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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유고 전범재판장 “진도사건 진실 규명, 민간인 여부 따지는 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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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보스니아 내전에서 무슬림 전투원 등 8000여명을 학살한 스릅스카 공화국 대통령 라도반 카라지치에게 2016년 전범재판의 재판장으로서 징역 40년을 선고했던 권오곤(69)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법연구소장. 김·장 법률사무소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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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내전에서 무슬림 전투원 등 8000여명을 학살한 스릅스카 공화국 대통령 라도반 카라지치(79)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던 유고 국제전범재판 재판장이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진실규명(피해자 확인) 기준과 관련해 “민간인이든 전투원이든, 전투 중에 죽인 게 아니라면 불법행위”라는 입장을 밝혔다.



2001년부터 2016년까지 15년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구유고슬라비아 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을 역임했던 권오곤(71)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법연구소장은 18일과 19일 서면과 전화를 통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 보류’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전쟁기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진도 사건)에 대해 “명백한 불법행위를 놓고 희생자들이 민간인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논점 자체가 아쉽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들을 설사 전투원으로 분류한다 해도 즉결처형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뜻이다. 권 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유엔 국제기구 소속 재판관을 지낸 법조인으로 전쟁범죄 권위자로 꼽힌다. 카라지치는 물론 세르비아 공화국 및 유고슬라비아 연방 대통령이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등을 대상으로 한 주요 전범 재판에 참여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최근 1950~1951년 전남 진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 희생자 4명에 대해 ‘암살대원’이라고 적힌 불확실한 경찰 사찰 기록을 이유로 진실규명 불능(피해자 인정 불가) 의견을 전체위원회에 상정했다가, 야당쪽 위원들 반대에 결정을 보류했다. 진실화해위는 오는 22일 오후 각계 15명 자문위원으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열어 이들 4명에 대한 진실규명 처리 방향을 논의한다. 자문위원들에게 폭넓은 의견을 들어 참고로 삼겠다는 취지다. 15명의 자문위원은 김광동 위원장이 추천한 7명과 여야 추천 상임위원이 각각 4명씩 추천한 8명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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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 당시 14살로 진도중학교 1학년이었던 허훈옥. 1969년 진도경찰서가 작성한 요시찰인 명부 ‘대공’에 ‘암살대원’이라 적혀 있다는 이유로 진실규명 결정 과정에서 보류됐다. 허경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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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진실화해위가 자문위원들에게 보낸 ‘자문 의뢰서’에 기초해 권오곤 소장에게 의견을 구했다. 진실화해위가 의뢰서에서 자문위원들에게 집중적으로 물은 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 정리법) 제2조1항3호 ‘1945년 8월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사건’에서의 ‘민간인 개념’이다. 진실화해위는 자문 의뢰서에서 “‘전투원’과 ‘비전투원’으로 구분하여 ‘비전투원’만을 민간인으로 보고 일반 행정공무원, 철도공무원 등도 민간인에 포함하되, 한국전쟁 중 민간인 신분으로 동원됐으나 정규 국군에 정식 편입된 경우, 군번을 부여받은 경우는 민간인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국제인도법상 전시(戰時) 보호대상인 민간인을 어떻게 개념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권오곤 소장은 이에 대해 “국제인도법에서 민간인 보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전투에서 벗어나 있는 전투원을 보호하는 것이다. 예컨대 질병·부상·구속 등의 이유로 적대행위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전투원도 민간인과 마찬가지로 보호하여야 한다. 이들은 전쟁포로로 취급되어야 하고, 전투원이라는 이유로 전쟁포로를 적법절차 없이 즉결처분하는 것은 전쟁범죄를 구성한다”고 말했다. 권 소장은 “문명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민간인이든 전투원이든 즉결처분으로 죽여도 좋다는 법 규정은 없다”면서 “다만 국제법상 전투 중에 전투원을 죽이는 건 적법한 행위로 간주한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는 다만 자문위원들에게 보낸 자료에서 ‘암살대원’으로 분류된 4명이 민간인이었는지 이외에 쟁점이 되고 있는, 군경의 살해행위가 불법적이었는지에 대한 의견은 묻지 않았다. 또한 ‘암살대원’으로 기재된 이들 중 13살과 14살 등 미성년자가 있다는 점도 강조하지 않았고, ‘암살대원’이라고 적힌 경찰 사찰기록을 신뢰할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도 넣지 않았다. 권오곤 소장은 사찰기록의 신뢰성과 관련해선 “사실인정의 문제라 본인이 답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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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체포돼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되어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 유고전범재판소 법정에 출두한 스릅스카 공화국 전 대통령 라도반 카라지치.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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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곤 소장은 과거사 정리법이 애초 ‘민간인’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에 대한 한계도 지적했다. 권 소장은 “전투에서 벗어나 있는 전투원을 적법절차 없이 즉결처분하는 것도 분명한 범죄이므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서 ‘민간인’에 대한 불법행위만을 그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쉽다”고 했다. 다만 “‘과거사 정리’를 하면서 이를 ‘민간인’에 대한 불법행위로 제한하는 것은 입법부의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포로의 지위에 있는 전투원도 민간인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특히 전쟁 중 민간인이 상대국 군인에게 동조 및 물품 공급 등의 지원을 하거나 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국제인도법상 보호대상인 민간인에 포함되지 않는지, 그 판단 기준은 어떠한지에 관한 질문에는 “이러한 민간인도 적법절차에 의해서 처벌해야지, 즉결처분하는 것은 불법”이라면서 “전투 현장에서 적국을 지원하는 민간인을 사살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답했다.



2016년 3월 권 소장이 전범재판의 재판장으로서 카라지치에게 징역 40년 형을 선고한 구유고슬라비아 형사재판소의 1심 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인 보스니아 내전의 전모와 책임을 엄격한 증거에 기반해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3월에 열린 항소심에서 카라지치는 1심보다 더 높은 종신형을 받고 현재 수감중이다. 권 소장은 2017년 1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당사국총회 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권 소장은 본인이 재판장으로 판결한 1995년 7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접경 도시 스레브레니차에서 벌어진 8천여명의 무슬림 학살을 예로 들며 “당시 16세 내지 60세(군대 적령)의 남자 무슬림 포로 8000여명을 즉결처분의 방법으로 학살했다. 이들이 전투원이었는지 민간인이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그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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