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제국의 위안부’ 피해자 등 반발에 논란
벌금형 선고한 원심 파기하고 기소 8년 만에 법적 공방 종결
법정을 나서며…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 등으로 표현해 재판에 넘겨진 박 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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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책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 등으로 표현해 재판에 넘겨진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박 교수를 기소한 지 8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6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이 사건의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며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은 일의 내용이 군인을 상대하는 매춘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생활을 위해 본인의 선택에 따라 위안부가 돼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는 매춘업에 종사한 사람이다’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 일본군이 아니었다’ 등 표현을 써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박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가 된 대목의 대다수는 사실 적시가 아닌 가치 판단의 영역이라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일부는 명예훼손적 사실을 적시했다고 인정되지만, 개인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피해자가 특정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박 교수에게 명예훼손의 고의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책에 표현한 내용들이 박 교수의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박 교수가 허위라는 점과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도 이런 표현을 썼다고 봤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제했다.
2심에서 사실을 적시했다고 인정한 표현은 문구만으로 공소사실에 ‘적시 사실’로 규정된 명제를 곧바로 이끌어내거나 유추하기 어렵고, 일부 표현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처지와 역할에 관한 피고인의 학문적 의견 내지 주장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 책 전체 내용과 맥락에 비춰보면 검사의 주장처럼 박 교수가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하였다는 등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문제가 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맥락이나 집필 의도에 의하면 박 교수는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제국주의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있으므로 일본의 책임에만 주목해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해당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법원은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 등에 비춰보면 위안부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나 균일한 특성을 가진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고, 책의 표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 사실 진술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며 “(박 교수가) 통상의 연구윤리를 위반했다거나 피해자들의 자기결정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성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학문적 표현물로 인한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성립 판단 시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한 판결”이라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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