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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황금연휴’ 마지막 날인 3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서 버스 기사 최영근씨(65)가 마을버스를 몰고 있다. 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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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간의 ‘황금연휴’ 마지막 날인 3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 구로구의 한 버스 차고지에서 20년차 버스 기사 박모씨(56)가 추석 연휴를 쉬고 온 동료 기사와 인사를 나눴다. 이날 오전 4시30분부터 서울 도봉구 도봉산역에서 구로구 온수역으로 향하는 버스 첫차를 운전한 박씨는 추석 연휴 동안 명절을 쇠러 서울 각지를 오가는 승객들을 날랐다.
박씨가 고향인 전남 목포를 다녀온 것은 5년 전이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연휴 때도 ‘시민의 발’인 버스는 운행을 계속하기 때문에 박씨를 비롯해 버스 기사들이 자리를 비우기는 여의치 않다. 박씨는 “버스가 여러 역을 지나기 때문에 연휴 동안 짐가방이나 선물을 들고 타는 귀성객을 많이 봤다”면서 “나도 남들 쉴 때 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결근계를 쓰면 쉴 순 있지만, 그마저도 기사가 부족하면 쓸 수 없다”면서 “또 시급제로 일하기 때문에 불경기를 생각하면 결근계를 쓰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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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한 버스 차고지에서 버스 기사들이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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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30일 추석 연휴부터 임시공휴일(2일), 개천절인 이날까지 총 6일의 연휴가 이어졌다. 대체 휴일이 겹쳐 평년보다 긴 휴식기가 주어졌지만, ‘황금’이라 불린 연휴를 누릴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박씨와 같이 다른 사람들의 ‘쉼’을 위해 자리를 지킨 이부터 자의 혹은 타의로 일터를 찾은 이들까지, 황금연휴 중에도 곳곳에서 각자의 노동을 이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이날 오후 1시40분쯤 쇼핑 겸 나들이를 나온 승객들로 붐비는 서울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 승강장에서는 청소노동자 A씨(62)가 마포 걸레를 손에 쥐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이날도 오전 6시에 출근했다는 A씨는 승강장 바닥에 검은 자국을 발견하자 대걸레로 재빠르게 닦아냈다. 그는 “이번 연휴에 원래 쉬는 날인 토요일 하루 쉬었다”면서 “내 일이니까 추석에도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A씨는 ‘쉬지 못해 아쉽지 않냐’는 물음에 “이번 추석 연휴에 사람들이 ‘여기 역은 참 깨끗하다’는 말을 많이 해줘서 뿌듯했다”고 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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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 통로에 청소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여러 도구가 정리돼있다. 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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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노동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 일할 곳이 마땅치 않은 불경기에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워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년층들이 주로 그런 이들이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김모씨(24)는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 대구에 가는 대신 식당에서 시급 1만2000원에 포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난달 27일부터 2일까지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닷새간 하루 3시간 일을 해 총 18만원을 벌었다고 했다. 김씨는 “보통 연휴에 고향을 가지 않으면 쉬거나 공부를 하는데, 올해는 적은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부모님께서 지원해주는 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틈틈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만난 배달노동자 이모씨(40)도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연휴 내내 오전 9시부터 배달 업무를 시작했다. 이씨는 “영업을 쉬는 식당들이 많아 생각보다 콜(호출) 수가 적고, 사람들이 집에 있는 걸 보면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면서도 “연휴엔 할증처럼 (배달료를) 조금 더 붙여주는 게 있어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정모씨는 “지난해 추석엔 연휴 3일 동안 가게를 쉬었는데, 올해는 추석 당일 오전만 문을 닫고 줄곧 영업했다”며 “임대료, 공과금에 대출이자가 많이 늘어서 쉴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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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권리찾기유니온 관계자들이 2021년 6월21일 서울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평등한 쉴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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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겐 황금연휴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근로기준법은 임시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쉴 수 있는 경우를 ‘상시 5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임시 공휴일에 쉬게 되는 경우엔 무급 휴일이 된다.
경기 시흥시 한 가구업체에서 일하는 B씨는 “납기일이 정해져 있어서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더라도 근무를 해야 한다”며 “예전엔 ‘쉬고 싶다’ 생각도 했는데, 이제는 남 일이어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취업 플랫폼 인크루트가 지난달 21∼22일 직장인 9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14.7%가 10월2일 임시공휴일에 ‘출근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근한다’고 밝힌 응답자 3명 중 1명은 ‘5인 미만 영세기업’ 종사자였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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