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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honey] 부처님 계신 곳…영축산과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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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토록 불법이 이어질 통도사 금강계단

연합뉴스

대웅전 야경[사진/백승렬 기자]



(양산=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영축산은 한반도 등줄기인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 경상 남도와 북도 경계 부근에서 힘차게 솟아오른 산군인 영남알프스의 준봉 중 하나다.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인도의 영축산과 형세가 닮았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영축산 남쪽 자락에는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통도사가 자리한다. 부처님과 그 가르침이 있는 곳, 영축산과 통도사이다.

◇ 3월에 서설이 내린 영남알프스

봄비가 내린 3월 초, 영남알프스 정상부에 서설이 내렸다. 해발 고도 1천m 이상의 고산이어서 비 아닌 눈이 내린 것이다.

영남알프스의 중심인 가지산(1,241m)은 물론 해발 1,081m인 영축산 능선에도 발목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하얗게 쌓였다.

영남알프스는 양산, 울산, 밀양, 청도, 경주 접경지에 모여 있는 해발 1천 이상의 고산 무리를 일컫는다. 수려한 산세와 풍광이 유럽의 알프스에 견줄 만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축산과 가지산 외에 천황산(1,189m), 재약산(1,119m), 신불산(1,159m), 고헌산(1,034m), 간월산(1,069m), 운문산(1,188m), 문복산(1,014m)이 포함된다.

낙동강과 동해를 내다보고 있는 영축산은 기암괴석, 노송,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7부 능선부터 큰 바위들이 성채처럼 불끈불끈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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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함박등[사진/백승렬 기자]



실제로 올라 보니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위가 톱니처럼 뾰족뾰족하고 날카로워져 쉬이 넘볼 수 없는 큰 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통도사 백운암을 거쳐 영축 능선에 있는 함박등에 이르니 사방이 눈밭이었다.

함박등에서 1.6㎞ 더 가면 영축산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신불산, 간월재, 간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광활하게 펼쳐져 능선 타기를 즐기는 산꾼을 유혹한다.

특히 영축산 정상에서 간월재까지 이어지는 산상 고원의 억새밭은 이국적 정취를 자아내며 '알프스'라는 애칭이 허명이 아님을 실증한다.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는 안개와 두껍게 쌓인 눈으로 인해 길을 분간하기 어려워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지만, 함박등에 오르는 것만도 영축산의 장엄한 멋을 실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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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 등산로[사진/백승렬 기자]



◇ 영원토록 불법이 멸하지 않을 금강계단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한국 3대 사찰로 꼽히는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상은 부처를 상징한다. 석가모니 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부처 상징물을 굳이 설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사리는 신라 시대 자장 율사가 당나라 수도 장안에 유학해 불법을 공부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받았다고 하는 부처님 가사, 두개골 사리, 손가락뼈 사리, 육신사리 100과 등 성물 중 일부이다.

명문가에 태어났으나 출세를 마다하고 출가해 도를 닦았던 자장은 불교의 계율을 정립하기 위해 646년 통도사를 창건,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짓고, 이 계단에 석가모니 사리와 가사를 봉안했다.

불가에서 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인 수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금강'은 다이아몬드를 의미한다. 금강계단에는 부처가 지켜보는 데서 계를 받음으로써 참다운 승려가 되고 계를 다이아몬드처럼 굳건히 지키라는 뜻이 서려있다.

금강계단 한가운데 석종 형식의 사리탑이 있다. 금강계단과 붙어있는 대웅전은 4개 면이 모두 정면의 형식을 갖춘 특이한 건축이다. 금강계단 쪽에 '적멸보궁' 편액이 붙어있고, 시계 방향으로 '대웅전' '금강계단' '대방광전' 편액이 차례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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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계단의 석종형 사리탑[사진/백승렬 기자]



대웅전 내부에는 사리탑을 바라보고 참배할 수 있도록 금강계단 쪽으로 유리로 된 큰 창이 설치돼 있다. 불상이 얹히지 않은 불단은 화려하고 장엄하다. 4개 현판 중 '금강계단'과 '적멸보궁'은 흥선 대원군 친필로 알려져 있다. 사리탑은 보존을 위해 음력 초하루∼초삼일, 보름, 지장재일(음력 18일), 관음재일(음력 24일)에 3시간 동안 개방된다.

예전에 통도사를 몇 번 다녀갔으나 사리탑을 참배하는 행운을 누리기는 처음이었다.

통도사가 한국 최고 사찰로 자리매김한 것은 불교 예경물 중 가장 존귀한 부처 진신사리를 봉안한 데서 기인한 바가 크다.

석가모니 육신의 일부가 상주하는 금강계단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을 부처님 가르침을 상징한다.

