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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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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무대 평정하고 V리그 컴백한 IBK 리베로 김채원 “형부(이상욱)의 ‘긴장하지 말고 설레어라’라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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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의 리베로 김채원(28)은 코트보다는 웜업존이 더 익숙한 선수다. 2015~2016 신인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1순위로 GS칼텍스의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무대에 입성했지만, 그의 자리는 주전이 아닌 백업 리베로였다. GS칼텍스 시절엔 나현정(은퇴), 한다혜의 뒤를 받치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2017~2018, 2018~2019시즌엔 각각 22경기, 20경기에서 뛰며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2019~2020시즌엔 6경기 출전에 그쳤고, 2020~2021시즌엔 단 한번도 코트 위에 서지 못했다. 그리고 그에겐 방출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출 뒤에도 배구를 놓지 않았다. 실업팀인 수원시청에 입단에 구슬땀을 흘렸고, 지난해 4월 한국실업배구연맹전에서 수원시청을 우승으로 이끌며 리베로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7월 한국실업배구 단양대회에서도 수원시청의 전승 우승을 이끌며 리베로상을 다시 한 번 수상했다.

녹슬지 않은 기량을 인정받아 IBK기업은행에서 다시 부름을 받아 2023~2024시즌을 앞두고 프로 무대로 다시 돌아왔다. 2년 만에 입성한 프로 무대에선 신연경의 백업롤을 부여받아 또 다시 묵묵하게 코트 후방을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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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김채원에게 지난 7일 김천체육관에서 열린 도로공사와의 5라운드 맞대결에서 오랜 만에 주전 출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주전 리베로 신연경이 훈련 과정에서 무릎 부상이 재발해서 엔트리에 빠졌고, 김호철 감독은 김채원에게 코트 후방의 지킴이 역할을 맡겼다.

김채원은 오랜만에 찾아온 주전 기회에서 멋진 기량을 뽐냈다. 14개의 서브를 받아 9개의 리시브를 정확히 세터 머리 위로 전달했다. 성공률은 무려 64.29%. 디그 역시 21개 중 19개를 성공적으로 걷어올려 90.4%의 디그 성공률을 기록하며 코트 후방을 든든히 지켰다.

김채원의 안정적인 수비 덕분에 세터 폰푼이 아베크롬비와 표승주, 황민경의 날개 공격, 최정민, 임혜림의 가운데 공격까지 구사하면서 IBK기업은행은 세트 스코어 3-0 셧아웃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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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기 전까지 5연패에 빠져있던 IBK기업은행에겐 봄배구 진출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값진 승리였다. 이날 승리로 승점 3을 챙긴 IBK기업은행은 승점 36(12승14패)이 되며 4위 정관장(승점 41, 13승13패)와의 격차를 줄이며 봄배구 진출의 희망을 살렸다.

경기 뒤 김 감독도 김채원에 대해 “80~90점은 줘도 될 만한 경기력이었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코트 밖에서 봐도 편안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범실 없이 좋은 활약이었다”라고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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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나고 생애 첫 방송인터뷰와 동료들의 물세례를 받은 뒤 황민경과 함께 인터뷰실에 들어선 김채원의 얼굴은 상기된 모습이었다. 그는 “이겨서 너무 좋다”고 소감을 밝힌 뒤 “실업팀에서 경기 감각을 익혀온 게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다. 주전은 아니지만, 교체로 뛰면서 실전감각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한 번씩 들어갈 때 마다 팀에 피해만 주지 말자는 마음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리베로도 리시브와 디그 중 더 잘하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김채원은 “저는 스스로 리시브가 더 낫다고 생각해요. 물론 시합만 들어가면 떨려서 그런지 연습 때만큼의 기량은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를 듣던 황민경은 “오늘은 연습 때보다 더 잘 한거 같은데?”라고 입을 뗀 뒤 “이틀 전부터 오늘 시합에 뛸 준비를 해서 그런지, 금방 자기 리듬을 잘 찾더라고요”라고 화답했다.

김 감독의 80~90점 평가를 들려주며 김채원 스스로 느끼는 점수에 대해 묻자 그는 “저는 60점을 주고 싶어요. 언니들이 잘 해줘서 잘 한거 같긴 한데 만족스럽진 않아요”라고 답했다. 옆에서 황민경은 “저는 80점이요. 1세트 더블 컨택 범실로 10점을 깎고, 여타 범실로 10점을 깎으면 80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후배를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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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은 오랜만의 주전 기회에 경기 준비 때부터 긴장을 많이 했다고. 그래서 황민경에게 도움까지 요청할 정도였다. 김채원은 “막상 주전으로 뛴다고 하니 부담감이 컸어요. 연경 언니가 주장이기도 하니까 제가 그 몫을 해낼 수 있을까 싶었죠. 그래서 오죽하면 어젯밤에 민경 언니한테 ‘이런 말 하면 안되는 것 아는데,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죠”라고 설명했다. 이에 황민경은 “너도 나를 돕고, 나도 너를 돕자. 그렇게 경기하자”고 후배의 긴장감을 덜어줬다.

김채원은 리베로 가족이다. 오빠 하나와 언니 둘이 있는 4남매 중 막내다. 작은 언니가 삼성화재의 리베로인 이상욱과 결혼을 하면서 리베로 가족이 됐다. 김채원은 “제 형부를 보면서 리시브 자세나 이런 걸 많이 배워요. 오늘은 너무 떨려서 형부한테 연락을 했더니 형부가 ‘긴장하지 말고 설레어라’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즐기라고. 원래 하던대로, 수원시청에서 뛸 때처럼 자신감 있게 하라고 말해줬어요. 큰 도움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IBK기업은행은 V리그에서 세트 플레이에 가장 능한 세터인 폰푼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다. 신연경의 부상이 장기화된다면 김채원의 이날 같은 경기력이 계속 나와줘야만 폰푼이 공격수들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세트 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교란시킬 수 있다. 과연 김채원이 이번에 찾아온 기회를 잡아내며 IBK기업은행의 봄배구 희망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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