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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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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와 싸움' 나선 한은…인하 타이밍, '유가와 미국'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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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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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로 유지했다. 동결을 택한 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3%대 '울퉁불퉁한' 경로를 따라가면서 물가와의 싸움을 이어가는 차원이다. 하지만 소비 부진·근원물가 안정 등 금리 인하 요인도 커져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압박한다. '딜레마'에 처한 한은은 하반기 금리인하 '깜빡이'를 켜는 전제 조건으로 2%대 물가 안정을 내세웠다.

12일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통위원 7명은 모두 '기준금리 동결'을 택했다. 지난해 2월부터 10연속 금리를 묶은 것이다. 향후 3개월 기준금리에 대해선 금통위원 6명(이창용 한은 총재 제외) 중 5명이 동결에 손을 들었고, 한 명은 "인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지난 2월 회의 때와 같은 결론이다. 대신 통화정책방향문(통방문)에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것"이라고 밝혀 두 달 전과 달리 '장기간'이란 단어를 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통화정책방향은 5~6월 전 세계 경제, 유럽중앙은행(ECB) 등 다른 중앙은행 결정을 보면 조금 더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지금은 (인하) 깜빡이를 켤까 말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상반기(5월 금통위) 피벗엔 선을 그었지만 적어도 3분기부턴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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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이러한 고민 뒤엔 물가가 버티고 있다. 엇갈린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식료품·에너지 제외) 수치가 대표적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목표 수준(2%) 진입을 앞두고 고비를 맞았다. 올 1월 2.8%를 찍은 뒤 2~3월엔 3.1%를 나타냈다. 과일값 급등, 기름값 반등 등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는 여전히 4% 선에 가깝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오르내리고 강(强)달러로 원화값까지 들썩이고 있다. 하반기 전망치(월 평균 2.3%)에 다가설지도 미지수다.

반면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4%로 지난해 3월 4%에서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내수(수요) 둔화 등이 영향을 미치면서 연말엔 2% 수준으로 내려갈 거라는 게 한은 분석이다. 이날 통방문에도 '근원물가 상승률 둔화'를 따로 명시했다.

이창용 총재도 "(한은이) 고민하는 건 근원물가는 예측대로 둔화하고 있는데, 소비자물가는 2개월간 갑자기 농산물 가격 오르고 유가도 많이 올라가면서 다른 방향으로 가고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이라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반기 2.3%(월평균 기준) 정도까지 갈 거란 예상에 부합할지가 굉장히 중요한 결정 과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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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대외적으론 '뜨거운' 미국 경제가 금리 인하의 또다른 변수로 꼽힌다. 최근 제조업 경기, 고용·물가 지표 등이 다 같이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고공행진을 보여서다. 10일(현지시간)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5% 뛰면서 6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5.25~5.5%) 인하 시점은 점차 늦춰지는 분위기다. 시장에선 당초 기대했던 6월이 아니라 7월 또는 9월에 인하가 개시되는 쪽으로 무게추를 옮기고 있다. 도이체방크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등 금융기관에선 12월 인하 예측도 나오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6월 동결 확률은 75.4%(한국시간 12일 오후 3시 기준), 7월 동결도 50.5%에 달했다. 연내 3차례 인하할 거란 전망도 흔들릴 정도다. 로이터통신은 "Fed가 금리를 더 늦게, 더 적게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외 상황을 모두 챙겨야 하는 한은으로선 미국의 인하 시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한·미 금리 역전(2%포인트 차)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은부터 움직이면 환율과 외국인 자금이 출렁일 우려가 있어서다. 만약 Fed가 9월까지 인하에 나서지 않으면 한은의 피벗 결정도 4분기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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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달러당 원화값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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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날 국내 금융시장은 하반기로 늦춰진 미국의 피벗 신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불붙은 강달러에 원화값은 전날보다 11.3원 내린(환율 상승) 1375.4원으로 마감했다. 2022년 11월 이후 가장 낮다. 코스피(2681.82)도 하루 새 0.93% 하락했다.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달러당 원화값의 가파른 하락을 부른 Fed 금리 인하 폭 축소와 시기 지연은 한은 입장에서 보수적인 통화 정책을 고수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다만 이 총재는 미국보다 국내 요인 위주로 피벗을 결정할 여지가 커졌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피벗 시그널을 작년 말부터 계속 줬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의) 탈동조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이 어떻게 가는지에 대한 고려가 더 크기 때문에 미국보다 (인하를) 먼저 할 수도 있고 뒤에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원물가가 잡히고 있는 데다 경기 둔화가 이어지는 만큼 한은이 올 3분기나 4분기엔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본다"면서 "일단 미국이 인하하면 뒤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크지만, Fed가 연말까지 인하하지 않으면 한은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종훈ㆍ오효정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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