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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하라는 2018년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당시부터 오타니의 그림자였다. 통역을 맡아 오타니를 항상 따라다녔다. 그림자이기는 했지만, 오타니가 워낙 스타라 미즈하라 또한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스타 통역이었다. 그런 미즈하라는 오타니가 올 시즌을 앞두고 LA 다저스와 10년 총액 7억 달러 계약을 하면서 팀을 옮기는 과정에서도 따라왔다. 보통 통역은 선수가 선택하면, 구단이 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오타니의 몸값이 비싸고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는 선수인 만큼, 다저스도 미즈하라에 업계 최고 대우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미즈하라는 다저스 스프링트레이닝에서도 오타니를 따라다녔고, 당연히 이번 서울시리즈에도 동행했다. 서울시리즈로 오르는 비행기를 앞두고도 오타니와 나란히 사진을 찍은 것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 사진에는 오타니 뿐만 아니라 오타니의 아내, 그리고 다저스의 새 일원이 된 일본인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같이 있었다. 그들의 끈끈한 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즈하라는 불과 서울시리즈 1차전이 열린 20일까지는 다저스의 더그아웃에 있었다. 그런데 21일에는 미즈하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은 21일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미즈하라가 출국했나”는 질문에 “그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밤사이 대단히 큰 사건이 있었다. 미즈하라가 불법 도박에 연루됐고, 오타니의 이름까지 엮어 들어갔다는 의혹이었다.
21일 다저스와 샌디에이고의 서울시리즈 2차전을 앞두고 이 사건은 단연 화제였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이 기자회견을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관련 질문이 쏟아질 정도였다. 팀 내부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잘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모든 질문에 답변을 사실상 거부했다. 로버츠 감독으로서는 말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구단으로부터 “해당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을 법한 사안이다.
로버츠 감독은 클럽하우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묻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이어진 추가 질문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답할 수 없다”, “미안하지만 지금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피해 갔다. 심지어 미즈하라가 귀국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답변을 할 만도 했지만 로버츠 감독은 “그와 관련한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고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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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하라는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 가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일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할 수 있는 배경이다. 미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미즈하라는 이후 운명적인 사건으로 야구계에 발을 내딛는다. 미즈하라는 당시 보스턴에서 뛰고 있던 오카지마 히데키의 통역을 맡아 메이저리그를 경험했다. 이후 미즈하라는 통역 실력과 전체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고국의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사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타니 쇼헤이라는 선수를 만났다.
미즈하라는 니혼햄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려 외국인 선수들의 통역을 맡았다. 오타니는 지근거리에서 미즈하라의 성품과 능력을 살필 수 있었다. 미즈하라의 능력을 눈여겨 본 오타니는 2018년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와 계약을 한 뒤 미즈하라를 통역으로 고용했다. 미즈하라로서도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렇게 양자는 함께 태평양을 건넜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진출 초기 미즈하라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인 통역 업무가 메이저리그 그라운드나 클럽하우스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손과 발, 그리고 귀가 되어야 했다. 코칭스태프나 동료, 그리고 현지 언론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오타니의 말 또한 잘 정제해 전달해야 했다. 오타니가 특히 영어에 어두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미즈하라의 임무가 굉장히 중요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생활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외국인들이 미국에 처음 갈 때는 기본적인 통장 개설조차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 많은 잡다한 업무들을 처리해주곤 하는 게 통역들이다.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훈련 스케줄을 체크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캐치볼을 하기도 하면서 오타니의 분신처럼 행동했다. 이런 미즈하라의 다방면 활약에 일본 언론들은 ‘10도류’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는 항상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게 그를 취재한 일본 언론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번 도박 사건은 더 충격적이다.
21일 ESPN과 LA 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의 보도는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 그리고 다저스 조직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남겼다. ESPN은 오타니의 통역으로 유명한 미즈하라가 수백만 달러 상당의 도박 빚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도했고, 미즈하라와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오타니 측 변호인을 통해 미즈하라와 90분 상당의 단독 인터뷰가 이어졌고, 미즈하라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도박 빚 사실과 오타니의 계좌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남겨 큰 충격을 남겼다.
