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외환시장 흔든 주범
11일 미국발 ‘물가 쇼크’에 불붙은 수퍼달러(달러 강세)가 아시아 외환시장을 기습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 거래일보다 달러당 9.2원 내린(환율 상승) 1364.1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2022년 11월 10일(1377.5원) 이후 1년 5개월여 만에 가장 낮다. 이달 들어 연저점을 여섯번 갈아치우는 등 원화값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화폐가치도 맥을 못 추고 있다. 일본 엔화가치는 34년 만에 최저치로 폭락했다. 이날 미국 뉴욕시장에서 엔화 값은 장중 한때 153엔을 뚫고 153.24엔까지 밀렸다. 1990년 6월 이후 가장 낮다. 일본 통화 당국은 “필요하면 엔화 약세에 대응하기 위한 모든 카드를 꺼낼 수 있다”며 ‘구두 개입’을 했다. 강달러에 위안화 가치도 약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1일 위안화 가치(역내환율)는 전날보다 달러당 0.0031위안 하락한 7.2370위안에 거래되며 결국 연저점을 기록했다.
이와 달리 달러값은 치솟았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의미하는 달러인덱스(1973=100)는 10일(미국 현지시간) 105.25까지 올랐다. 105선을 뚫은 것은 지난해 11월 13일(105.63) 이후 처음이다.
달러 강세에 불을 댕긴 건 3% 중반대의 소비자 물가(CPI)다. 전문가들이 CPI에 주목한 것은 그동안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주장한 ‘(최근 물가 오름세가) 일시적으로 튀어 오른(bump) 현상’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CPI는 1년 전보다 3.5% 올랐다. 월가 예상치(3.4%)를 웃돌았고, 한 달 전과 비교하면 0.4% 상승했다. 특히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에너지 가격은 기본이고, 주거비와 자동차 보험료, 의료비 등 소비자 물가가 전반적으로 올랐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가 두 달 연속 전년 동월 대비 3.8% 오른 이유다.
탄탄한 고용과 경기지표에 더해 물가마저 들썩이자 미국의 올해 첫 금리인하 예상 시기는 오는 6월에서 하반기로 또 후퇴했다. JP모건 자산관리의 데이비드 켈리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6월 금리 인하의 문이 꽉 닫혔다”고 분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도 “미국의 6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크게 후퇴했다”며 “잠재적으로 7월 금리인하 가능성은 있지만, 이조차 물가지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미국 금융시장에 반영됐다. 10일(현지시간) 뉴욕 3대 지수는 1% 안팎으로 하락하고, 채권값도 떨어졌다(채권금리 상승). 이날 3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238%포인트 오른 연 4.808%에 마감했다. 올해 들어 가장 높다. 이에 따라 6월이 아닌 9월 기준금리 인하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Fed가 9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45.7%로, 한 달 전(12.9%)보다 32.8%포인트 상승했다.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충격도 예상된다. 달러 강세가 지속하면 수입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인하 시기나 속도를 당기면 원화값 하락을 부추기고,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상당수 전문가가 12일 열리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방향 회의에서 10회 연속 동결(연 3.5%)을 예상하는 이유다. ‘강달러 압력에 원화값이 1380원까지 밀릴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나온다. 다만 ‘한국 수출 개선으로 점차 원화 강세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낙관론도 있다.
염지현·이아미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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