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시현양이 24일 오후 울산 세민병원 재활치료실에서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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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이(가명·10) 세상엔 엄마, 아빠가 전부였다. “우리 딸 예쁘다.” 엄마는 넘치는 애정을 못 이겨 늘 시현이를 품에 안고 토닥였고,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딸부터 찾았다. 엄마, 아빠는 눈이 보이지 않는 시현이에게 늘 많은 소리를 들려주려 애썼다. 피아노를 쳐주고, 노래를 불러주면 시현이도 ‘엄청 좋아했다’. 거실에는 소리 나는 장난감만 종류별로 수십 개 놓여 있었다.
“엄마, 우리 시현이가 조금만 더 똑똑하면 좋겠지. 그렇지?” 외할머니는 시현이를 씩씩하게 키우는 딸과 사위를 언제나 응원했다. 원체 몸이 약했던 딸이라, 행여나 힘에 부칠까 안절부절 곁에서 도왔다. 하지만 시현이를 잘 키우고 싶었던 엄마는 시현이가 7살이 되던 2021년 11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현이 곁을 지키던 아빠마저 지난해 10월 사고로 숨을 거뒀다.
엄마, 아빠를 소리 내 부르진 못해도 시현이는 그들의 빈자리를 고스란히 느꼈다. 한동안은 엄마, 아빠와 함께 가지고 놀던 장난감 소리가 들리면 피했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잠시라도 곁에서 사라지면 불안한 듯 찾아 헤맸다. “한동안은 매일 같이 봉안당에 찾아가서 ‘여기에 엄마가 있어’라고 말해줬어요. 시현이도 아마 어렴풋이 아는 것 같아요. 엄마, 아빠가 떠났다는 걸.” 시현이 곁에 남은 사람은 칠순을 바라보는 외조부모 둘뿐이다.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시현 양이 24일 오후 울산 세민병원 재활치료실에서 치료를 받는 모습을 할머니 정아무개씨가 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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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g으로 태어난 이른둥이…눈·코·귀 모두 장애 겪어
시현이는 엄마 배 속에 있다가 25주차에 절개수술로 태어난 이른둥이였다. 첫 몸무게는 460g.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24일 만난 외할머니는 시현이를 처음 봤을 때 “요만했다”며 소파에 놓인 작은 인형 하나를 들어 올렸다. 태어나자마자 응급실, 그 뒤엔 중환자실이었다. 시현이는 한두 차례 심정지로 뇌가 손상됐고 뇌병변 중증장애 판정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눈·코·귀 모두 장애가 있었다. 코가 함몰돼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기도 내 관을 삽입했다. 눈이 비정상적으로 작은 소안구증도 있었다. 서울의 대형 병원을 찾아가 수술했지만, 왼쪽 눈은 살리지 못해 평생 의안을 끼어야 한다. 오른쪽 눈으론 희미한 빛 정도는 감지할 수 있지만, 안구가 작아 눈을 떠도 무언가를 볼 수는 없고 혼탁도 심해지고 있다. 오른쪽 귀는 태어날 때부터 막혀 있었다. 10살이 되기까지 큰 수술을 3번이나 치렀지만, 시현이가 세상과 소통할 방법은 약하게나마 청력이 살아 있는 왼쪽 귀가 유일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외할머니는 시현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뇌손상으로 인한 중증 장애를 앓다 보니 신체·인지 발달도 느렸다. 음식물을 스스로 삼키지 못해 위장에 직접 음식물을 주입할 수 있도록 위루관을 달았다. 말을 할 수 없는 시현이는 불편함을 느낄 때면, 기도에 삽입한 관이나 위루관을 잡아 뜯으려고 하고, 의안을 빼서 던지곤 한다. 외할머니는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호흡기 등을 넣은 가방을 3개나 들고 다닌다.
지금 시현이는 혼자 양말도 신지 못하지만, 치료를 받는다면 분명 희망은 있다. 더 어렸을 땐 몸을 돌려 엎드리거나, 기는 행동도 하지 못해 누워만 있었다. “지금 못 기면 걷지도 못한다”며 엄마는 애가 달았다고 한다.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결과 10살 시현이는 혼자서 걸을 수 있다. 앞이 보이진 않아도 손으로 앞을 더듬거리며 장애물을 피해 나아간다. “병원에서 어렵다고 할 때마다 실망하더라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어요.” 외할머니도 딸의 마음처럼 “능력만 된다면” 시현이 치료에 전념하고 싶다.
