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선거와 투표

러·인도보다 긴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韓만 안갯속 투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여론조사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론(輿論·Public Opinion)이란 다수의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과 의견을 뜻한다.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는 첨예한 이슈를 다룰 때 의미 있는 판단 기준이 되고, 때로는 여론에 의해 국가 중대사가 결정된다.

특히 선거 여론조사는 유권자 입장에서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지 의사결정을 할 때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문제는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도다. 변화하는 민심 흐름을 데이터로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에도 조사 기관과 방법 등에 따라 결과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불신론까지 제기되는 형국이다. 4·10 총선을 앞둔 요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61개 여론조사 기관이 하루가 멀다고 다양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여론조사를 제대로 활용하도록 돕기 위해 몇 가지 궁금증을 풀어본다.

Q1 조사업체 성향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까

정치적 편향성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응답자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업계에서는 방송인 김어준 씨가 설립한 '여론조사꽃'과 '리얼미터' 등을 진보 성향 여론조사 업체로 분류한다.

반대로 과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회장을 지냈던 '한국갤럽'과 보수 성향 매체의 조사 의뢰를 주로 받는 '여론조사공정' 등은 보수 성향이라는 통설이 있다.

어떤 기관의 조사인지에 따라 유권자들이 선택적으로 설문에 응할 수 있고 편향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를 업계에선 '하우스 이펙트(House Effect)'라고 부른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조사협회(KORA)에 가입된 34개 회원사의 경우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것으로 본다"며 "다만 문항 구성이나 순서 조정 등을 통해 조사 의뢰기관의 성향이 드러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현재 KORA에는 한국갤럽을 비롯해 한국리서치, 메트릭스 등이 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이 관계자가 KORA 가입 회원사를 강조한 이유는 또 다른 관련 협회인 한국정치조사협회(KOPRA)를 겨냥한 발언이기도 하다.

KOPRA는 리얼미터, 모노리서치, 알앤써치 등 27개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두 협회 회원사 간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선거 여론조사를 할 때 자동응답서비스(ARS) 방식의 사용 여부다. KORA 소속 업체들은 이번 총선부터 전화면접 조사만 시행하며, KOPRA는 ARS 혼용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ARS에 비해 전화면접에 들어가는 비용이 약 3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Q2 전화면접과 ARS, 정치적 편향성 나타날까

정확도에서 차이가 날 수 있어도 보수나 진보 중 한쪽에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와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문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RS 응답이 보수 성향을 띠었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진보 성향의 결과가 나오는 사례도 있다"며 "ARS 방식 조사에는 '정치 고관여층', 즉 양쪽 진영의 강성 지지층 참여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ARS 조사는 응답률이 3~4% 수준으로 낮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보수·진보 중 어느 한쪽에 유리하다고 보긴 어렵다"며 "ARS 조사를 지지하는 쪽에선 오히려 응답자가 솔직하게 답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기계음에 따라 설문에 응하기 때문에 거짓 답변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는 얘기다.

전화면접이 응답률은 물론 정확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KORA 측은 전국 조사에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하면 최소 10% 이상, 무작위로 전화 걸기(RDD) 방식을 이용하면 최소 7% 이상 응답률을 달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재 중이거나 통화 중인 조사 대상자에 대해서는 3회 이상 재접촉을 시도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전화면접은 성별·연령 등을 묻는 질문에 거짓말을 할 경우 이를 골라낼 확률이 ARS보다 높다"고 말했다.

Q3 표본은 많을수록 더 정확하다는 말이 맞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조사업체 다수의 의견이다. 일반적으로 전체 유권자 중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면 표본오차는 ±3.1%포인트 수준이 된다. 신뢰도는 보통 95%다. 이는 같은 조사를 반복적으로 100번 했을 때 95번은 ±3.1%포인트 범위 내의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얼핏 조사 대상을 2000명, 3000명으로 늘리면 표본오차가 줄고, 신뢰도가 높아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정확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표본을 늘리기보다 1000명 대상 조사를 여러 차례 진행하는 것을 업계는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샘플링, 즉 표본을 잘 고르기만 하면 500명만 조사해도 큰 흐름을 보는 데 문제가 없다"며 "관리가 안 된 1000명 조사가 잘 관리된 500명 조사보다 더 부정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부 유튜버들은 표본이 많을수록 정확하다는 일방적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박인호 부경대 통계학과 교수는 "응답률이 10%면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응답하지 않은 90%의 문제는 남는다"며 "정확도를 높이려면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할 유권자의 응답률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Q4 전화면접 제외된 알뜰폰 사용자는 진보 성향인가

그렇지 않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무선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면접조사(CATI)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하게 되면, 이동통신 3사가 아닌 알뜰폰 사용자들은 면접조사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것이 맞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2014년 458만건에 불과했던 알뜰폰 가입자 회선 수(사물인터넷 회선 포함)는 작년 말 기준 1585만건에 달한다. 이는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 10명 중 2명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니 알뜰폰 사용자로 추정되는 젊은 층이나 저소득층 의견이 전화면접 조사에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다. 김 부문장은 "현재까지는 통신 3사 이용자와 알뜰폰 이용자 사이에 정치 성향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원호 교수는 "젊은 세대가 다수 배제되는 것이기에 알뜰폰이 빠지는 것은 조사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Q5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은 꼭 필요한가

현재 한국의 공직선거법은 선거 6일 전부터 투표 마감 때까지 정당 지지도나 후보자 선호도 등에 관한 새로운 여론조사를 공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미디어 역시 선거 6일 이전에 실시한 조사만 공개할 수 있다. 이를 '암전(Blackout)' 기간이라고 부른다. 부정확한 여론조사가 무더기로 발표되면 선거를 목전에 둔 유권자 결정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선거 직전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유권자가 여론조사를 접하고 대세를 추종하는 '밴드왜건 효과', 반대로 뒤지는 후보를 도와주는 '언더독 효과' 등을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오히려 선거 막판에 유권자들이 여론 변화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는 반론이 거세다. 무려 6일 동안이나 '깜깜이 선거'를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난해 1월 공직선거법 제108조의 선거여론조사 공표·보도 금지 기간 조항을 폐지하자는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여론조사업계와 학계는 일제히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은 필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박원호 교수는 "선거 막판에 흑색선전을 우려한 조치인데, 그렇다면 6일 전까지 마타도어는 괜찮은 것이냐"며 "해외에도 거의 없는 규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선진국들은 법적으로 금지 기간이 없으며, 러시아·인도·파키스탄 등도 금지 기간이 한국보다 짧다.

김 부문장은 "공표·보도가 안 될 뿐이지 선거 6일 전에도 많은 조사가 이뤄지고 온라인상에서 유통된다"며 "일반 유권자가 마타도어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엘리트적 사고"라고 꼬집었다.

[이유섭 기자 / 안정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