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대법원. 2015.8.20/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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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표현하는 등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유하 세종대학교 명예교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 판단을 내렸다. 2017년 2심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지 6년 만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6일 오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박 교수는 2013년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 등으로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2015년 불구속기소 됐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제가 된 35개 표현 중 5개가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 해도 피해자들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위안부라는 역사적 집단을 말한 것으로 피해자가 특정됐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사실 적시로 인정한 5개 표현들 외에 추가로 6개 표현을 사실의 적시로 인정했다. 아울러 이 표현들이 허위사실 및 명예훼손적 사실적시에 해당하고, 피해자도 특정돼 명예훼손의 고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 교수가 위안부 연구를 많이 한 점을 고려했을 때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기술로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가 저해될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허위사실 적시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고 이에 따라 피해자들의 사회적 가치와 평가가 크게 훼손됐고 큰 정신적 고통을 줬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도서 내 문제가 된 표현들에 대해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이나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피고인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제국주의 사조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해 양국 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해당 표현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선 표현의 적절성이 형사 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해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역사적 사실'과 같이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후적 연구와 검토, 비판의 끊임없는 과정에서 재구성되는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학문적 표현물로 인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성립 판단 시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했다"며 "학문적 표현물에 관한 평가는 형사 처벌에 의하기보다 원칙적으로 공개적 토론과 비판의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선언했다는 점에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조준영 기자 ch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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