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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공식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예산 200억 ‘빈손’ 공수처…6907건 중 기소는 8건뿐이었다 [미완성 공수처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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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공수처 上]



“12월에 출석할테니 기다려달라”(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안 나오려고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공수처 관계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대환)는 한달째 피의자인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과 소환조사 시기를 둘러싸고 옥신각신이다. 특별수사본부는 공수처가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노린 표적 감사의 위법성을 밝히겠다며 출범시킨 조직이다. 공수처는 지난 9월 6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과 중구에 있는 감사원 특별조사국 압수수색에 수사인력의 3분의 2 수준인 40여 명을 동원했고 곧 이어 감사위원 6명 전원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그러나 수사는 그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다. 전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보고서 공개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던 조은석 감사위원을 제외한 다른 감사위원들은 서면을 내는 대신 아무도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지난달 13일 첫 소환통보를 받은 유 사무총장은 5~6일 간격으로 계속된 4번의 소환통보에 “방어권 침해”라며 맞서고 있다.

전 전 위원장에 대한 표적감사 의혹 수사는 김진욱 처장 체제의 공수처에겐 ‘마지막 승부’인 셈이지만 검·경에선 “3년간 반복해온 지지부진의 완결판”(수도권 검찰청의 부장검사)이라는 관전평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국회는 지난 3일 김 처장 후임자 인선을 위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구성(7명)을 마무리했다. 추천위는 8일 위촉식 이후 본격 활동에 돌입한다.



1기 말미에 ‘대어’ 겨눈 공수처…칼은 뺐지만



중앙일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대환) 수사관들이 지난 9월6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위해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특수본이 이날 감사원을 압수수색 한 건 감사원의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 감사 의혹’과 관련해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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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를 출범시킨 더불어민주당이 자신들의 고발로 시작된 감사원 수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절박하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처장 임기 내 이 사건(감사원 표적 감사,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다면 단언컨대 공수처는 제2의 특별감찰관실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세금 먹는 하마라는 꼬리표가 붙을지도 모른다. 절박한 심정으로 수사해달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수처 내부엔 이미 회의론이 깔리고 있다. 익명을 원한 공수처 관계자는 “민주당이 표적감사로 감사원을 고발한 건 이미 1년도 넘은 지난해 8월”이라며 “국정감사(10월 19일) 전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사한 티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9월 압수수색 등을 ‘정치적’ 움직임으로 보는 시선이다. 또다른 공수처 관계자는 “김 처장 임기 만료 3개월을 앞두고 돌연 강제수사가 활발해진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이 수사에서 누구를 기소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며 “퇴임 이후를 준비하는 김 처장이 정치권에 보여주기식 수사를 하는 차원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 수사 상황에 대해 잘 아는 한 정부 관계자는 “난이도가 높은 수사일수록 압수물 포렌식→실무자 조사→고위층 소환의 단계를 차분히 밟아나가는 게 순리인데 첫 압수수색 한 달 만에 핵심 피의자인 유 사무총장을 소환하는 것 자체가 수사가 매끄럽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출범 2년 10개월…1기 공수처 성적은 ‘0.1%’



중앙일보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9일 국회 법사위 공수처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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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가 한창인 와중에 나오는 구성원들의 냉소적 반응은 출범 후 약 2년 10개월간 성과 부진·중립성 논란·리더십 부재 등 총체적 난국을 경험하면서 누적된 피로감에 가깝다. 공수처가 출범 이래 처리를 완료한 사건은 지난 9월 말 기준 6907건으로, 이중 직접 기소와 공소제기 요구는 각각 8건(0.1%), 구속영장 발부는 0건에 그쳤다.

그나마 직접 기소한 8건은 동일 사건의 여러 혐의가 중복된 것으로 사건 수로만 따지면 ▶김형준 전 부장검사 뇌물 수수 ▶손준성 검사장 고발사주 ▶전 부산지검 검사의 수사기록 위조 등 총 3건으로 줄어든다. 3건 중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고발사주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2건의 1심 결과는 모두 무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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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공수처 최초의 자체 인지 사건이었던 서울경찰청 소속 김모 경무관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의 결과는 참담했다. 서울중앙지법 윤재남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지난 8월 2일 김 경무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피의자가 수령한 경제적 이익과 다른 공무원의 직무 사항에 관한 알선 사이의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고, 피의자가 구체적인 사건에서 알선 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할 객관적인 증거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후 수사는 장기 표류중이다.

