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경쟁촉진법, 국내 기업 성장만 발목 잡을 것" 우려
최근 고속성장 중인 알리·테무 등 중국 e커머스 반사이익 예상
과거 인터넷실명제·구글 선탑재 등 규제 역차별로 구글이 시장 장악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의 탄식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경쟁촉진법(가칭) 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산업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해외 기업들은 또 다시 규제를 우회하면서 국내 기업들 성장만 발목을 잡는 역차별이 발생할 것이란 이유에서입니다. 과거 여러 규제를 통해 구글이 그랬던 것처럼 최근 매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 기업들이 이 틈을 타 안방을 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플랫폼경쟁촉진법은 국내 기업들만 시장을 좌우하는 대형 플랫폼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등 경쟁 제한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것입니다. '네카쿠배당(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당근)‘ 등 국내 플랫폼과 구글, 메타 등 해외 빅테크가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것으로 점쳐집니다.
이 법안은 매출, 이용자 수, 시장점유율 등 정량적 조건과 정성적 요건을 고려해 해당 기업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합니다. 이들 플랫폼에는 ▲자사 상품을 경쟁 상품보다 유리하게 노출하는 자사 우대 ▲자사 플랫폼 서비스와 다른 상품을 함께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끼워팔기 ▲자사 플랫폼 이용자의 타사 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는 ‘멀티호밍 제한’ ▲타사 플랫폼보다 유리한 거래 조건을 강요하는 최혜대우 등 4대 행위가 금지됩니다.
예를 들어 카카오T(카카오택시)가 배차 알고리즘을 이용해 가맹택시를 우대하고, 구글이 플레이스토어 유통 게임을 원스토어에서는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전 규제 대상이 된 기업들은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워지고 서비스 혁신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공정위가 위법이라고 판단할 경우 막대한 과징금도 물어야 합니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의 특징은 이용자 피드백을 바탕으로 서비스가 빠르게 변화한다는 것인데, 사전규제는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정부의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공정위가 구글 등 해외 플랫폼에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과 통상 마찰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결국 이번에도 해외 사업자들은 교묘하게 법안을 우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실제 구글, 메타 등 해외 빅테크가 거두는 우리나라 매출은 싱가포르·아일랜드 법인 등을 통해 산정되고 있다는 점도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이유죠.
.최근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는 ‘2023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오래, 자주 사용한 모바일 앱’ 조사 결과를 통해 올해 국내에서 사용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모바일 앱이 중국 직구 앱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라고 발표했다.(사진=와이즈앱)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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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번에 우리 기업들이 경계하고 있는 것은 중국 e커머스 기업들입니다. 구글이 검색, 동영상, 음원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을 위협하는 지배적 사업자로 성장한 것처럼 중국 기업들도 규제를 틈 타 이들처럼 e커머스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올해 국내에서 사용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모바일 앱이 중국 직구 앱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라고 합니다. 최근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는 ‘2023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오래, 자주 사용한 모바일 앱’ 조사 결과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중국 알리바바 자회사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 1월 대비 11월 사용자가 371만명 증가했고, 지난달 사용자는 707만명이었습니다.
2위는 중국 공동구매 앱 핀둬둬의 자회사 ‘테무’로 같은 기간 354만명의 사용자가 늘었고, 지난달 사용자도 354만명입니다. 이들 중국 e커머스업체는 초저가 상품 등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불황 속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알리익스프레스가 쿠팡을 넘어선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죠. 모바일 데이터 분석기관 이지에이웍스 마케팅클라우드가 쿠팡과 알리를 모두 사용하는 교차 사용자 363만명을 조사한 결과, 1인당 평균 사용 시간에서 알리(2.95시간)가 쿠팡(2.59시간)보다 높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플랫폼경쟁촉진법이 국내 e커머스 업체인 네이버, 쿠팡 등에 적용된다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이들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란 얘기입니다. IT업계 관계자는 ”이미 구글, 유튜브는 국내 근시안적인 규제로 인해 넘사벽 수준으로 성장했다“라며 ”이번에도 중국 기업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될 것 같다“라고 우려했습니다.
