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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정. 사진 | 바른손이앤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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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난 거미가 싫어”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의 마지막 대사다. 정확히 말하면 극 중 김열(송강호 분) 감독이 바꾸고자 하는 영화 속 영화 ‘거미집’에서의 대사다. 거미에게 물려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한유림이 죽기 직전 카메라를 발칙하게 쳐다보며 이 대사를 전한다. 한유림은 정수정이 연기한다.
한유림은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였다가, 우연한 계기로 배우의 길로 접어든 미모의 20대 여성이다. 갑작스럽게 인기스타가 된 뒤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숨기고자 현장에서 더 제멋대로 군다. 강호세(오정세 분)과 염문을 뿌리는가 하면, 다른 유명한 배우와도 사랑에 빠진다. 발칙하고 당돌한가 싶다가도, 연기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한다.
70년대지만, 우리 곁에도 있을 법한 매력적이고 발칙한 한유림을 배우 정수정이 표현했다. 김지운 감독의 작품에 정수정의 출연한다는 소식은 다소 의아하기도 했다. 시트콤으로 시작해 다소 트렌디한 작품에 주로 출연한 정수정과 대중성과 예술성을 골고루 섞는 김 감독과 어딘가 꼭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 스스로도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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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의외의 캐스팅’은 빛을 발한다.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 큰 키의 매력적인 외형의 정수정이 걸어들어올 때마다 분위기가 환기된다.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눈을 사로잡는다. 강호세의 마음을 훔치려는 영화 속 영화 한유림을 표현할 때나, 강호세를 떨어뜨리게 하려는 촬영장 한유림을 연기할 때나 모두 쉽게 설득되곤 한다.
정수정은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 소재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늘 행복한 추억으로만 남는 현장이 ‘거미집’이다. 여기서 민폐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만족”이라며 “제 배우 커리어에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막 연기하면서도 대사는 ‘다다다닥’, 쉽지 않았어요”
많은 팬이 아는 것처럼 정수정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 국적법이 바뀌면서 SM에 캐스팅된 뒤 7세부터 한국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미국 문화에 익숙하고 한국어를 사용할 때도 영어 발음이 묻어있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썩 어울리진 않을 수 있다. 다만 매력적이고 솔직하면서도, 러블리한 면모 덕분에 ‘거미집’에 캐스팅됐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질지 감이 확 잡히진 않았지만, 정말 재밌는 거예요. 이 작품에 꼭 참여하고 싶었어요. 캐릭터도 매력적이었어요. 요즘 여자들처럼 당돌하고 주장도 강하고요. 저 외에도 다 다채롭더라고요. 영화 속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했어요. 결과물은 시나리오보다 더 풍성하고 재밌게 나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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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관이 있었다. 김열 감독이 찍는 영화 내에서 한유림은 70년대 독특한 방식의 말투로 연기를 해야 했다. 임수정과 오정세는 70년대 문화를 익히 알고 있지만, 정수정은 70년대 영화에 대한 개념이 하나도 없었다.
“감독님도 직접 연기를 해주셨지만, 주로 정세 오빠가 하는 걸 따라했어요. 저의 톤은 연기하면서 잡아주셨고요. 주로 ‘톤을 높여’, ‘과장되게 해봐’라고 주문해주셨어요. 연기하면서 짜릿했던 순간이 많아요. 특히 영화 속 영화 장면이 그래요. 이민자(임수정 분)와 대치하는 부분이나, 신미도(전여빈 분)에게 뺨 맞는 장면이요. 막 정신없이 연기해야 하는데 대사는 ‘다다다닥’ 해야했어요. 발음이 좋으면서도 사랑스럽고 연약한 여자를 표현해야 했죠.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무사히 잘 지나간 것 같아요.”
◇“유림이가 과연 다른 남자를 사랑했을까요? 불장난 같은데”
극 중 강호세는 한유림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강호세는 이미 아내가 있다. 숱한 염문설을 뿌리는 중에 한유림에게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한유림은 이런 호세가 부담스럽다. 그러던 중 결정적인 한 방을 던진다. 영화 후반부 갈등을 고조시키는 요소다.
“유림이는 호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싫어하는 건 아니고요. 좋아하긴 하는데 사랑까지는 아닌 마음이죠. 호세는 유림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은 내 사람이라는 확실한 게 있어야죠. 유림이가 몰래 만난 남자도 사랑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성격에 불장난일 가능성이 더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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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할 때 크게 어려운 건 없었다. 송강호를 비롯한 선배 배우들이 정수정을 아꼈고, 현장을 분위기 좋게 이끌었다. 연기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모인 덕에 현장은 늘 훈훈했다고 한다.
“저는 긴장감의 연속이긴 했어요. 긴장하긴 했지만, 정말 화목했어요.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현장이었어요. 감독님은 제게 뱀처럼 ‘스르륵’ 하는 느낌을 내달라고 주문해주셨어요. 어렵기도 했는데, 잘 따를려고 했어요. 썩 나쁘지 않았나 봐요.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다른 배우들도 저를 정말 예뻐해주셨어요. 저는 민폐만 아니길 바랐는데, 정말 다행이죠.”
◇“‘거미집’은 커리의 터닝포인트, 왠지 저 더 클 것 같아요”
지난 27일 개봉한 ‘거미집’은 국내 관객들에게 공개되기 전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기립박수만 무려 12분, 올해 칸 국제영화제 초청작 중 가장 긴 기립박수라는 비공식 기록도 세웠다. 197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확장한 이 영화는 이미 해외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크리스탈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영화제를 즐겼다.
“칸은 정말 뿌듯하기도 하고 또 오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초청됐다는 것 자체가 정말 뜻깊고 영광스러운 일이잖아요. 한 영화에 많은 배우가 나오잖아요. 여건이 맞아야만 영화제에 갈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가게 된 것도 운이 좋은 것 같아요. 감독님께 런던 영화제도 데려가 달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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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촬영한 뒤 스스로 ‘배우로서의 전환기’를 맞이할 것 같다고 예견한 적이 있다. 연기를 하면서 진심으로 무언가를 얻고 깨달았으며, 재미를 느낀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커리어에서의 터닝포인트’라고 짐작했다.
“이렇게 독특한 작품은 처음이에요. 70년대를 알지도 못했는데, 그 시대 연기를 해본 거잖아요. 좋은 선배님들과 한 프레임에서 연기했고, 김지운 감독님도 거장이시잖아요. 칸에도 다녀왔고요. ‘거미집’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제목이에요. 앞으론 뭔가 더 재밌고 좋은 역할을 많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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