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교단 차원의 노후 대책은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입니다. 총무원장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스님들의 노후 대책을 공약으로 발표하곤 하지요. 불교는 생사(生死) 문제에 대해 초탈하고, ‘스님=무소유’라는 시각도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체계적으로 노후 대비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스님은 그런 점에서 ‘예외’였습니다. 그 분은 벌써 30~40년 전부터 노후를 대비해 국민연금과 연금보험을 들고 암보험, 실손보험은 물론 ‘치매간병보험’까지 들고 있었습니다. 그 스님은 경기도에 사찰을 창건해 신도들과 함께 신행생활을 모범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잘 꾸리고 있고요. 그 스님은 노후 대책을 미리 준비한 이유를 “신세 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스님들도 나이 들면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걸릴 수 있고, 치매에도 걸릴 수 있습니다. 병석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요. 그럴 때 사찰이나 제자, 신도들에게 신세 지지 않기 위해서 능력이 될 때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60대 중반인 스님의 슬기로운 노후 대비 이야기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스님들은 유유자적하게 사는 분들로 생각하기 쉬운데, 수십년 간 꼼꼼히 연금을 부으셨다고요?
“스님들은 처자식이 없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살아요. 그러다보니 연금 같은 건 생각을 잘 안 하지요. 그런데 저는 처음부터 국민연금을 들었어요. 역설적으로 처자식이 없다보니 노후를 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얼마나 넣으셨나요?
“당시에 월 10만원 정도 넣었던 거 같아요. 80년대말에 월 10만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었지요. 많다면 많은 금액이었지만 그렇다고 또 10만원 없다고 못 사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렇게 매월 넣었지요. 그것도 계속 쭉 넣은 건 아니고 사정이 있을 땐 안 넣다가 또 다시 살려서 안 넣었던 기간만큼 분납해서 넣다가 그렇게 했어요. 60살부터 월 68만원씩 받고 있어요.”
-국민연금뿐 아니라 별도로 연금보험도 드셨다고요.
“국민연금과 별도로 사보험도 들었어요. IMF 무렵이었는데, 그때 한 생명보험 회사에서 노후를 위한 보험이 꽤 이율 높은 상품이 나왔어요. 이율이 7.5% 확정이었던 것 같네요. 그 무렵에 한시적으로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나온 상품이었지요. 지금은 그렇게 좋은 조건 상품이 없어요. 그건 월 50만원쯤 냈던 거 같아요. 워낙 조건이 좋으니까 그 후에 보험사에서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라고도 했지만 안 갈아타고 계속 부었지요. 그렇게 부었던 연금이 지금은 월 130만원 정도 받고 있어요.”
-그럼, 국민연금과 사보험까지 월 200만원 정도 받고 계시는 거네요?
“그렇지요. 월 200만원 정도 받는 거지요. 제가 국민연금과 사보험 들 때에 주변 스님들에게도 권했어요. 그런데 대부분 ‘중이 뭘 그런 걸 하느냐’고들 했어요. ‘그거 몇 푼 넣어봐야 뭐하냐’고요. 그래서 일부 스님들만 연금을 들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아이고, 나도 그때 네 말 듣고 들어놓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고들 있지요.”
-국민연금과 사보험 외에 더 들어놓은 건 없나요?
“저 같은 경우는 또 몇 년 전부터는 치매간병 보험도 들었어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뭐 어떤 사람이 나를 간병을 해줄건가 싶더라고요. 내가 치매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요즘 간병비가 좀 비싼가요? 치매간병보험은 매달 한 30만원쯤 들어가지요.”
-그밖에는요? 실손보험도 드셨나요?
“왜 안 들었겠어요?(웃음) 그 이전에는 암보험도 들어서 한 20년 부었지요. 암보험은 젊었을 때 가입해서 매월 내는 금액이 그리 크지 않았어요. 실손보험도 들었고. 스님들은 흔히 ‘아프면 죽으면 되지’라고들 하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나요. 실제로 누구나 암도 걸릴 수 있고, 치매도 걸릴 수 있는 거 잖아요. 그러면 현실적으로 치료도 받아야 하고 간병도 받아야 해요. 처자식도 없는 우리가 그런 걸 누구에게 부탁하겠어요. 스스로 미리 미리 준비해둬야지. 아마 비구니 스님들 가운데는 더러 이런 보험이나 연금 준비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비구 스님들보다는 꼼꼼하니까. 그런데 아직도 비구 스님들은 그런 대비하는 분이 적어요. 고령화 사회라고 하잖아요? 누구나 다 대비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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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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