이 외에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재수사와 관련해 검찰로부터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성접대 당사자) 면담보고서 허위작성 의혹’을 넘겨받고도 수사 9개월 만인 2021년 12월 검찰에 다시 돌려준 일, 김 전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수사 외압 의혹을 2번이나 검찰에 넘긴 일 등은 공수처 스스로 존재 이유에 물음표를 단 사건으로 평가된다.



“野 없었으면 진작 망했을 가게”…중립성 논란도



중앙일보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인 박범계 의원(가운데) 등이 지난 3월22일 경기 과천정부청사에서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감사와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감사원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성오 기획위원장, 박범계, 김성원 의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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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가 출범 직후인 2021년 3월 자초한 ‘이성윤 전 중앙지검장 황제 에스코트’ 사건 이후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공수처 국정감사에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민주당이라는 단골 고객이 없었으면 진작 망했을 가게 같다”며 “(민주당 사건을) 지난해 7건, 올해 19건을 접수했다. 무슨 원청과 하청기관 같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중립성 논란은 지난해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 절정에 달했다. ▶고발사주 사건▶옵티머스 사건 부실수사 의혹 ▶판사사찰 문건 의혹 등은 모두 대통령 선거 출마설이 돌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한 수사였다. 그러나 대선을 전후로 이 사건들은 모두 불기소나 무혐의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현재도 공수처는 윤석열 정부에서 발생한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관련 수사 외압 의혹, 수원지검의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부실수사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수사 미숙까지…과제 떠안고 2기 향하는 공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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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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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과정에서의 절차적 미숙함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2월엔 김 경무관의 뇌물수수 혐의 수사과정에서 뇌물 공여자로 의심되는 이상영 전 대우산업개발 회장의 압수물을 포렌식하면서 이 회장의 변호인 A씨의 입회를 거부했다가 망신을 샀다. A 변호사가 제기한 준항고 재판에서 공수처는 “A 변호사가 이 전 회장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한 자금세탁자도 함께 변호하면서 이 전 회장에게 불리한 증거·진술 등을 조작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변호인 참여권을 배제할 사유가 못 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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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2015년 12월 발생한 전직 부산지검 검사의 수사기록 위조 의혹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선고유예가 이미 확정된 사건을 공수처가 별도 혐의로 다시 기소했다가 1심에서 무죄가 나온 사건이다. 공수처는 피의자인 윤모 전 검사를 대면 조사조차 하지 못하게 되자 2022년 7월과 9월 2차례 체포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범죄의 구성요건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윤 전 검사가 고소인의 고소장 및 수사기록 등을 분실한 후 같은 고소인의 다른 사건 고소장을 복사해 문제의 사건 수사기록에 끼워넣었다는 것에 사문서위조 혐의를 적용했다. 사문서위조는 복사한 고소장이 원본과 내용적으로 다를 경우에 성립하는데 재판 과정에선 윤 전 검사가 고소장을 복사만 했을 뿐 개작(改作)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함께 적용한 공문서위조 혐의에 대해 법원은 “공수처가 제출한 증거만으론 윤 전 검사의 위조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진욱 처장은 성과 부진과 관련해 국감에서 총 6번 “송구하다”고 사과하면서도 국회에 ▶수사·행정인력의 절대적 부족 ▶3년마다 재임용 심사를 받아야하는 검사 신분상의 불안정성 ▶고위공직자로 제한된 수사범위 등 문제점 등을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간 누적된 공수처의 수사 부진은 오히려 예산낭비라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2021년 공수처 예산은 예비비 포함 232억1800만원 중 92억7200만원(39.9%)이, 지난해엔 197억770만원 중 54억1100만원(27.4%)이 불용됐다. 수사 예산 역시 2년 연속 절반도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공수처에 배정된 2023년도 예산은 176억8300만원, 내년도 예산안은 202억400만원에 이른다.

중앙일보

박경민 기자



허정원·김정민·박현준·김민중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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