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한국 입국을 부당하게 퇴짜 맞았다.”
이달 초 태국 네티즌들 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시태그(#)는 ‘한국 여행금지’였습니다. 한국 여행을 갔다가 입국 심사과정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해 발길을 돌린 태국인들 사례가 급증했다는 것이지요. 여론을 달래기 위해 태국 총리까지 나서야 할 정도로 반향이 컸습니다.
한 태국인 여성이 한국 입국 심사대에서 거절당한 경험담을 올린 엑스 계정. 엑스 캡처 |
우리 정부는 최근 태국인의 불법체류가 늘어나면서 입국절차를 강화했을 뿐이라고 항변합니다 국내에 입국한 태국인 불법체류자 수는 2015년 5만2,000여 명에서 올해 9월 기준 15만7,000여 명으로 급증했죠. 태국인 체류자의 78%가 불법체류 상태라는 것입니다. 태국인들이 법을 지켰다면 입국절차가 깐깐해질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죠.
하지만 입국을 거절당한 태국인은 비행깃값과 호텔비를 낸 일반 관광객이었습니다. 불법체류자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죠. 한국의 태도에 ‘인종차별’이라는 반발과 더불어 보이콧 운동이 확산한 이유입니다.
항의 논평 없이 '외교적 해결' 나선 태국 정부…그 배경엔
그런데 태국 정부가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한-태국 차관급 정책협의회에 이어 조만간 영사국장 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서두르지 않는 모습입니다.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죠.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자 일본인의 입국을 제한하며 논평까지 낸 우리 정부와는 대조적입니다.
태국의 최대 일간지로 알려진 ‘타이랏’의 온라인탐사팀도 “한국 내 불법체류를 하는 국적 1위가 태국”이라며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원산지 1위도 태국이라 경계가 심한 편”이라고도 보도했습니다.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모습입니다.
태국 정부와 언론은 왜 그런 것일까요.
지난 3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4차 한-태국 정책협의회'. 외교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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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열린 한-태국 영사국장회의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 내 태국인 불법체류자 감소 문제를 논의할 때 태국이 꼭 언급하는 사안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내 외국인고용허가제(EPS) 할당 확대입니다.
외국인고용허가제(EPS)는 한국 정부가 인력을 구하지 못한 한국 기업에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알선해주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적용받은 외국인 노동자는 E-9 비자나 E-10 비자 등을 발급받고 4년 10개월 또는 6년 체류가 가능하죠. 이들은 더럽고 어려우면서 험한 3D업종에 주로 배치를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국가들의 국민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EPS 지원을 합니다.
그런데 이 제도에는 할당, 그러니까 쿼터가 존재합니다. 전체 11만 명을 뽑을 때 태국과 중국,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스리랑카, 미얀마 등 각 국가 노동자에게 할당량을 각각 나눠주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 할당을 두고 국가들은 한국 정부에 최대한 협조적으로 대응하려고 합니다. 이주민 노동자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도 뭐라 말을 못 하죠. 할당량이 줄어들 수 있으니까요.
일반 관광객까지 한국을 드나드는 데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당당하게 ‘불법체류자’ 문제를 꺼내 든 이유입니다.
외국인고용허가 쿼터로 '갑' 위치에 오른 정부
태국 인기 가수 암 추띠마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게시글. 한국에서 일어난 태국인 불법체류자 체포 사태를 두고 죄송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적혀 있다. 방콕인사이트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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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외국인고용허가제가 ‘불법체류 외국인을 양산하는 악법’이라는 지적을 받는다는 걸 아시나요.
가까운 나라 일본을 봅시다. 일본 법무성이 지난 5월 기준 발표한 불법체류자 현황을 보면 2위가 한국이고 태국이 뒤를 잇습니다. 하지만 규모는 각 9,500~1만 명 수준에 그칩니다. 비슷한 환경인데도 한국에 불법체류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입니다.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은 매년 35만 명의 노동력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허용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할당량은 약 11만 명에 불과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수요로 하는 기업은 여전히 많지만, 정부가 허가하는 할당 규모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을 계속하고 싶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비자가 만료된 채 체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무비자 입국과 더불어 취업을 알선하는 '브로커' 사업도 활발해졌습니다.
외국인고용허가제를 적용받아 입국했다가 비자 기한이 만료돼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난해 정부의 고용허가제에 따라 중소기업에 취업했다가 임금 체불을 신고한 이주 노동자는 약 1만5,000명. 피해를 진정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비자가 만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시 비자인 G-1 비자를 발급받아도 경제활동이 금지돼 떼인 돈을 포기하고 귀국하거나 불법체류자로 남아 끝까지 소송을 벌여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약점을 이용해 기초적인 주거환경(EPS는 외국인 노동자를 소개받은 중소기업이 숙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을 제공하지 않는 인권 침해 사례도 발생합니다. 지난 3월 태국인 이주노동자가 돼지 우리 안에서 10년 이상 숙식하며 일하다 숨지는가 하면 2021년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다 추위에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마다 외국인고용허가제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뚜렷한 개선 조치는 없었습니다.
EPS 할당에 이번엔 여행허가제까지…가중되는 정부의 '갑질'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면세구역에서 여행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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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외국인고용허가 할당량을 두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정부는 동남아시아 관광객들까지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한국 전자여행허가(K-ETA) 제도입니다.
K-ETA는 기존 무비자 입국대상 112개 국가의 국민들이 한국을 여행할 때 의무적으로 사전에 모바일이나 홈페이지에서 여행 관련 정보를 등록하거나 허가를 받게 한 제도입니다. 신청한 후 '불허' 판정이 나오면 한국 입국이 불가능합니다. 사실상 비자 역할을 하는 셈이죠. 2021년 9월부터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불법체류 대응을 위해 도입됐는데요.
법무부는 지난 3월부터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일본과 미국 등 22개국 여행객에 K-ETA 면제를 결정했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는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특히 태국은 우리나라와 무비자 협정을 맺고 있는데도 K-ETA 면제가 안 되고 있는 것이죠. '한국이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여러분이 태국 당국자라면 한국 정부에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태국 관광객의 자유로운 입국이 이뤄지도록 하려면 한국이 K-ETA 면제를 해줘야 합니다. 열쇠는 전적으로 한국이 쥐고 있는 것이지요. 가뜩이나 고용허가 할당을 두고 한국에 싫은 말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태국이 보다 강하게 한국에 불만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한국에 대한 반감이 내부적으로 축적되고 있다고 해도 당장 한국에 협조를 당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한 건, 한국에 매력을 느꼈던 태국을 비롯한 다수의 동남아시아 국가 사람들이 최근 반한 감정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현지 정부 당국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칫 우리의 갑질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정부의 불법체류자 통제도 필요하지만, 외교전략의 주요 축인 동남아 국가들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 또한 중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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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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