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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위안부 日배상책임 가른 '국가면제'…"국제 관습법 따라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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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1심 각하 깨고 외국 사례 열거하며 "개인 청구권 보호 방향"

상급 법원 판결 의미 있지만 실제 배상까지는 난항 예상

연합뉴스

감사 인사 전하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의 1심 각하 취소 판결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2023.11.23 ondol@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권희원 기자 =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재판부가 23일 1심의 각하 판단을 뒤집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이 주권국가인 일본에 대해 한국 법원의 재판권이 미치지 않는다는 '국가면제'를 내세워 소송을 각하한 반면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일본은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법원 판단이 있기 전까지는 국가면제의 해석을 둘러싼 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 1심 각하 판결 핵심은 '국가면제'…2심은 인정 안 해

2021년 4월 선고된 1심은 한 주권국가가 다른 나라 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고 각하 판결했다.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하면 선고와 강제 집행 과정에서 외교적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게 당시 재판부 판단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을 상대로 유럽 여러 국가에서 피해자들이 소송을 냈으나 국가면제를 이유로 각하된 사례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황성미 허익수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의 일본에 대한 재판권을 인정한다"며 정반대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일본에 대한 국가면제 인정 여부는 법원으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국제 관습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소송이 제기된 국가의 영토에서 그 국민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의 경우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 관습법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유엔 국가면제협약과 미국·영국·일본 등 다수 국가의 입법 내용, 이탈리아·브라질·우크라이나 법원의 판결 등을 차례로 검토한 뒤 "국가면제와 관련한 국제법 체계가 이미 개인의 재판 청구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일본의 행위는 국가면제가 부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못박았다.

한편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일본이 별도로 변론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필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다.

일본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는 방어 논리를 펼칠 수 있기는 하지만 아예 변론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부가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연합뉴스

꽃다발 받는 이용수 할머니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서울고등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1심의 '각하' 판결을 취소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선고 결과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꽃다발을 받고 있다. 2023.11.23 ondol@yna.co.kr


◇ 대법원 판단 어려워 '국가면제' 혼선 지속 전망…실제 배상도 험난

이번 판결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핵심 쟁점이 된 국가면제와 관련해 상급 법원인 서울고법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혼선의 지속은 불가피해 보인다.

일본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서다.

일본은 국가면제에 따라 한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며 1심부터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줄곧 무대응으로 일관해왔다. 이번 서울고법 판결도 일본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2021년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1차로 낸 손해배상 소송도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는 서울중앙지법의 1심 판단에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으며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1심 재판부는 국가가 반인권적 행위로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줬을 경우까지도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3개월 뒤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이 별도로 제기한 2차 소송에서는 1심부터 국가면제를 달리 판단했고 상급 법원인 서울고법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법조계에선 피해자들의 승소 판결 확정에도 실제로 일본에서 피해를 배상받을 길은 요원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은 1차 소송 1심 판결 이후 일본으로부터 소송 비용을 추심하는 절차에 착수했으나 법원 인사이동으로 구성이 바뀐 재판부가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어 소송비용을 추심할 수 없다'는 결정을 했다. 이에 불복해 피해자들이 제기한 항고도 각하됐다.

1차 소송 원고들은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재산을 파악해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재산 명시'도 신청했으나 일본 정부가 '서류 번역이 잘못됐다'는 등의 이유로 서류 송달을 거듭 거부해 결국 각하됐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 듯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단 일본의 자발적 이행을 촉구하는 명분으로 이번 판결을 내세우되 강제집행 등의 절차도 필요하면 고민해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용수 할머니 등을 대리해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위안부' 문제대응 TF 단장 이상희 변호사는 이날 회견에서 "국제 사회가 일본에 자발적 사죄와 이행을 촉구하는 데 이 판결을 활용할 것"이라며 "강제집행 등의 절차에 대해서는 열어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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