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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의 32세 여성 A씨는 청소년기부터 빈혈 치료를 받아왔다. 늘 피곤했고 기운이 없었으며 설사·복통이 잦았다. 최근 복통이 극심해져 병원을 찾은 A씨는 10년 넘게 치료해도 낫지 않던 빈혈의 근본적인 원인과 피로·복통의 연관성을 알게 됐다. 염증성 장 질환의 하나인 ‘크론병’ 때문이었다. 장에 발생한 만성 염증 탓에 영양소 흡수가 잘 되지 않았고, 성장에도 영향을 받았다. A씨 주치의인 부산백병원 염증성 장 질환 클리닉 이홍섭(소화기내과) 교수는 “A씨는 10대 때부터 성장과 관련 있는 소아 크론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진단이 늦어져 10년 이상 빈혈 치료만 받다가 장 협착으로까지 진행됐다”며 “특히 크론병은 20, 30대에 많이 진단되는데 이런 경우 10대부터 염증이 있었음에도 몰랐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염증성 장 질환은 젊은 연령대에서도 발병률이 높은 만성 난치병이다. 위장관에 생긴 염증 때문에 설사·혈변·복통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염증 자체는 아직 완치할 방법이 없어 난치병으로 불린다. 염증이 대장에 생긴 궤양성 대장염,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어느 위치에서나 발생하는 크론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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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론병 등 환자 5년 새 41%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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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처럼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의 하나는 이 병이 과거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드물었기 때문이다. 의료진도 환자도 병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 일반적이어서 다른 장 질환과 감별이 잘 안 된다. 복통·설사를 급성 장염으로 오인하고, 항문의 염증·치핵 같은 증상으로 치질 수술만 여러 번 받은 환자들도 있다. 크론병은 장이 좁아지기 때문에 복통이 심하다. 궤양성 대장염은 설사·혈변·점액변이 많다. 염증성 장 질환이 다른 장 질환과 차이가 있는 부분은 증상이 심하단 것이다. 만성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며 최소 몇 개월 이상 통증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궤양성 대장염, 크론병 환자는 2017년 6만1170명에서 2022년 8만6354명으로 5년 새 41% 증가했다. 여전히 낯설지만 막연한 희귀 질환은 아니며 점차 많아지는 병이다.
이 교수는 “복통·설사가 반복되는데 왜 그런지 모르고, 급성 장염이 자주 생기며 살도 좀 빠지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 환자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젊은 연령에서 자꾸 반복해 아프면 이제는 염증성 장 질환을 한 번쯤 의심해볼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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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덜 먹는 식습관도 발병 요인
염증성 장 질환은 유전자만으로 설명되는 유전병은 아니다. 이 질환에 잘 걸릴 수 있는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이 여러 환경 인자를 접하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해 면역 기전과 장내 세균에 영향을 미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기를 많이 먹고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를 덜 먹는 서구화된 식습관이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이 교수는 “식이가 바뀌고 비만이면 장내 미생물이 변화해 장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인공감미료와 패스트푸드 섭취 증가, 위생적인 환경에 따른 감염 질환 감소 등이 염증성 장 질환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는 많다”고 말했다. 비만인 염증성 장 질환자가 체중을 줄이면 그 자체만으로도 염증이 가라앉는 상태에 도달하기도 한다.
한번 발병한 염증성 장 질환은 평생 관리해야 한다. 치료 목적은 염증을 가라앉혀 증상이 거의 없는 상태에 도달해 이를 유지하는 것이다. 유지 치료는 만성 염증에 따른 합병증을 낮추기 위해 필요하다. 이 교수는 “진행하는 병이기 때문에 염증 조절이 안 되면 장이 좁아지고 짧아져 망가진다. 대장암 위험도 커진다”며 “중증도가 높고 약 효과가 없어 젊은 나이에 장 절제를 해야 하는 환자들이 여전히 있으나 지금은 치료 약이 발달해 수술 위험이 줄었고 삶의 질은 높아졌다.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염증을 관리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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