의료·교육비만도 150만원…월급 200만원으론 벅차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시현이 치료는 외가가 도맡게 됐다. 친가는 시현이를 맡을 여력이 되지 않았다. 외조부모 역시 형편이 넉넉하진 않다 보니, ‘손녀를 장애인 시설에 보내라’는 말도 주변에서 수없이 들었다고 한다. “눈이라도 보이면, 인지라도 있으면 괜찮겠는데 그게 아니니 못 보내겠더라고요. 어떻게 지낼지 보이니까. 내가 힘든 게 낫지, 시현이 힘들게 지내는 건 절대 못 하겠어요.” 외할머니는 눈물이 고인 채 “어떻게든 살지 않겠어요?”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세 가족의 생계를 담당하는 사람은 외할아버지다. 아파트 경비원을 하며 한 달에 200만원을 번다. 시현이의 의료비, 교육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시현이는 네다섯 가지의 치료가 필요하다. 쓰지 않는 근육을 자극하며 손을 뻗치거나 물건을 쥐는 기본 동작부터 하게끔 하는 작업치료와 운동치료. ‘앉아, 집어’와 같은 말을 듣고 수행하도록 하는 언어치료와 음식물을 스스로 삼키도록 훈련하는 연하치료까지. 기본 치료만으로도 한 달에 최소 35만원이다.
시현양의 시간표.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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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된 만큼, 시현이에겐 다양한 의료용품이 필요하다. 숨 쉬는 데 필요한 가습필터, 가래를 빼는 석션카테터, 기관절개·위루관 소독재료 등 의료용품을 구비하는 비용이 한 달에 90만원에 이른다. 외할머니 혼자서 시현이를 돌보기 벅차서 장애아 돌봄서비스를 받는데 자부담 비용은 월 13만원 정도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서울의 큰 병원에 방문하며 드는 비용까지 합하면 시현이를 오롯이 맡게 되면서부터 한 달에 150만원은 더 드는 셈이다.
외조부모가 시현이의 후견인으로 아직 지정되지 않은 사정도 있다. 실손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비싼 의료비를 그대로 감당해야 하고, 시현이가 받을 수 있는 장애복지 항목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할배도 내일모레 칠순인데, 언제 그만둘지도 모르니까요. 솔직히 너무 힘이 들죠.” 이미 기존에 받아왔던 치료의 상당 부분을 중단하고, 최소한의 치료만 남겨둔 상황. 외할머니는 시현이의 치료와 수술을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 시현이는 시신경을 살리기 위한 오른쪽 눈 수술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잘했어요. 잘했어요.’
시현이의 작은 손에 들린 장난감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울산의 한 병원 소아재활치료센터에서 만난 시현이는 ‘밝고’, ‘까다로웠다’. 본인이 원하는 노래가 들리는 장난감을 찾으려고 신중하게 책장을 손으로 훑었고, 일일이 왼쪽 귀에 가져다 댔다. “하도 엄마, 아빠가 노래를 많이 들려줘서 반주만 들어도 어떤 노래인지 알아요. 원하는 게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내려놔요.” 결국 시현이는 외할머니가 슬며시 건네준 장난감을 들고 치료실로 향했다. 시현이는 ‘잘했어요’라는 노랫말에 한참을 귀 기울였다.
세 가족에게 남겨진 날들은 어떨까. 칠순을 바라보는 외할머니는 “시현이가 앞가림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워만 있던 시현이가 결국 스스로 일어난 것처럼, 시현이가 스스로 양말을 신고, 밥을 삼키기를 바란다. 외할머니와 시현이는 그런 미래를 위해 빼곡한 시간표를 세우며 학교에 가고, 병원에 간다.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시현이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아래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기업은행 035-100411-01-456, 예금주: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면 초록우산(1588-1940)으로 문의해주십시오. 후원에 참여한 뒤 초록우산으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받으실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3천만원입니다. 시현이의 눈과 코, 귀 등 재건 수술과 언어, 운동 등 감각 통합치료, 치료 부대 경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초록우산은 시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게 관리해 시현이 가정에 전달하겠습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밀알복지재단이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뇌병변장애와 희소병 레트증후군을 가진 10살 서연이의 사연(한겨레 2024년 4월1일치 13면)이 소개된 뒤 238분께서 “서연이에게 웃음이 더 많아지길”, “서연이네 가족 행복하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1113만325원(4월25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밀알복지재단은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금은 서연이네 가정의 의료비, 생계비로 사용될 예정이며, 서연이네 가정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습니다. 서연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중증장애·희소병 아동에게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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