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지휘부 공백 장기화와 수사 능력이 부실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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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2021년 1월 출범 이후 3년여 만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내부적으론 지휘부 공백이 장기화하고 외부적으론 검찰과의 갈등 구도가 심화하면서다. ‘여권 인사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가 지난달 31일 공수처 기소 사건 중 첫 유죄(징역 1년)를 선고받았지만, 수사력 부족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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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차장 공백에 대행은 벌금형
지난달 16일 퇴임 기자간담회에 나선 김진욱 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공수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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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는 지난달 처장과 차장의 임기가 만료되며 두 직위 모두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직제에 따라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송창진 수사2부장이 차장 대행을 맡아 왔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일엔 김선규 처장 대행마저 항소심에서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전주지검 검사로 근무하던 2014년 수사기록을 외부에 유출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가 인정됐다.
김 대행은 2심 선고 이튿날 공수처 간부 회의에서 사직 의사를 밝혔다. “개인 자격으로 재판받는 상황에서 공직 임무를 함께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행은 제8차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29일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로써 공수처는 1~3인자가 모두 공석인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고육지책으로 현 차장 대행인 송창진 수사2부장이 처장 대행을, 박석일 수사3부장이 차장 대행을 맡을 예정이지만 리더십 부재가 공수처 부실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전직 공수처 검사는 “공수처는 출범 후 줄곧 처장과 부장검사들 간 갈등이 이어지며 리더십 리스크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그런 리더십마저 사라지며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각자도생의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며 “검사와 수사관들도 사기가 꺾인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대행 체제로는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실제로 골프 접대 의혹을 받는 이영진 헌법재판관을 지난달 소환조사하려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향한 ‘감사원 표적 감사 의혹’ 수사 역시 지난해 말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에 대한 소환조사 이후 사실상 멈춰선 상태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인 정한중 한국외대 교수는 총선 출마를 이유로 위원직에서 사퇴한다. 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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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공수처장 임명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지만, 후보 추천 절차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는 앞서 7차례 회의를 열고 판사 출신인 오동운 변호사를 공수처장 후보에 추천키로 합의했지만, 나머지 후보 1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야권 몫으로 선임된 정한중 위원(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고, 29일 회의에서 새 추천위원이 합류하면서 최종 후보 선정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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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는 감사원 3급 사건 놓고 '핑퐁' 기싸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전경.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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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검찰과의 기싸움 구도 역시 선명해지고 있다. 검찰의 감사원 3급 공무원 뇌물 수수 사건 반송 사태가 대표적이다. 공수처는 2021년 10월 감사원 의뢰로 수사에 착수해 지난해 11월 검찰에 공소 제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약 2개월간 사건 기록을 검토한 끝에 지난달 12일 “증거 수집과 관련 법리에 대한 검토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건을 공수처로 돌려보냈다. ‘보강 수사로 해결되지 않을 만큼 그간의 수사 기록이 부실하다’는 이유였다. 검찰 내부에선 수사가 벽에 막히자 공수처가 무책임하게 사건을 떠넘겼다는 시각도 있다.
공수처는 “충분한 보강 수사를 거쳐 공소제기 요구를 했다”고 반박했다. 공수처 내에선 ‘검찰의 공개 망신주기’ 의도라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결과적으로 공수처와 검찰의 신경전 속에 사건에 대한 수사는 한 달 가까이 멈춰선 상태다. 공수처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건 반송 거부 사태는 결국 공수처와 검찰의 상호 불신이 빚어낸 기싸움이자 촌극”이라며 “현행 법·규정상 어느 한 쪽의 잘못으로 결론 내리기 어렵지만, 공수처에 대한 실망 여론이 이미 높아진 상태에서 검찰과의 갈등 구도까지 장기화할 경우 공수처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조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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