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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범 52%가 10대...무인 매장은 왜 범죄 놀이터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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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뽑기방, 편의점...무인 매장 전국 10만여 곳
현금 이용 많고, 감시 허술...작년 절도 34% 증가
무인 매장 털기 요령 SNS 공유..."준법교육 강화"
한국일보

10대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24일 경기 의정부시 무인 인형 뽑기방에 들어가 지폐교환기에 들어 있는 현금 수백만 원을 훔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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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증가한 무인 매장이 무법 지대로 바뀌고 있다. 무인 매장 특성상 현금 이용이 많고,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절도부터 성폭행까지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어서다. 특히 무인 매장 절도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0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무인 매장 절도 요령까지 공유하며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무인 매장 범죄 관리 대책이 시급하지만, 신고해도 이들을 찾아내 처벌받게 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절도범 52%가 10대…사기, 성폭행 등도

한국일보

편의점 세븐일레븐 무인 매장에서 손님들이 매장을 이용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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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빨래방, 사진관, 인형 뽑기방, 카페, 당구장 등 다양한 종류의 무인 매장은 코로나19 이후 전국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편의점 주요 4사(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의 무인 매장 수만 2022년 6월 기준 2,783곳으로 2년 전(200여 곳) 대비 14배 가까이 증가했다. 다른 업종까지 합칠 경우 전국에 약 10만 곳 이상의 무인 매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인 매장 절도 범죄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6월까지 무인 매장 절도 건수는 총 2,830건으로 월평균 471건이었다. 이는 전년(월평균 351건) 대비 34%가량 늘어난 수치다. 폭행과 기물파손 등까지 합치면 무인 매장 범죄 건수는 수만 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인 매장 절도 범죄자 중 10대 비중이 가장 높다. 보안업체 에스원 산하 범죄예방연구소가 25일 발표한 5년간 무인 매장 범죄 동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무인 매장 절도범 중 10대 비율이 52%였다. 이들 대부분은 주로 가위, 망치, 드라이버 등을 이용해 무인 주문기(키오스크)를 파손한 뒤 현금을 갈취하는 방식(91%)을 썼다. 키오스크 또는 동전교환기를 통째 들고 도주하는 경우(9%)도 있었다. 무인 매장 대상 절도 수법이 비교적 단순해 10대 범죄자들이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경기 의정부시의 한 무인 인형 뽑기방에서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가위로 매장 내 지폐교환기를 강제로 열고 약 400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지난 7월 광주에서는 쇠 지렛대로 키오스크를 파손해 현금을 털어 간 10대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의 범행 소요 시간은 매장당 40초가 채 안 될 정도로 능수능란했다. 에스원 측은 "최근 10대들이 SNS 등으로 무인 매장 절도 요령을 공유하며 범죄를 놀이처럼 인식하고 있다"며 "갈수록 범죄 수법이 교묘하고, 빨라지고 있어 이들을 잡기도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 간식을 판매하는 무인 매장에는 초등학생 절도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아이들이 계산을 하지 않고 상품을 몰래 집어가는 경우가 많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무인 매장을 운영한다고 밝힌 점주가 "초등학생들이 장난삼아 가져가는 것을 경찰에 신고하기도 그렇고, 그냥 놔두면 계속 그럴까 봐 걱정이 크다"라며 고충을 올리기도 했다.

사기와 재물손괴 등 범죄 행각도 다양하다. 업계에 따르면 무인 매장 특성상 '셀프 계산'을 악용해 구매할 물건보다 싼 물건으로 바꿔치기 후 계산을 하거나, 바코드를 찍는 척하면서 계산을 하지 않고 가져가거나, 훔친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심지어 지난해 6월 경기 김포시의 한 무인 인형 뽑기방에서는 한 20대 여성이 대변을 누고 달아났다.

매장 관리인이 없다는 점을 노린 강력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무인 사진관에서 20대 남성이 술에 취해 잠든 여성을 성폭행하고 도주했다 경찰에 체포됐다.

범인 다수는 촉법소년..."준법교육 강화해야"

한국일보

청소년들이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을 파는 무인 매장의 냉동고 유리 덮개 위에 걸터앉아 친구와 얘기하고 있다. 6월 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점포의 폐쇄회로(CC)TV에 찍힌 영상의 한 장면인 이를 공개한 점주는 점포가 중·고교생의 놀이터가 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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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매장 범죄를 막을 방법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무인 매장은 범죄예방을 위해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경고문을 부착하고 있다. 하지만 범죄 예방 효과가 높지 않다. 이를 통해 범인을 잡아도 대부분이 촉법소년(범죄의 책임성이 없는 형사미성년자)이다. 잡혀도 형사처벌을 받게 할 수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점주들의 신고도 적극적이지 않다. 소액 피해가 대다수인 데다 범죄 발각 가능성이 낮아 점주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무인점포 범죄피해 실태 및 형사정책적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부터 2년간 서울에서 일어난 무인 매장 절도 사건의 피해 규모는 ‘10만 원 이하 소액’이 대다수(78.2%)를 차지했다. 피해액이 100만 원을 넘는 사례는 1%에 불과했다. 점주들은 "현장에서 바로 적발되는 게 아니라 CCTV 등을 통해 찾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적발돼도 혐의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자구책을 마련하긴 했다. 일부 무인 매장에선 범죄를 막기 위해 입장 시 신용카드와 QR코드 등으로 본인 인증을 마친 뒤 매장에 들어갈 수 있게 했다. 물건을 사면 인증받은 신용카드로 자동 결제를 한 뒤에야 문이 열린다. 주머니에 물건을 숨겨 나와도 출구를 통과하는 순간 결제가 되도록 해 도난을 막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10대 대상 준법교육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시민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현재로선 강력한 경고 문구를 부착하거나 감시를 강화하는 대책이 최선이지만 준법의식이 약한 소년들은 이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준법교육을 강화해 이들의 그릇된 법 관념이 조기에 바로잡힐 때 범죄 행동이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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