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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연금과 보험

“9년 넣던 종신보험 깹니다” 고물가에 생계형 해약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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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불경기 악성 지표’



서울에 사는 배모(60)씨는 지난 8일 집 근처 생명보험사 고객센터로 향했다. 사망 시 보험금이 나오는 종신보험의 해약 문의를 위해서다. 20년 만기 상품에 9년간 보험료 3200만원 가까이 부었다. 중도 해지하면 납입금보다 1500만원을 손해 보지만, 팍팍한 가계에 그 돈이라도 돌려받으려는 생각이다. 배씨는 “물가가 엄청 오른 데다 생활비 나갈 데가 많다. 과일도 비싸서 못 먹는 판인데 매달 보험료 30만원씩 내는 건 부담된다”고 말했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에 어쩔 수 없이 보험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계 살림 악화로 ‘생계형 해약’이 늘면서 보험이 갖는 사적 사회안전망 역할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앙일보

차준홍 기자


이러한 기류는 연금·저축성 상품이 많아 해지 시 상대적으로 목돈을 받는 생명보험업계에서 두드러진다. 10일 생보협회 등에 따르면 22개 생보사의 효력상실환급금은 지난해 1조6705억원으로 3년 만에 다시 늘었다. 효력상실환급금은 보험료를 몇 달씩 못 낸 가입자의 계약이 깨지면서 돌려받는 돈으로, ‘비자발적’ 해지를 의미한다. 스스로 보험 계약을 깨고 받는 해약환급금도 지난해 45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줄었지만 40조원 안팎이던 2020~2021년보단 많았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에 인플레이션, 금리 상승 등이 뒤섞이면서 보험부터 깨는 상황”이라며 “특히 아예 보험료 납부를 포기한 데 따른 효력상실환급금은 경기 침체를 보여주는 악성 지표”라고 말했다. 대형 생보사 설계사인 A씨(59)도 “최근 2년 새 경제적 이유로 보험을 해지한 고객이 피부로 체감될 정도로 늘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

차준홍 기자


‘불황형 대출’로 불리는 보험약관대출도 해지 증가를 부추긴 요인 중 하나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생보사·손보사의 해당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71조원으로 전년 대비 3조원 늘면서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자금줄이 막힌 보험 가입자들이 사실상 환급금을 ‘담보’로 대출받는 상품인데, 이를 못 갚아서 강제 해약(효력상실환급금)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가계 곤란→보험 대출→계약 해지’ 사이클이 나타나는 셈이다.

중앙일보

김영희 디자이너


보장성 보험이 많아 사정이 낫다는 손보사들도 해약 행렬을 피하지 못했다. 대형 손보사 5곳(삼성·현대·DB·메리츠·KB)의 장기보험계약(단체보험 제외) 해지 건수는 지난해 789만2068건으로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610만1814건)보다 29% 늘었다. 최근 5년 중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고물가·고금리 여파가 거셌던 지난해에 유독 증가 폭이 컸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가입자들이 평소 필요한 실손보험은 마지막까지 남겨 두고, 다른 보험부터 깨는 편”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홍모(25)씨는 가입 중인 손보 상품 2개 중 실손보험을 뺀 건강보험을 해지하기로 했다. 매달 3만2000원씩 내는 보험료가 은근히 부담돼서다. 그는 “고정 비용 중 월세를 빼면 사실상 보험밖에 없어서 끊는다. 환급금이 얼마 안 되는 거 알지만 당장의 삶이 더 급하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전반의 ‘가입 유지’ 비율도 하락세 전환이 뚜렷하다. 25회차(25개월) 기준 유지율은 생보업계가 2022년 69.3%에서 2023년 60.6%로 내려갔다. 손보업계도 같은 기간 72.5%에서 71.6%로 떨어졌다. 보험 가입자 10명 중 3~4명은 2년을 못 넘기고 계약 해지에 나섰다는 의미다.

정종훈·이아미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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