과연 기우일까요? 이미 우리는 이런 해외 역차별 문제를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실제 2010년 초기 본인확인제, 저작권법 삼진아웃제 시행으로 국내 1위 동영상업체인 판도라 TV가 유튜브에 자리를 내주고 결국 몰락한 바 있죠. 당시 유튜브가 규제를 거부하는 강수를 뒀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3년 공정위가 구글앱 선탑재 논란에 대해 섣부르게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도 국내 인터넷 서비스들이 모바일 시장에서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단초가 됐습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스마트폰에 자사 앱을 선탑재하면서 경쟁 서비스를 배제했다는 의혹에 대해, 국내 업체들의 제소로 공정위가 조사에 나섰으나 3년여 만에 무혐의 결론이 났기 때문입니다.
이후 EU를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구글의 선탑재 강제에 대한 규제 당국 차원의 제재와 과징금 부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정부는 무혐의 결론 후 8년이 지난 2021년 구글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뒤늦게 취해 늑장 대응 비판이 나왔습니다.
최근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에 힘입어 고속 성장하고 있는 음원앱 '유튜브 뮤직'도 음악 저작권료 규정을 회피한 덕이 컸죠. 지난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음원 저작권료 징수 규정을 변경해 음원 창작자의 수익배분률을 상향조정했습니다. 이에 음원서비스업체의 저작권료 부담이 증가했는데 유튜브 뮤직과 애플 뮤직은 음악 전문 서비스가 아니라는 정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저작권료 추가 지급 의무를 지지 않아 역차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역차별은 국내 음원업체들의 시장 점유율 하락과 동시에 해외 업체들의 점유율 증가로 이어졌다고 평가됩니다. 최근 유튜브 뮤직의 MAU(월간활성화이용자수)가 국내 1위 '멜론'을 앞설 것이란 예상도 있죠.
전세계 최초로 통과된 구글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도 여전히 해외 앱마켓 사업자들의 유의미한 정책 변화는 이루어내지 못한 채 국내 콘텐츠 기업들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습니다. 인앱결제 강제화를 금지하자 구글이 외부결제 수단을 허용한다고 밝혔지만, 외부결제 시에도 수수료는 인앱결제에 비해 4%p(포인트)를 낮춘 수준이기에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수수료율 등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독점력 있는 글로벌 사업자의 의도대로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입니다.
또한 현행 법률상으로는 향후 앱마켓뿐 아니라 콘텐츠를 중개하는 일반적인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에까지 규제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으면서, 당초 입법 취지와는 달리 국내 기업들에게 규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까지 이같은 이유로 플랫폼경쟁촉진법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암참은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정부에 온플법 제정 우려 의견서를 공식 전달할 방침입니다. 암참은 이 의견서에서 “한국의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독과점이 없는데도 온플법을 추진하단 자칫 중국 알리익스프레스 등 해외 사업자에게 시장을 내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디지털경제연합 역시 성명서를 내고 “온라인 플랫폼 사전규제 도입은 국내기업과 미국기업만을 대상으로 불균형적으로 겨냥해 유럽식 규제를 한국에서 복사 붙여넣기 하는 것에 불과하다“라며 ”근거 없는 섣부른 사전규제는 불필요한 물가 상승만 초래할 뿐,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과 동반성장하고 있는 영세사업자, 청년사업자들의 판로를 잃게 하고, 소비자 후생의 막대한 후퇴로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투자업계도 우려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이번 규제로 되레 스타트업 투자가 전면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21일 본인의 X(옛 트위터)에 "공정위의 온라인 플랫폼 법률안이 통과될 경우, 우리는 더 이상 혁신적인 스타트업인 네이버나 배달의 민족, 쿠팡 같은 기업을 한국에서 목격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죠.
국내 동영상 플랫폼을 장악한 유튜브는 최근 광고 없이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요금제 '유튜브 프리미엄'의 가격을 월1만450원에서 월1만4900원으로 43% 인상하는 배짱 영업으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배짱에는 마땅한 대체재가 없는 독과점 지위가 자리잡고 있죠.
지금은 저렴한 가격으로 한국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중국 e커머스 기업들에 국내 기업들이 안방을 내어줄 경우 어떻게 돌변할지 '방심'하면 안될 것입니다. 섣부른 규제로 인해 또 한번 기회를 놓치는 일이 반복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scho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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