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뭐하겠냐' 패배감·무력감만 팽배
"영장도 제대로 못 쓰는 검사" 자조 시선
3년 동안 구속영장 한 건도 발부 못 받아
편집자주
얼마 전 공수처의 2인자(차장)가 내분 끝에 공수처 부장검사를 고소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소장을 어디에 넣었을까요? 바로 서울중앙지검입니다. 비리 검사를 잡으라고 조직을 만들어줬더니,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다가 결국엔 검사에게 사건을 들고가 해결해 달라는 코미디 같은 일을 벌인 겁니다. 공수처는 왜 이렇게 ‘콩가루 집안’이 된 것일까요? 한국일보가 전ㆍ현직 공수처 검사들과 법조계 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 이유를 분석했습니다.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달 8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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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면 열세 사람이 있죠. 13인이 그 뒤에 세계사, 세상을 바꾸지 않았나요? 13인이면 충분합니다."
(2021년 4월 19일 김진욱 공수처장)
2021년 4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창설멤버가 꾸려졌다. 부장검사 둘에 평검사가 열하나. 그래서 13인 조직으로 시작했다. 공수처법상 검사 정원 25인(처·차장 포함)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김진욱 공수처장은 "열셋이면 충분하다"면서 큰소리를 쳤다.
2년 8개월이 흐른 지금, 소수정예를 자처했던 그 13인은 어디에 있을까. 24일 기준으로 1기 검사로 임명된 13명 중 10명이 퇴직처리됐고, 1명은 사의 표명 뒤 퇴직 절차를 밟고 있다. 이제 남은 창설멤버는 단 둘이다.
대탈출(엑소더스)의 시작은 지난해 6월. 그때를 기점으로 한두 달 간격을 두고 검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던졌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5월엔 부장검사 2명이 잇따라 공수처를 떠났다. 공수처 사정을 잘 아는 법조인들은 '공수처 엑소더스' 배경에 무력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문·예상균 전 공수처 부장검사는 퇴직 당시 "더 이상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특히 김 전 부장검사는 매 간부회의마다 지휘부에 '쓴소리'를 도맡아 했단다. 그렇게 이 조직에 애정이 많았던 그도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내부 비판 의견을 외면하고 기존 업무 점검과 평가를 하지 않는 조직은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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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2401040000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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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부족이 문제일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홈페이지에 올라온 검사 임용 공고 목록. 공수처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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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계속 나가는데, 빈 자리를 보충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공수처는 출범 이래 단 한 번도 정원을 채운 적이 없다. 그 동안 냈던 검사 채용공고만 아홉 차례다.
고질적 인력 부족은 수사력 부족의 핑계가 된 지 오래다. 김진욱 처장은 지난해 5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애초 공수처법에 정원이 너무 적게 명시돼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13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한 뒤 13개월 만에 나온 면피 발언이었다.
창설 이래 구속영장 한 번 발부받지 못한 공수처의 수사력 문제는, 정말로 사람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일까. 공수처를 겪어본 이들의 말은 좀 다르다. 기소 대상(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및 이들 가족의 고위공직자범죄)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소수정예식 운영이 얼마든지 가능하단 것이다. 공수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이 정도 규모로도 한 건 한 건 수사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수처 수사심의위원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여러 특별검사팀의 사례를 언급하며 "검사 25명이면 차고 넘친다"고 잘라 말했다. 현직 대통령(박근혜)의 뇌물죄 사건을 수사했던 국정농단 특검의 파견검사도 20명 수준이었다.
공수처가 특검과 다른 점은 돌파력을 갖춘 '수사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다. 공수처 검사 지원 요건은 '변호사 자격 7년 이상'으로 규정돼 있는데, 현재 구성원은 수사 경험이 전혀 없는 변호사거나, 판사 출신 또는, 오래 전 수사기관 근무 뒤 변호사 생활을 했던 이들이 주를 이룬다. 수사 경험이 없는 평검사들에 대해 내부적으로 "압수수색영장 하나 제대로 못쓴다"는 혹평까지 나온 터다.
안팎의 십자포화 속에 사기가 떨어진 검사들은 사직서를 썼다. 이창현 교수는 "난파선이니까 빨리 뛰쳐나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수처에 더 오래 있다간, 나와서 대형 로펌으로 이직도 안 될 것 같다'는 정도로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공수처 소속 검사는 3년씩 세 번을 연임(총 12년)할 수 있는데, 검찰처럼 정년 보장이 되지 않는 점도 퇴사를 부추긴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검찰 특수부는 힘들어도 모두 버티며 1, 2년 뒤 인사이동을 기대하는데, 여기선 힘들면 나가겠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규모가 작기 때문에 '부장검사가 힘들게 해도 1년만 참자'는 마음가짐은 불가능하다"고 자조했다.
올해 초부턴 부장검사들이 외부에서 인력을 '스카우트'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현재 김선규 수사1부장, 송창진 수사2부장, 박석일 수사3부장은 모두 대검 중앙수사부 출신으로, 지난해 10월 임용된 김 부장이 송 부장과 박 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게다가 부장검사가 몸담았던 로펌 출신인 평검사도 여럿 있다. 내부사정에 밝은 한 변호사는 "특정 부장이 끌고 온다고 해서 다 뽑아주는 사람들도 문제"라면서도 "지원자 풀이 오죽 없었으면 그랬을까 싶다"고 말했다.
구속영장 5전 5패... 부끄러운 성적표
숫자로 본 공수처 3년 성적표. 그래픽=박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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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분위기가 이러니 수사 성적표가 잘 나왔을 리가 없다. 김진욱 처장은 올해 1월 '공수처 출범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올해는 국민 앞에 크든 작든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공언했다. "조만간 성과가 날 것"이라는 자신감까지 내비쳤다. 하지만 그 뒤로 한 해가 가도록 실적은 없었다. 구속영장은 한 번도 손에 쥐지 못했고, 직접기소 3건, 검찰에 공소제기를 요구한 사건 5건 뿐이다.
그동안 총 다섯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한 번도 발부받지 못해 '5전 5패'란 오명을 얻었다. 공수처는 2021년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손준성 검사장에 대해 두 차례, 올해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은 서울경찰청 김모 경무관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뇌물 혐의를 받는 감사원 3급 간부 김모씨의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직접 기소하거나 검찰에 기소를 요구한 사건 가운데 1심으로나마 '유죄' 판결을 받은 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별채용 의혹 뿐이다. '기소 1호'였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 윤모 전 부산지검 검사의 공문서위조 사건은 모두 1심서 무죄가 선고됐다. '고발사주' 의혹 사건은 내년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검찰에 기소를 요구한 사건 중에서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사건은 검찰이 불기소 처분했다.
"한 해에 몇 건만 제대로"
이렇게 어영부영하는 사이 내년 1월 20일 김진욱 처장의 임기가 끝난다. 지금 국회에선 후임 처장 후보를 추천하려는 위원회가 꾸려졌다. 2기 공수처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다. 한 전직 공수처 부장검사는 "후임 처장은 공명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 해에 할 수 있는 사건, 해야 하는 사건 두세 건만 제대로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거기(공수처) 가서 뭐 해'라는 분위기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모으기가 더 힘들다"며 "점진적인 변화를 위해선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공수처가 지금의 상태가 된 건 법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더불어민주당(출범 당시 여당)의 책임이 크다"고도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공수처 인력 충원을 골자로 한 공수처법 개정안 외 관련 법안 37건이 계류 중이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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