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수입 과일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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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급등과 기준금리 인상을 거친 전 세계가 지난 연말 이후 인플레이션 둔화 시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주요국에선 3% 수준인 '끈적한 물가' 하락세가 더디고,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도 하반기 이후로 미뤄지는 양상이다. 2~3% 안팎의 인플레이션 속에 금리도 느리게 내리는 '중물가·중금리'가 당분간 자리 잡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20일 미국 노동통계국 등에 따르면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하면서 2%대에 진입할 거란 예상을 넘어섰다. 생산자물가지수(PPI)도 0.9% 오르면서 시장 전망치(0.6%)를 웃돌았다. 물가가 서비스 중심으로 고공행진 중인 데다, 인플레이션이 끌어올린 임금 상승세도 여전해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제시한 목표 물가(2.0%)까진 갈 길이 먼 셈이다. 스티븐 스탠리 산탄데르 캐피털마케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ed의 목표는 멀어져가고 있다"고 밝혔다.
연초 뜨거웠던 시장의 금리 조기 인하 기대도 옅어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5월까지는 금리 동결(연 5.25~5.5%) 확률이 훨씬 높다. 일러야 6월, 아니면 하반기에 금리가 내려갈 거란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당초 3월까지 내다봤던 기류가 크게 달라졌다.
정근영 디자이너 |
견조한 경제 지표 때문에 Fed가 인하 폭을 크게 잡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올 연말 기준 금리 전망은 상향되는 추세다. 지난해 말엔 4~4.25%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현재는 4.25~4.5%에 무게가 실린다. 3% 가까운 인플레이션의 유로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15일(현지시간) 물가가 다시 높아질 수 있는 만큼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도 5개월 연속 3%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지키다 지난달 2.8%로 어렵게 내려왔다. 석유류·농산물 등 가격이 들썩일 요인이 상존한다. 1년째 연 3.5%로 금리를 묶고 있는 한국은행도 '피벗'(통화정책 전환) 고민이 크다. 미국 상황을 보고 하반기 이후 움직일 거란 분석이 유력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물가는 둔화 추세를 이어 가겠지만, 누적된 비용 압력 영향 등으로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인하에 나서더라도 운신할 공간은 좁다. 2022년부터 이어진 미국과 금리 역전(2%포인트 차) 때문에 Fed보다 인하 폭이 작을 수밖에 없다. 한은이 내놓은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6%이지만, 원유 수급 등 변수가 많아 언제든 튈 수 있다. 또한 가계 부채 증가세 등이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다. 금리를 조금씩, 천천히 내릴 가능성이 높은 환경인 셈이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 한국은행, 미국연방준비제도(Fed)] |
글로벌 정세도 각국 물가·금리가 빠르게 내려가는 걸 붙잡는다. 중동 등의 지정학적 불안은 물류 불안, 원유 가격 상승을 부추기지만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탈(脫)세계화 가속 등으로 저물가 상황인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도 이전보다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중물가·중금리가 중장기적으로 '뉴노멀'에 가까워질 거란 분석이 나온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물가의 하방 경직성 강화로 저물가 시대로의 회귀가 어려워지고, 중물가·중금리 메커니즘이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반적인 물가·금리는 2009년 금융위기 이전인 2~3% 수준으로 회귀하는 중"이라면서 "중물가 중금리 상황은 향후 몇 년간 크게 바뀌진 않을 것으로 본다. 2010년대 이후의 저물가로 가긴 어렵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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