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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에 있는 후손들에게 韓 문화 알리려… 45년간 모은 고미술품 기증할 곳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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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루클린 거주 이재록씨

조선일보

미국 전역에서 45년간 1500여점의 한국 고미술품을 모은 이민자 이재록씨는 "내 자식과 같은 미술품들을 좋은 장소가 있다면 모두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한인이민사박물관 민속관에 기증한 130여점 중엔 이씨가 손에 들고 있는 조선시대 초롱도 있다. /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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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 웨스트 24번가에 있는 뉴욕한인회 건물 6층에는 미주 한인이민사박물관이 있다. 고종 시기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절단’과 첫 번째 한인 이민선 ‘갤릭호’, 코리아타운 형성과 한인 커뮤니티의 성장까지 이민의 역사가 텍스트로 잘 정리돼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박물관 내 ‘민속관’이다. 미국에서 보기 힘든, 한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130여 점의 고미술품이 가득했다. 조선 시대 왕실용 주칠함(朱漆函)과 서안(書案), 연꽃 모양 나무 촛대, 돈궤, 초롱, 각종 그림 등 총 130여 점이다. 기증한 사람은 ‘이재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구에서 태어난 이재록(76)씨는 1975년 4월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왔다. 앞서 한국에서 병리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임상병리사 자격을 취득했다. 당시 미국은 의료 계통 종사자에게 이민의 문을 열어줬다. 당초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이씨는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으로 미국에서 삶을 개척해갔다. 1978년 어느 날, 맨해튼 25번가를 걷다가 사람들이 한 가게 밖까지 줄 서 있는 모습을 봤다. 당시 이 일대는 골동품 가게가 많았다. 가게에 들어가 보니 곧 경매에 부쳐질 흰색 도자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백자’라는 걸 단번에 알았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해주셨거든요.”

아버지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포목 장사를 해 큰돈을 번 상인이었다. 물건 값 대신 종종 백자나 청자 등 고미술품을 받아 와서 어린 자녀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곤 했다. 이씨가 고미술품에 관심을 갖고 성장하게 된 계기다. 이민 이후에도 미국 곳곳에서 열린 고미술품 경매에 참가해 우리나라 고미술품으로 보이는 것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이씨는 “경매에 나온 것은 주로 6·25전쟁 등을 계기로 한국에 갔던 미국인들이 사온 미술품이었다”고 했다. 수년 전 뉴저지의 경매장에 ‘차이니즈 워리어’라는 이름의 작품이 나와서 사들였는데, 알고 보니 고종의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을 그린 조선 시대 화가 채용신의 작품이었다. 이렇게 모은 고미술품이 총 1500여 점에 달했다.

이씨는 2019년 한인이민사박물관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선뜻 130여 점을 기증했다. 그는 “이 소중한 것들을 나 혼자 보면 뭐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국에 있는 우리 후손들이 한국에도 이런 자랑스러운 작품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3시까지 ‘민속관’에 나와 먼지를 털고 닦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한인회 관계자는 “항상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는 분”이라고 했다.

현재 이씨의 브루클린 자택에는 평생 모은 한국 고미술품 1000여 점이 남아 있다. 이씨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잘 관리받을 수 있다면 작품들을 무료로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저에게는 자식 같은 고미술품입니다. 좋은 곳에 시집·장가간다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한국의 찬란했던 문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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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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