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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종교계 이모저모

[인터뷰] "'내가 너를 가르치겠노라' 하는 종교, 반드시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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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 쓴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생존 어렵던 시절의 옛 교리
풍족한 현대사회와 맞지 않아
개인의 행복 도와주지 못하면
제도로서의 종교는 사라질 것"
한국일보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불광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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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축복 문제만이 아니에요. 생각해보세요. 기성 종교들의 교리라는 게 글 아는 사람도 몇 안 되고 먹고사는 거 자체가 문제라 개개인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르던 시절에 만들어진 겁니다. 몇몇 똑똑한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대로 사는 세상이었죠. 그런데 풍요롭고 저마다 교육받은 현대 사회에서 누가 그런 말을 가만히 듣고 있겠습니까. 저 같은 교수부터 해서 예전 같은 사회적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예요. 그런데 '교리가 이러니까 이거 어기면 벌 받는다, 지옥 간다'라고 말하는 건 그냥 망하겠다는 얘기예요."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목청을 높였다. 성 교수는 최근 발간된 '종교 문해력 총서'(불광출판사 발행)에서 총론 격인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를 썼다. 그래서 최근 종교계 이슈를 물었다. 성소수자 축복을 이유로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이동환 목사를 출교시킨 사태를 종교학자로서 어떻게 보는가. 성소수자에 대한 비공식적 축복까진 허용한 가톨릭이 조금 더 낫다지만, 가톨릭 내부에선 '교리 자체는 절대 안 바뀐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귀를 열지 않으려는 완강함이다.

대한민국 종교, 이미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성 교수는 문제가 그것뿐이겠냐고 되받았다. "현대 사회가 풍요롭다는 건 선택의 폭이 무한대로 넓어져서입니다. 학교, 직업, 라이프스타일, 심지어 성적 지향까지 선택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거기다 대고 교리가 어쩌고 하니까 사람들이 종교를 떠납니다. 신도가 줄죠. 더 큰 문제는 이제 스님, 신부, 수녀, 목사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없어진다는 겁니다. 교단의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는 겁니다." 실제 스님이나 신부가 되겠다는 사람이 최근 100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 신학대학원 신입생 미달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수녀를 하겠다는 사람은 더 없다.
한국일보

성소수자 축복 문제로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로부터 출교 처분을 받은 이동환(앞줄 가운데) 목사와 그를 지지하는 종교인 등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기감 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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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게 성 교수의 생각이다. "통계를 보면 한국은 무종교인 비율이 최근 급격히 증가하다 2021년에 60%를 넘깁니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입니다. 19~29세를 보면 이 수치가 78%까지 올라갑니다. 왜 종교가 없냐고 물어보면 '무관심'이란 대답이 54%입니다. 밉고 곱고가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옛 경전 붙들고 '우리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더 좋아, 세속보다 나아'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얘기다.

인간의 종교적 심성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암울하기만 한 건 아니다. 성 교수는 템플스테이, 산티아고 순례길, 명상 열풍에서 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불교 신자는 늘지 않았지만 2002년 이후 템플스테이를 거쳐간 사람이 500만~6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도 온 발이 다 터져가며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걷기 위해 떠납니다. 마음 챙김 같은 명상의 인기는 또 어떤가요."

성 교수는 종교적 심성 자체는 죽지 않았다고 봤다. 아니 종교적 심성은 인간 존재의 근본조건이라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사라질 수가 없다. "무종교인들을 조사해 보면 '우리는 원자의 우연한 집합이고 죽으면 흩어져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라 생각하는 완전한 유물론자들은 또 극소수입니다. 그러면서 템플스테이, 순례길, 명상을 찾는다? 예전 같은 종교는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인생의 의미, 삶의 의미 같은 종교적 질문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는 얘기지요."
한국일보

지난 12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대웅전 앞에서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미국 하버드 대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불교신자가 되는 것엔 관심이 없지만 불교 체험이 인기가 많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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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세계관은 있으나 특별히 따로 믿는 종교는 없는 지금의 상황을 성 교수는 '무종교의 종교' '언어가 없어진 종교'의 시대라고 불렀다. 경전에 쓰여진 교리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이들을 종교 밖으로 몰아내고 있을 뿐이다. 종교의 미래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에 있다고 봤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내가 너를 가르치겠노라, 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돼요. 느슨한 형태의 조직, 지배하지 않고 서로를 도와주는 방식의 새로운 접근법을 찾아야 합니다." 경전과 교리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집착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개별 종교는 근원적 신성을 찾아가는 여러 갈래 길일 뿐


그런데 경전과 교리에 대한 일정 정도의 강렬한 믿음이 없다면, 그걸 종교라 부를 수 있을까. 성 교수는 종교학자인 고(故) 길희성(1943~2023) 서강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길 선생님은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올바른 이야기라는 점에서 종교는 너무 중요하다, 산 꼭대기에 어떤 근원적인 신성이라는 게 있다면 각 개별 종교들은 그 꼭대기로 올라가는 여러 트랙들로 보면 된다, 불교나 천주교 개신교 같은 기성 종교는 그중에 좀 많은 사람들이 다닌 큰길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게 가장 좋은 대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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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타계한 종교학자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목사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예수를 믿으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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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불교, 천주교, 개신교 같은 개별 종교 간 구분은 무의미해지는 건가. 결국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게 성 교수의 생각이다. 참, 성 교수의 종교는 뭘까. "따로 이거다 하는 종교가 있진 않고, 저 개인적 성향으론 유신론 쪽이 마음이 편안합니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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