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 겸 베이스볼5 한국 대표팀 감독.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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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공 하나, 테니스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나 할 수 있던 ‘주먹야구’를 기억하시는지. 동네에 따라 찜뿌, 찜뽕, 짬뽕, 손야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주먹야구는 한때 모든 어린이들이 사랑했던 ‘국민 놀이’이자 운동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이 주먹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베이스볼5’라는 멋진 이름을 단 이 종목은 한국에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 등에서는 이미 큰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은 ‘야구의 국제화’와 어린 야구팬들을 겨냥해 2018년 베이스볼5의 공식 규칙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세네갈에서 열리는 2026 다카르 청소년 올림픽에서 베이스볼5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했다. 추억의 주먹야구가 이제는 세계인이 즐기는 종목으로 발전한 것이다.
차명주 감독을 비롯한 한국 베이스볼5 대표팀 선수단이 지난 달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컵에서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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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엄연히 베이스볼5 국가대표가 있다. 고무공을 사용하는 이 종목의 감독이 프로야구 선수 시절 수시로 등판해 ‘고무팔’로 불렸던 차명주(51)라는 점도 흥미롭다.
1996년 롯데 1차 지명선수로 계약금으로 5억 원을 받았던 차명주는 11년간 롯데, 두산, 한화 등에서 613경기에 등판했다. 두산 시절이던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3년 연속 홀드왕을 차지했다. 1999년과 2001년, 그리고 선수 시절 말엽인 2005년 등 3차례에 걸쳐 최다 등판 기록을 세웠다. 팀당 133경기 시절이던 2001년에는 무려 84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차명주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던졌다. 등판과는 별개로 불펜에서 몸을 풀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다. 10경기 연속 등판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차명주는 은퇴 후 야구선수 전문 트레이닝센터를 운영했다. 그리고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으로 어린 선수들을 지도했고, 현재는 재능기부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동시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직도 맡고 있다. 그는 협회 이사 자격으로 베이스볼5을 담당하게 되면서 이 종목의 감독 겸 전도사가 됐다.
두산 시절 차명주의 투구 모습. 그는 2001년부터 3년 연속 홀드왕을 차지했다. 동아일보 DB |
티볼과 함께 야구의 개량 종목 중 하나인 베이스볼5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먼저 고무공 외엔 장비가 필요치 않아 경제적이고 안전하다. 한 경기당 5명이 5이닝 경기를 하는데 남녀 혼성 종목으로 최소 2명은 다른 성별이어야 한다. 큰 공간도 필요치 않고 경기 진행도 빠르다. 1세트 5이닝 경기는 10~15분이면 끝난다. 5세트를 해도 한 시간 안팎이다.
홈플레이트에서 펜스까지 거리는 18m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펜스를 넘기면, 즉 홈런을 치면 아웃이다. 펜스를 직접 맞혀도 아웃이다. 인플레이 타구를 수비수가 없는 곳으로 전략적으로 강하게 치고, 빨리 베이스를 달리는 게 중요하다.
차명주는 “아이들의 성장에 정말 좋은 운동이다. 야구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가 되어야 할 수 있지만 이 종목은 6,7세면 할 수 있다”며 “고무공을 사용하니 손 발달에 좋고, 발로 뛰어야 하니 운동도 많이 된다. 티볼과 함께 학교 체육으로 편입하기에 적합한 종목”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베이스볼5 경기 모습. WBSC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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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5은 차명주의 건강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쉴새 없이 등판하던 선수 시절 그의 몸무게는 80kg 정도였다. 그런데 은퇴 후 사업 등을 하면서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해 몸무게가 90kg 이상으로 부쩍 늘었다. 스스로 몸이 처진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베이스볼5 선수들을 지도하고, 자신도 틈날 때마다 경기에 함께 뛰면서 처져 있던 뱃살이 쏙 들어갔다.