인터뷰는 두 가지 갈래에서 정리된다. 우선 미즈하라와 공식적인 인터뷰다. 그리고 추후 오타니의 변호인을 통한 정정 보도다. 우선 미즈하라와 인터뷰를 했고, 이후 오타니 측 변호인으로부터 정정 요청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내용 자체가 충격적인데, 왜 정정을 요구했느냐를 놓고도 온갖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미즈하라가 언론을 통해 인터뷰를 하고, 해당 사실을 털어놨다는 것을 다저스가 알게 됐고,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미즈하라를 전격적으로 해고한 게 현재까지 드러난 팩트다. 미즈하라는 20일 '2024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시리즈'가 열린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오타니 옆에 있었지만, 21일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타니는 이날 철저하게 몸을 숨긴 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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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빚이 있었다는 것은 미즈하라도 인터뷰를 통해 솔직하게 인정했다. 미즈하라는 그 과정에서 오타니가 불법 도박과 관련이 없고 강조했다. 다만 도박 빚을 변제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처음 인터뷰와 나중의 정정 인터뷰에서 조금 달라졌다. 현지 언론에서는 오타니가 법적인 책임에서 빠져 나가기 위한 방법을 쓰지 않았느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기본적인 팩트는 이렇다. 미 연방 정부가 한 도박 업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즈하라의 이름이 나왔다. 이 베팅 업체는 불법 도박이었다. 미국은 스포츠 베팅의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베팅 업체들이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연방 차원에서 딱히 정해진 법은 없다. 이 때문에 50개 주 중 40개 주는 합법이고 캘리포니아 등 10개 주는 스포츠 베팅을 불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ESPN은 미즈하라가 오타니와 이 사건에 어떻게 묶여 있는지를 전했다. ESPN은 '지난 9월과 10월 오타니의 이름으로 두 차례 각각 50만 달러가 송금된 은행 정보가 확인됐다'면서 '연방 정부 수사관들이 남부 캘리포니아의 매튜 보이어가 운영하는 도박 사업체를 조사하다가 오타니가 송금한 내역을 확인했다. 오타니는 자신의 이름으로 보위어의 동료에게 돈을 보냈다'고 전했다. 미즈하라의 불법 도박 사건에 오타니의 이름이 등장한 것이다.
ESPN은 오타니의 통역인 미즈하라가 도박에 빠졌고, 계속된 도박 탓에 거액의 도박 빚을 지게 됐다고 보도했다. 불법 도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미즈하라의 빚은 최근 450만 달러 수준까지 불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저리그 통역의 연봉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미즈하라는 스타 통역으로 통역 중에서는 최고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업계 추정으로 30~60만 달러 수준의 연봉이다. 그런 미즈하라가 수백만 달러의 도박 빚을 지게 된 것은 자신의 돈으로 도박을 하지 않고 도박장에서 신용으로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통역으로 잘 알려져 있고, 비교적 수입이 일정했다. 나름대로 신용이 있어 돈을 빌릴 수 있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다.
미즈하라는 20일 ESPN과 장시간 인터뷰에서 자신이 도박에 빠져 있었다고 모든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최초 인터뷰에서는 오타니가 자신의 빚을 대신 갚아줬다고 인정했다. 미즈하라는 "내가 오타니에게 도박 빚을 갚아달라고 부탁했다. 오타니는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불쾌해했지만, 이런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게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나를 위해 도박 빚을 갚아주기로 했다"고 왜 자신의 사건에 오타니가 등장했는지를 설명했다.
