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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싹하던 '김 대리' 덕에 대출 갈아탔는데…돈 보내니 '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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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울리는 그놈목소리③]고금리 시대, 저금리 대출 환승 권하는 피싱범들…경찰 "저신용·저소득자 상대 범행, 더욱 악질"

[편집자주] 한동안 감소 추세였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1인당 피해액은 3000만원을 넘어섰고 범죄 대상은 10·20대로 확대되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신종 범죄 수법을 파헤치고 실제 피해 사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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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


※ 이 기사는 실제 보이스피싱 피해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10년 차 학습지 교사 강은주씨(52·가명)의 삶은 팬데믹 기간 곤두박질쳤다.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학생 수는 줄어들었다. 수입이 떨어졌는데 월세에 공과금은 숨만 쉬어도 나갔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받은 금리 연 15%대 캐피탈 대출 상환 날짜는 매달 무섭게 돌아왔다.

원리금을 1달째 연체한 지난 3월4일, 강씨는 또 다른 대출 상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검색 몇 번에 '서민을 위한 무보증, 무담보 대출' 광고를 찾았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대출 상담을 버튼을 누르자 10분만에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자신을 주요 은행 김정아 대리라고 소개했다. 딸처럼 어린 목소리였다. 강씨는 성실하게만 살아온 자신이 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자기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모조리 털어놨다. 자신도 이제는 지겹기만 한 신세 한탄을 김 대리는 끝까지 들어줬다. 그는 "우리 어머니 같다. 꼭 방법을 찾아주겠다"고도 했다.

잠시 뒤 김 대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그가 내놓은 방법은 '대출 갈아타기'였다. 때마침 정부가 자금을 대서 강씨 같은 저소득자가 받은 고금리 대출을 3.9%대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고 있다는 것. 주변 자영업자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낮은 금리 대출로 갈아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었다. 이자만 낮아져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김 대리는 "어머님 매달 생돈 쓰지 마시고 '신한은행 새희망홀씨 대출'로 갈아타세요"라며 앱 설치 URL을 보내왔다. '새희망홀씨 대출'을 검색하니 믿을 만한 은행 여러 곳이 연관 검색어로 나왔다. 강씨가 끝내 의심을 거둔 순간이었다.


"저신용자도 방법 있다"며 꾀임…원격 조정 앱 설치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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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


긴 주소를 눌러보니 '신한은행 새희망홀씨' 앱(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됐다. 앱을 실행하자 대출상품 신청서가 열렸다. 김 대리 안내대로 국민은행이나 삼성카드 같은 타 금융사 앱은 모두 삭제했다. 강씨가 스마트폰을 더듬대며 헤매자 김 대리는 원격으로 도와주겠다며 'Anydesk' 앱 설치를 권했다.

문제는 강씨의 신용도였다. 제1금융권 대출을 갚지 못한 채 캐피탈 대출까지 받은 강씨의 신용이 나쁠 대로 나빠져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대출 심사를 통과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대리는 "이런 경우에도 방법이 있다"며 "기존 대출 잔액을 현금으로 저희 직원에게 건네주면 심사를 우회적으로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강씨는 아들 명의로 2900만원가량 급전 대출을 받았다. 다음 날이면 어차피 돌려받을 돈이라고 아들을 설득했다. 모두 오만원권으로 인출해 쇼핑백에 넣으니 액수에 비해 가벼웠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김 대리 후배라는 직원은 싹싹했다. 쇼핑백을 받아들고는 빨리 돌아가서 조치해주겠다며 서둘렀다.

직원과 헤어진 뒤 강씨는 카카오톡을 켰다. 김 대리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알 수 없음' 문구가 떴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였다. 그렇게 강씨는 더 높은 빚더미에 올랐다.


"금리 낮춰드려요"…'대출 환승' 노린 보이스피싱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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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시기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난 가운데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사람들을 속이는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 6700여건 중 대출 환승을 권하는 '대환대출' 유형 보이스피싱이 53%를 차지했다. 대환대출 보이스피싱 중에서도 '정부 정책 자금' 지원 대출을 빙자한 사례는 전국에서 331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빙자한 보이스피싱이 전체 대환대출 유형 피싱 중에서도 약 10%를 차지하다 보니 적지 않은 숫자"라며 "무엇보다 저신용·저소득자를 상대로 저지른 범행이라 더욱 악질"이라고 말했다.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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