동시에 식이요법도 병행했다. 한때 술자리도 종종 가졌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자리가 아니면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가능한 한 ‘1일 1식’을 실천하고 있다. 저녁 한 끼를 가족들과 함께 먹는다. 이 같은 노력으로 현재는 80kg대 중반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협회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국제대회나 회의에 참석할 일이 많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부터 건강한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며 “여전히 재능기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종종 공 던지는 시범도 보여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몸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차명주 KBO 재능기부위원이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차명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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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그렇게 많은 경기에 자주 등판하고도 그는 다른 투수들처럼 어깨나 팔꿈치에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다. 비결은 웨이트트레이닝과 같은 단축성(短縮性) 운동과 동시에 근육을 최대한 길게 펴면서 늘려주는 신장성(伸長性) 운동을 꾸준히 했기 때문이다.
두산 선수 시절 그는 최일언 코치의 조언에 따라 일본 돗코리현에 있는 월드윙 센터에서 신장성 수축 운동의 중요성을 배웠다. 관절의 가동 범위를 늘리고, 유연성에 중점을 둔 운동이었다. 그는 선수 시절 다른 선수들보다 2시간 정도 먼저 출근해 이 같은 유연성 운동을 꾸준히 해 왔다. 은퇴 후 그가 세운 야구선수 전문 트레이닝 센터가 성행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단순히 근육을 강화시키는 것 외에 유연성 등에 신경을 쓴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그는 일반인들도 간단히 할 수 있는 운동 몇 가지를 추천했다. 대표적인 게 날개뼈를 뒤로 당겨주는 운동이다. 두 팔을 몸에 붙인 채 날개뼈를 빠르게 뒤로 당기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동작이다. 의자에 앉아서도, 선 상태로도 할 수 있다. 벤치 프레스를 선 상태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차명주는 “현대인들의 몸은 대개 앞으로 굽어 있다. 이 때문에 앞 근육보다 뒷 근육 운동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며 “날개뼈에 힘이 떨어지면 어깨 결림이나 오십견이 찾아온다. 틈날 때마다 날개뼈들 뒤로 당기는 동작을 10~20회씩 해주면 어깨 통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체 유연성 유지를 위해서는 고관절 운동도 수시로 한다. 이 역시 거창한 도구 필요 없이 각자의 가동 범위에 맞게 다리를 들어 의자 등을 넘기는 동작을 하면 된다. 그는 “양쪽 다리를 하루에 10~15번씩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돌려주는 간단한 동작으로도 허리 통증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금의 92학번이 모두 모인 사진. 왼쪽부터 차명주, 박찬호, 조성민, 최기문, 임선동, 홍원기, 박재홍, 전병호, 이영우, 김대익. 차명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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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주는 한국 야구의 대표적인 황금세대 중 하나인 ‘92학번’ 중 한 명이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임선동, 고 조성민 등이 동기생이다. 그 중 한양대에 함께 진학한 박찬호와는 더 특별한 관계다. 빙그레 이글스(한화의 전신)의 유혹을 막기 위해 한양대는 박찬호를 부산 송정에 있던 차명주의 집에 머물게 했고, 둘은 한 달 가까이 같이 살았다.
고교 투수 ‘빅3’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그 역시 왼손 투수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고, 롯데에 입단할 당시 5억 원이란 큰 계약금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당시부터 프로 진출보다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까지만 뛰고 야구를 그만두려 했다. 그런데 출국을 위해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간 사이에 아버지가 롯데와 계약을 하면서 갑자기 프로에 입단하게 됐다. 뒤늦게 프로행이 결정되면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탓에 롯데에서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고 했다. 롯데에서 3년간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그는 1999년 두산으로 트레이드되고, 중간계투로 자리 잡은 후에야 고교 시절의 명성을 되찾았다. 2001년에는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다.
차명주의 부산 송정 집에서 한동한 함께 지냈던 정민태, 박찬호, 차명주(왼쪽부터). 차명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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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후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지금 만학도의 꿈을 이뤘다. 46세이던 2017년 가을 국민대 대학원에 진학해 지난해 바이오메카닉스(생체역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논문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로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에서 야구 코칭 전공 강의도 하고 있다. 그는 “내가 평생 했던 야구와 학교에서 배운 생체역학을 접목해 후배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으면서 최고의 경기력을 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게 남은 목표”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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