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 역량 강화 위해 ‘말하기 기술’ 습득
국회선 반신반의…예산 일부 삭감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2024년에 실시할 계획인 ‘스피치 교육’을 맡은 민간업체의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스피치 교육 과정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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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저희가 수사1·2·3부의 부장을 다 대검 중수부 출신으로 해놨는데, 중수부 출신들이 와도 실적이 갑자기 확 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린다,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11월 1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공수처의 저조한 수사활동을 지적하자 고개를 숙인 것이다. 최근 국회가 진행한 2024년도 예산안 심사에는 이런 공수처의 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됐다. 공수처가 요청한 각종 예산이 줄줄이 삭감된 것이다.
특히 공수처가 내년에 새롭게 시행하겠다며 편성한 ‘검사 스피치 교육’이 주목을 받았다. 공수처 검사들이 ‘말하기 기술’ 등을 습득함으로써 공판활동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이다.
■교육 대상자 10명으로 절충
공수처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에는 ‘검사 스피치 교육’이 신규 사업으로 담겼다. 공수처 검사들이 사건을 기소한 뒤 법원에서 진행되는 공판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교육은 민간업체가 맡는다. 교육 내용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말하기 기술’, ‘발성·발음 트레이닝, 자세·제스처·시선 등 교정’, ‘PT(프레젠테이션) 작성 훈련’, ‘실습상황 녹화 및 모니터링’ 등이다. 교육은 이틀간 이뤄진다. 1인당 비용은 강의료 130만원과 교재비 10만원 등 140만원이다. 공수처는 검사 16명을 대상으로 해서 예산 총 2240만원을 국회에 요청했다.
여운국 공수처 차장은 지난 11월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스피치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공수처 검사 다수가 검사 경험이 없는 변호사 출신”이라며 “공판중심주의 강화라든지 공판역량 강화 차원에서 스피치와 PPT 등의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2일 만에 강의를 끝내는 것을 추진하는 것은 인력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검사들이 이 교육을 받기 위해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검찰은 워낙 기관이 크고 노하우나 관련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히 쌓여 있지만 우리가 미비돼 있다 보니 적어도 법정에서 검사답게 공소 유지 활동을 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스피치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은 공판역량 강화라는 목적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교육은 최고경영자 스피치 과정으로, 공판에 특화된 교육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이런 교육보다는 공판절차와 관련한 실무상의 지식 습득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나왔다.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수강료가 140만원에 달하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필요성은 인정된다”면서도 “그 효율성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만큼의 교육이 될까, 이틀 동안 집중해서 하면 공판중심주의하에서 상대방을 말로 설득하기 위한 역량이 확 늘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있다”라고 말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도 “검사로서의 법정 언어를 교육해야 하는데, 그러면 공판활동을 오래 한 (검찰청) 검사들이 강의를 해야 한다”라며 “일반 스피치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는다니 정치 연설하는 걸 배우겠다는 건가”라고 했다.
검사 출신인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우선 시범사업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 의원은 “10여 년 전에 이와 비슷한 교육을 일부 (검찰청) 검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적이 있다”라며 “그런데 그 이후에는 실효성이 없어서 스피치 교육이 없어진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수처 검사) 16명이 아닌 8명을 대상으로 내년에 시범사업을 한번 해보고, 효과가 검증되면 내후년에 똑같이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나”라고 제안했다. 박용진 의원도 여기에 동의했다.
이에 여운국 차장이 “10명 정도라도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라며 절충안을 제시했고 위원들이 받아들였다. 스피치 교육 예산은 2240만원에서 840만원 줄어든 1400만원으로 책정키로 했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지난 11월 1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법사위의 삭감된 안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최된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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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배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일단 민사재판보다 형사재판에서 말하기가 중요하다. 민사에서는 말보다는 서면 제출로 갈음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형사에서는 서면도 제출하지만 검사와 피고인 측이 말로 변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며 적절한 공소 유지를 위해 스피치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실제 형사재판에서 변호사나 검사가 말을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못 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특정 사안을 논리적으로 설시하는 교육이라면 비용 여부를 차치하고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고 평가했다.
■형사보상금 예산은 전액 삭감
이 외에 공수처가 운용하는 각종 위원회 관련 예산도 잇따라 감액됐다. 올해 위원회의 개최 실적이 부진하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다. 우선 공소심의위원회의 회의 참석 수당 예산을 2700만원에서 1100만원 삭감키로 했다. 공소심의위는 공소 여부를 심의하는 자문기구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다. 수사심의위원회와 영장심의위원회 등 수사와 관련한 6개 위원회의 회의 참석 수당 예산도 9300만원에서 1900만원을 줄이기로 했다.
공수처가 계획한 내년도 형사보상금 예산 5650만원은 전액 삭감됐다. 형사보상금은 구속된 피의자가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피고인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 지급한다. 그러나 공수처가 올해 11월까지 기소하거나 구속한 사건은 없다. 내년에 구속 사례가 나오더라도, 불기소 결정이나 무죄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형사보상금이 집행될 가능성이 작다는 점이 고려됐다. 아울러 공수처가 형사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는 형사보상금 지급 기관을 검찰로만 규정하고 있다.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공수처가 형사보상금을 지급할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공수처의 내년 예산안도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다. 국회는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인 12월 2일을 넘기고도 아직 처리하지 못한 상태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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