신라 시대부터 현재까지 1천4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한 번도 불법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통도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 봄을 맞는 가슴마다 피어나는 매화 송이

궂은 날씨에도 통도사 경내는 인파로 붐볐다. 영축산과 한반도에 봄을 알리는 자장매의 개화를 감상하려는 방문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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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매와 오향매[사진/백승렬 기자]



붉은색의 자장매는 수령이 400년에 가까운 노거수이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통도사 전각을 중창할 때인 1600년대 중반에 역대 조사들의 진영을 모신 영각 아래 홀연히 피어난 후 매년 이른 봄이면 꽃을 피운다.

이는 불법이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는 자장 율사의 마음이라고 풀이됐다. 추울수록 향기가 짙어지는 매화는 수행자의 구도행과 닮았다. 계율을 지키려는 자장의 정신과 맞닿는 이 매화를 사부대중은 자장매화라 불렀다.

다섯 가지로 힘차게 뻗어 오른 형상이 오분법신과 닮았다는 흰 오향매가 자장매와 마주 보고 있다.

오분법신이란 계신(말과 행동이 청정함), 혜신(바르게 보고 바르게 앎) 등 부처와 아라한이 가진 다섯 가지 공덕을 말한다.

세월 따라 자장매는 개체 수가 늘어났다. 자장매는 이제 통도사에 피는 모든 매화를 통칭하기도 한다.

◇ 민중의 삶이 녹아있는 불화들

오랜 연륜을 간직한 통도사에는 당연히 문화재가 많을 수밖에 없다. 국보인 금강계단과 대웅전, 26건에 달하는 보물을 포함해 국가 지정 문화재 27건, 도 지정 문화재 62건이 통도사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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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계단[사진/백승렬 기자]



얼마나 오래됐는가만으로 가치를 논하지 않고, 문화재의 시대적, 신앙적 배경을 이해하면 사찰 참배는 흥미진진한 탐방이 된다.

통도사는 불교회화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불화에는 부처의 가르침뿐 아니라 민중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영산전의 '팔상성도'는 웅장하면서도 섬세해 완성도 높은 불교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산전 '견보탑품변상도'는 현존하는 견보탑품도로는 국내 유일의 벽화이다. 두 불화는 보물로 지정돼 있다.

극락보전 외벽의 '반야용선도'는 지장보살과 인로왕보살이 극락으로 향하는 중생을 인도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모두 극락왕생을 기대하는데 중생 한 명이 유일하게 뒤를 돌아보고 있다. 속세에 대한 미련이나 뒤에 남은 가족 걱정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응진전에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백호도'가 내부에, '교족정진도'와 '육조혜능과 도명'이 외벽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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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 반야용선도[사진/백승렬 기자]



교족정진도는 벼랑 끝에서 목숨 걸고 치열하게 수행 정진하는 아난존자를 표현한다. 달마도와 비슷하게 보이는 육조혜능 그림은 한국 조계종 원류인 6조 혜능 스님의 이야기를 담았다. 절에서 방아 찧던 행자였던 혜능이 선종의 법맥을 잇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통도사 전각 곳곳에는 삼국지연의, 토끼전, 서유기 등 한국과 중국의 고대 소설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명부전에는 삼국지연의도와 토끼전도가, 용화전에는 서유기도가 있다. 해장보각 처마 밑에는 까치와 함께 해학적으로 그려진 호랑이가 있다.

용맹한 호랑이는 액운을 막아주는 벽사 역할을 하는데, 까치와 함께함으로써 나쁜 일을 막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길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중이 불교에 편안하게 다가가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고전소설 그림과 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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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견보탑품변상도[사진/백승렬 기자]



◇ 전국 유일의 사찰 현충 시설

통도사의 공간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역사의 굴곡마다 민중의 아픔을 함께했다. 6·25전쟁 때는 다친 국군을 치료하는 병원으로 쓰였다.

통도사가 육군병원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2019년 용화전 미륵불 복장 유물 조사 도중 마침내 관련 기록이 나왔다. 복장이란 불상 내부를 이른다.

복장에서 발견된 연기문에는 불상 조성 과정이 상세히 설명돼 있었다. 여기에는 "1950년 6월 25일 사변 후 국군 상이병 3000여 명이 입사해 1952년 4월 12일 퇴거했다"라는 기록이 포함돼 있었다.

용화전 뒤 대광명전 내외부에는 치료받던 군인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낙서가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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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야경[사진/백승렬 기자]



관련 증언의 대대적인 수집과 녹취가 이루어졌고 용화전과 대광명전뿐 아니라 대웅전, 관음전, 영산전 등 대부분의 전각에서 군인들이 치료받고 기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도사는 2021년 제31 육군병원 분원으로서, 현충 시설로 공식 인정됐다. 한국 불교가 고수해온 호국불교의 단면을 보여준다.

70여년 전 아픈 병사들이 희망을 품고 기록을 남겼던 전각에는 오늘날 수행과 참배가 끊이지 않고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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