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라이시 대통령의 장례식은 22일 수도 테헤란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이날부터 5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레바논, 이라크 등 일부 중동 국가와 파키스탄, 튀르키예 등 이슬람 국가도 이날을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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