이어 미즈하라는 "나는 오타니가 도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주길 바란다"고 오타니는 도박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누차 강조햇다. 이어 미즈하라는 "나는 이 업체가 불법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이번 사건으로 교훈도 얻었다. 나는 수백만 달러를 잃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도박을 하고 또 했지만 계속해서 돈을 잃었다.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도박을 정말 못한다.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돈을 딴 적도 없다. 내가 스스로 구멍을 팠고 그 구멍은 계속 커져서 빠져나오려면 더 큰 돈을 걸어야 했고 계속 잃기만 했다"고 좌절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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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타니가 계좌에 등장하지 않는 방법도 있었다. 오타니가 직접 미즈하라에게 돈을 주고, 미즈하라가 불법 도박 업체에 돈을 보내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이러면 오타니와 미즈하라 사이의 거래 내역은 남지만, 오타니가 직접적으로 불법 도박 업체에 돈을 보내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오타니는 오해를 살 수 있음에도 자신의 계좌에서 돈을 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미즈하라는 이에 대해 "오타니가 돈에 관련해서는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오타니는 내가 돈을 받으면 또 도박을 할 것 같았고 그를 원치 않았다"며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미즈하라는 문제의 불법 도박장 운영자인 보이어와 2021년 샌디에이고에서 처음 만났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즉, 도박 문제는 2021년 이후 벌어졌다는 것으로 미즈하라는 2021년부터 도박을 시작해 1년 사이 빚이 100만 달러 이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미즈하라가 빚을 만회하기 위해 더 큰 도박판을 벌이는 와중에 빚은 계속 불어나며 400만 달러를 넘겼다. 미즈하라는 불법 스포츠 베팅을 했다. 유럽축구, NBA, NFL, 그리고 대학 미식축구 등에 베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저리그와 관련된 선수나 프런트는 합법적인 도박 사이트에서 스포츠 베팅은 할 수 있다. 다만 합법적인 업체여야 하고, 야구에 베팅하면 안 된다. 그 외에는 허용되지만, 미즈하라의 경우 스포츠 베팅이 아직은 합법이 아닌 캘리포니아주에서 불법 도박을 했다. 오타니의 전 소속팀 LA 에인절스도 캘리포니아주에 있다.
다만 이후 이번 인터뷰를 주선한 오타니 측 변호인은 미즈하라와 인터뷰가 끝난 이후 ESPN에 몇몇 사실의 정정을 요청했다. '미즈하라가 오타니가 직접 참석(자신의 계좌에 스스로 로그인)하여 자금 이동을 도왔고 (미즈하라가 오타니에게) 돈을 갚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정정한 것이다. 오타니 측은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계좌를 절도했으며 오타니는 대규모 절도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계좌를 도용해 돈을 보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현지 언론의 시선도 다소 엇갈린다. 야후스포츠는 이 정정 요청에 대해 오타니가 불법 도박을 하지 않았더라도 빚을 갚기 위해 대신 송금했다면 그 자체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변호인이 서둘러 미즈하라의 발언을 정리했다고 추측했다. 그렇다고 가정한다 해도 한편으로는 음모론도 있다. 적은 금액도 아니고, 50만 달러 이상이 계좌에서 빠져 나갔는데 오타니가 이를 모르고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오타니 정도의 스타라면 에이전시에서 법률이나 재정 자문을 모두 붙여주기 마련이다. 오타니는 물론 이들의 눈을 속일 정도로 미즈하라가 주도면밀했다는 것인데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오타니가 이를 전날까지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 이미 변호인을 통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오타니는 지금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경기력에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 오타니는 20일 역사적인 자신의 다저스 데뷔전에서 5타수 2안타 1타점 1도루를 기록했다. 그리고 사건이 터진 21일에도 아무런 내색 없이 경기에 나섰다. 경기 전 취재진을 피해 꽁꽁 숨은 오타니였다. 이날도 그라운드가 아닌 실내에서 타격 훈련을 했다.
그런 오타니가 처음으로 잘 드러난 사진은 바로 경기 전 선수소개를 할 때였다. 오타니의 이름이 호명되자 오타니는 힘차게 뛰어나와 다저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동료들도 전날 미즈하라의 사과를 통해 오타니 사건을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내색하지 않고 평소와 같이 훈련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매일 똑같은 다저스의 훈련 스케치였다.
오타니는 첫 타석부터 안타를 치며 경기력에 전혀 문제가 없고, 이번 사건에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오타니는 1회 첫 타석에서 샌디에이고 선발 조 머스그로브를 상대로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총알 타구를 쳐내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두 번째, 세 번째 타석에서는 외야 뜬공을 기록했으나 모두 잘 맞은, 그리고 멀리 간 타구였다. 오타니의 프로다운 모습, 그리고 정상급 기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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