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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제국의 위안부’ 무죄 반전…대법 "사실 적시 아닌 학문적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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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6일 오전 박유하 교수가 서울 대법원 법정을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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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제국의 위안부책에 담긴 내용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인가를 두고 6년 가까이 살펴본 결과, 그렇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26일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책제국의 위안부에 담긴 내용은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이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허위 사실’로 봐 유죄를 선고했던 서울고등법원은 대법원의 무죄 취지에 따라 판결을 다시 해야 한다.

이 사건 수사는 2013년 8월제국의 위안부발간 이후 2014년 6월 나눔의집 안신권 당시 소장(현재 구속) 등이 주도해 할머니 이름으로 고소가 이뤄져 시작됐다. 이듬해 검찰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2017년 1월 서울동부지법 형사 11부(부장 이상윤)는“학문적 표현의 자유는 틀린 의견도 보호한다”며 무죄를 줬으나 9개월 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문석)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피해자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줬다”며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1·2심 판단이 엇갈린 후, 사건은 대법원에 5년 11개월간 머물렀다.

문제의 표현들이 증명 가능한 ‘사실’인지는 상고심까지 이어져 온 쟁점이었다. ‘의견 표명’이 아닌, ’사실의 적시’여야 형법상 명예훼손죄란 도마 위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35개 표현을 문제 삼았는데 1심 법원은 그중 5개를, 2심 법원은 11개를 ‘사실의 적시’로 봤다. 다만 1심은 그 5개도 피해자들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죄가 안 된다 한 것이고, 2심은 그렇지 않다며 11개를 모두 ‘명예훼손적 사실의 적시’라 봤다. 박 교수는 11개 유죄 받은 게 억울해서, 검찰은 나머지 24개 무죄 나온 걸 참지 못해 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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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7년 걸쳐 두 번 뒤집힌 유무죄…대법원 “모두 학문적 의견”



하지만 대법원은 1·2심 모두와 다른 전제에 섰다. 35개 전부를 ‘의견 표명’으로 본 것이다. 재판부는 “박 교수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면서 “전체 내용과 맥락에 비추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하였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문제의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보다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의 책임을 부인할 순 없으나 제국주의 사조·전통적 가부장제 질서 등 사회 구조적 문제도 있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되기 어렵다는 주제의식을 부각하려 한 것”으로 읽었다.

학문적 연구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2심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은 이날 판결에 대해 “학문적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하며 학문적 표현물로 인한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성립 판단 시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했다”고 설명했다.



“할머니 ‘주변인’과의 싸움”…무삭제판·민사 소송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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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저서 삭제판과 소송 경과 등을 올리고 있다.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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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는 이 사건 기소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2015년 말 김철 연세대 교수·장정일 작가·금태섭 변호사 등 194명은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란 성명을 냈다. 물론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라 본 교수들도 있었다(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 등 60명).

이날 대법원에서 자신의 선고를 들은 박 교수는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판결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상의 자유를 둘러싼 판결이었다”고 SNS에 소회를 남겼다. 그는 “이 싸움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저와의 싸움이 아니라 할머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저와의 싸움”이라며 “그런 주변인들의 주장이 국민 상식이 되고 국가의 견해가 되면서 그에 반하는 의견을 국가가 처벌하려 했다”라고도 썼다.

제국의 위안부는 2015년 6월 이후 문제의 표현들을 ‘OOO’ 처리한 삭제판으로 발행됐다. 나눔의집은 박 교수를 상대로 할머니들에게 3000만원씩 지급하라는 민사소송도 냈는데, 1심에서 1000만원씩 인용됐으나 2심은 형사소송 결과를 기다리느라 6년째 멈춰있다. 모두 이날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상황은 반전을 맞을 수 있게 된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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