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새 6600명 국경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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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캅카스 분쟁지역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탈출을 돕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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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대탈출’이 이어지고 있는 캅카스 분쟁지역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주유소 연료 탱크가 폭발해 도시를 빠져나가려던 주민 수백여명이 크게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중심도시 스테파나케라트 외곽의 한 주유소에서 연료 탱크가 폭발해 200명 이상이 크게 다쳤다. 아르메니아 자치지역 인권 옴부즈맨 게감 스테파냔은 “부상자 대부분이 위중한 상태”라며 “지역의 의료시설로는 이들을 전부 구할 수 없다. 환자 이송을 위한 항공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를 떠나려던 주민들이 차량에 기름을 넣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던 와중 폭발이 발생해 피해를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폭발 원인과 사망자 여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접경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선 최근 유혈충돌 이후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대탈출’이 시작됐다. 아제르바이잔군이 지난 19일 개시한 군사작전 하루 만에 이 지역 장악에 성공하자, 이곳 인구 80%를 차지하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인종 청소’를 우려해 탈출 행렬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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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나고르노-카라바흐 중심 도시 스테파나케르트 외곽의 한 주유소에서 폭발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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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6600명 ‘대탈출’ 행렬···도로 정체 이어져
아르메니아 정부는 25일 저녁 기준 6650명이 국경을 넘어 아르메니아로 입국했다고 밝혔다. 국경 일대 고속도로는 아르메니아에 입국하려는 차량들로 정체가 빚어졌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 지도부는 “12만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계 주민의 99%가 아르메니아 입국을 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캅카스 산맥 고원지대에 자리잡은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국제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인정받고 있지만, 주민 대다수는 아르메니아인이다.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아르메니아 정부 지원을 받는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자치정부를 세워 분리독립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지난 19일 시작된 아제르바이잔의 공격으로 아르메니아 자치군은 하루 만에 항복을 선언, 무장 해제된 상태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지역을 통합해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의 ‘라친 회랑’ 차단으로 수개월간 기아 위기에 몰렸던 주민들은 이 약속을 믿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난해 12월부터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아르메니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육로인 라친 회랑을 차단, 식료품과 연료 공급이 10개월 가까이 끊기면서 주민들은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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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빠져나온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차량이 아르메니아 국경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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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정부 역시 인종청소 가능성을 거듭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대탈출’이 이어지자,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이를 거듭 부인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우방’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이날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열어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두 정상은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인도적 물품을 보내기 시작했고, 이는 인종과 관계없이 이 지역 주민들이 아제르바이잔 시민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라며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아제르바이잔 사회에 재통합하는 과정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러 “아르메니아, 패배 러시아 탓 말라”···‘친서방 행보’ 경고
양국 정상이 아제르바이잔의 승리와 ‘지역 통합’을 재확인하며 끈끈한 동맹 관계를 과시한 반면, 아르메니아와 러시아의 관계는 점차 멀어지고 있다. 그간 아르메니아는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왔다.
러시아 외무부는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의 패배를 ‘러시아 탓’으로 돌린 아르메니아 총리를 향해 “당신은 큰 실수를 하고 있다”고 공개 경고했다. 전날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가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무력충돌을 방관했다며 “현재의 안보 동맹은 비효율적이며 불충분하다”고 비판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파시냔 총리에 대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망치고 있다. 서방의 약속에 속아 나고르노-카라바흐 사태를 초래한 자신을 탓하라”며 최근 그의 친서방 행보를 지적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러시아와 러시아 평화유지군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에 절대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충돌을 계기로 “러시아가 안보 파트너로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파시냔 총리의 발언을 두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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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아르메니아 국경도시 코르니조르의 외교부 등록센터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탈출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아르메니아 입국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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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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