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한국은행이 Fed보다 먼저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2%포인트 격차로 벌어져 있는 한‧미 금리 차를 더 키웠다간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어서다.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인 데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충분히 둔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조기 인하 기대를 늦추는 요소다.
정근영 디자이너 |
지난달 한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3.1%를 기록했다. 1월에 잠시 2%대로 내려갔지만, 농산물 가격 급등 영향으로 다시 3%대로 반등한 것이다. 농산물 가격 급등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체감 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끌어올려 전체적인 물가 안정세를 늦추는 요소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까지 상승할 거란 전망(모건스탠리)이 나오는 등 불확실성도 크다.
지난 14일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는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에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장기간 긴축기조를 유지한다는 정책 방향에 변화가 없다”며 “상반기 중 금리 인하는 쉽지 않고, 5월 여건변화를 고려해 하반기 중 어떻게 할 것인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도 주요 변수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은 1100조원을 넘어서는 등 11개월째 증가세다. 한은과 금융당국은 증가 폭이 매월 축소되고 있는 것을 근거로 둔화 흐름으로 보고 있지만,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은행 주담대 증가 폭(+4조7000억원)은 2월 기준으로 역대 세 번째로 크다.
향후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반영해 대출금리 하락세가 먼저 나타나면 가계부채 불씨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한은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상황이 완화되면) 부동산 가격 급등기를 경험한 경제주체들이 자산가격 상승 기대를 재형성하면서 부채 축소 과정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소지가 있다"고 짚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섣부른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주원 기자 |
다만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더딘 경기 회복세 등을 고려하면 긴축 기조를 지나치게 길게 가져갈 수는 없는 실정이다. 시장은 한은이 물가와 가계부채 동향을 지켜본 뒤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Fed의 인하 이후 한두 달 안에, 길면 석 달 안에 한은의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며 “다만 한‧미금리차가 여전히 역전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 인하 폭이나 인하횟수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진호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한은 금통위에서도 인하 가능성을 검토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4~5월쯤에는 (인하 시점 관련) 유의미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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