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안목 진제 스님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2만1000원 |
어떤 스님이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거나 발로 밟지도 않고 오직 입으로만 물고 매달려 있는데, 때마침 나무 밑을 지나가던 스님이 물었다. "달마 스님이 서역에서 중국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답을 하려니 수십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몸이 박살이 날 것이고, 가만히 있으려니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이러한 때를 당해서 어찌해야 되겠는가.
이른바 그 유명한 '향엄상수화' 화두다. 조계종 제13·14대 종정(2012~2022년)을 지낸 진제 스님(90)은 스승 향곡 스님에게 이 화두를 받고 2년5개월간 밤낮없이 씨름하다가 어느 새벽녘에 깨우침을 얻었다. 화두를 박살 낸 것이다. 그 이후 어떤 화두에도 답을 척척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서른셋의 나이 향곡 스님에게 법을 인가받아 '경허-혜월-운봉-향곡'으로 전해진 법맥을 이은 한국 대표 선지식이 됐다.
그 후 대구 동화사 조실과 방장을 역임하고 2022년까지 10년간 조계종 최고 어른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종정을 역임했다. 현재는 부산 해운정사와 남해 성담사에 주석하며 제자와 신도들에게 부처님 법을 가르치고 있다.
스님이 10년간 종정으로 역임할 당시 대중에 펼친 수많은 법문을 담은 법어집 '인천안목(人天眼目)'이 출간됐다. 깨달은 사람의 경지라는 뜻의 제목이다.
조계종 종정은 1년에 최소 6번 중요한 법어를 내린다. 신년과 부처님오신날 두 차례와 여름·겨울철마다 스님들이 3개월간 용맹정진하는 안거의 시작과 끝 네 차례다. 책에는 진제 스님이 10년간 내린 수많은 법어 가운데 참선 수행과 관련한 법문들이 가득 들어 있다. 조주·남전·마조·임제 등 옛 선사들의 법거량과 선문답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스님의 모든 법문을 꿰뚫는 한 문장은 '부모에게 나기 전 어떤 것이 참나던고'라는 화두다. 스님은 이 화두를 들고 날마다 천 번 만 번 의심하고 의심하여 일념삼매가 도래하도록 혼신의 정진을 다하라고 권한다. 오매불망 간절히 '참나'를 찾으면 시비도 없고, 분별도 없고, 갈등도 없고, 대립도 없고 오직 평화와 행복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특히 수행을 위해 특정한 곳을 찾아갈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얼마든지 화두를 들고 진리의 문에 들어갈 수 있다고 독려한다.
조계종에서 적극 보급하겠다고 밝힌 'K명상'의 진면목도 사실은 화두를 의심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인 간화선에 있다.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 좌선하는 방법부터 간화선의 정수까지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이향휘 선임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