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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무병장수 꿈꾸는 백세시대 건강 관리법

요즘 이런 의사가? 왕복 4시간 거리 무보수 진료봉사 20년 [건강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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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최일영 한양대병원 명예교수

중앙일보

최일영 한양대병원 명예교수는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에서 내과 과장으로 20년간 무보수 진료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인성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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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의사가 있다. 집에서 음성꽃동네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오가며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인술을 펼치는 최일영 한양대병원 명예교수가 주인공이다. 85세 나이로 백발이 성성하지만, 아직도 봉사를 실천할 때만큼은 활기가 넘친다. 그는 20여 년간 진료 봉사를 이어온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제40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받았다. 보령의료봉사상은 ‘한국의 슈바이처’를 발굴하면서 참된 의료인상을 정립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와 보령이 1985년 제정한 상이다. 그동안 고(故) 이태석 신부를 비롯한 183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며 의료계 사회공헌 분야의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 잡았다.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에서 최 교수를 만나 의료봉사로 점철된 그의 삶을 들었다.

Q :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받았다.

A : “송구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국내외 의료 현장에서 나보다 크게 희생하고 있는 의료진이 많다. 더 훌륭한 분들이 계신 상황에서 귀한 상을 받게 돼 미안할 따름이다. 봉사상은 나이 든 상태까지 오래 머물러서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배려로 주어진 것 같다. 앞으로 더 힘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노력하겠다.”

Q : 의료봉사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하다.

A : “1990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의료봉사의 첫발을 뗐다. 현지 선교사의 청원으로 17명의 의료진과 함께 의료봉사에 나섰다. 당시 태국 치앙마이와 중국 산속에는 10만여 명의 몽담족(산족)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돕는 50여 명의 미국인 봉사자를 보면서 진한 여운을 느꼈다. 그때부터 의료봉사의 매력에 빠져 라오스·몽골 등 해외와 국내를 넘나들며 여러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Q : 음성꽃동네에서 활동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양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로 진료하다 2005년 정년퇴임했다. 이후 닷새 만에 음성꽃동네 인곡자애병원을 찾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내과 과장으로 무보수 진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꽃동네는 2000여 명의 소외된 이웃이 모여 사는 곳이다. 장애인, 노숙인, 독거노인, 보호대상아동 등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힘조차 없는 이들을 위한 의료봉사가 이뤄진다. 노숙인을 위한 의료봉사를 많이 하던 당시 청진기로 진찰만 해서는 환자의 병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검사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환자를 돌보고 싶었다. 그렇게 의료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보다 전문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이곳으로 오게 됐다.”

Q : 의료봉사의 원동력은 뭔가.

“다른 사람을 돌보는 건 결국 나를 돕는 일이다. 그리고 의료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머물며 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전에는 내가 필요한 곳에 있었지만, 이젠 나를 꼭 필요로 하는 낮은 곳에 가 있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음성꽃동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며, 내가 있을 곳이다.”

Q : 어떤 환자와 활동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나.

“사실 모든 활동이 특별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99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기독의사회 일원으로 ‘영등포 자유의 집’ 노숙인을 위해 야간 진료를 하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IMF 직후라 당시 서울시 노숙인의 수가 많았다. 자유의 집엔 140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몇 년간 꾸준히 봉사하다 보니 노숙인 수가 크게 줄었고, 진료소는 자연스레 해산했다. 여러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음성꽃동네에선 2011년 9월 110세 나이로 소천하신 김 할머니가 떠오른다. 꽤 오랫동안 친구처럼 함께 시간을 보낸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영원한 안식을 빌 수 있어 감사했다.”

Q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제 주변에선 힘든 일을 그만하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물론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칠 때도 있다. 그런데도 아직은 봉사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조금이라도 이 일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봉사할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환자들이 내 손을 잡고 웃거나 감사함을 표현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이 행복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

Q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나.

“돈을 버는 것과 환자를 많이 보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봉사활동을 통해 내적 만족감을 쌓아 가는 것이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곳에서 내 삶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많은 사람이 소외된 이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힘을 보탤 수 있길 기대한다.”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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