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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금메달…귀화 선수와 삐약이가 빚어낸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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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지희(왼쪽)와 신유빈이 지난 2일 중국 항저우 중국 항저우 궁슈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시상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항저우 l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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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잘 이끌어줬어요”라는 동생의 한 마디는 심금을 울렸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시상대에서도, 금메달이 목이 걸렸을 때도 참았던 눈물이 한 방울 맺혔다. 슬쩍 눈가를 닦아낸 전지희(31·미래에셋증권)는 거꾸로 “내가 참 복이 있다”며 12살이나 어린 복식 파트너 신유빈(대한항공)에게 미소를 지었다.

국제탁구연맹(ITTF) 여자 복식 랭킹 1위 신유빈과 전지희는 지난 2일 중국 항저우 궁슈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복식 결승에서 북한의 북한의 차수영과 박수경을 상대로 4-1(11-6 11-4 10-12 12-10 11-3)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 탁구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것은 2002년 부산 대회 남·녀 복식에서 나란히 우승한지 21년 만의 일이다. 여자 복식은 이은실-석은미 조가 부산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뒤 시상대에도 한 번 오르지 못한 종목이었다. 금메달을 기대할 수 없었던 종목에서 1990년 베이징 대회 남자 단체전 이후 첫 남북 결승 맞대결에서 웃었으니 반갑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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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희(왼쪽)와 신유빈이 지난 2일 중국 항저우 중국 항저우 궁슈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뒤는 오광헌 여자 탁구대표팀 감독이다. 항저우 l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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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메달의 아쉬움을 남긴 2020 도쿄 올림픽이 3년 만에 금메달을 선물했다. 복식으로 나선 신유빈의 오른손과 전지희의 왼손의 가능성을 확인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두 선수는 2021년 도하 아시아선수권대회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내더니 올해 더반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복식 은메달로 승승장구했다. 잠시 시련도 있었다. 신유빈이 손목 부상으로 두 차례 수술대에 오르느라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도 참가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대회가 1년 연기돼 극적으로 태극마크를 되찾은 신유빈은 “원래 난 이 대회에 참가하지도 못할 뻔 했던 선수”라고 말했다.

2011년 중국에서 귀화한 전지희도 지난해부터 고질적인 무릎 부상과 팔꿈치 통증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복식 해체설까지 나돌았다. 전지희는 “모든 걸 포기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순간”이라며 “(신)유빈이와 둘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비밀이다.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애정”이라고 웃었다.

전지희가 이번 대회 단식 출전을 포기한 채 복식만 집중한 승부수가 통했다. 전지희는 “한국에서 다시 탁구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고 생각하고 나온 대회에서 보답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한 마음으로 복식을 준비하니 행운이 따랐다. 굳건한 벽이었던 중국 선수들이 여자 복식 8강에서 모두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사실상 금메달 획득의 고비가 일본의 하리모토 미와-기하라 미유 조와 펼친 준결승전이었는데, 오광헌 여자탁구대표팀 감독이 ‘일본통’이었다. 오 감독은 1995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지도자 커리어를 일본에서 쌓은 인물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일본 여자 대표팀 코치 및 주니어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누구보다 일본을 잘 아는 오 감독이 일본 선수들이 빠른 템포의 탁구가 강점이라는 판단 아래 거꾸로 느린 탁구를 주문한 것이 그대로 적중했다. 신유빈이 잘 버텨주면 전지희가 마무리를 짓는 패턴으로 승리를 일군 것이다. 신유빈은 “우리 감독님 보기만 해도 듬직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미지의 상대였던 남북 대결은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면서 싱겁게 웃었다. 전지희는 “북한 선수들이 큰 대회를 오래 나오지 않다보니 (1세트와 5세트에서) 서브 같은 것도 계속 실수하더다”고 말했다.

서로가 소중한 금빛 파트너는 이제 파리를 바라본다. 내년 파리 올림픽에선 복식이 따로 없지만 단체전에서 중요한 1승을 책임질 카드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어내야 한다. 전지희는 “유빈이와 (올림픽을) 한 번 더 나가고 싶고, 메달도 따고 싶다”고 말했고, 신유빈은 “언니와 함께 도쿄 올림픽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싶다”고 화답했다.

항저우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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