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만신창이 됐지만, 보상은 찔끔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 기준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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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21일 세종시 조치원역에서 흉기난동 범죄에 대비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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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쳐도 국가가 책임져준다는 믿음이 있어야죠. 제게 남은 건 장애와 빚, '공상 빌런(악당)'이라는 동료들의 눈총뿐입니다."
19일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인천중부경찰서 소속 최지현(35) 경사의 몸에서 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최 경사는 이날 척추관절을 녹이던 염증 제거 수술을 받았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온몸에 염증이 퍼지고 지난해엔 뇌출혈까지 왔다. 통증을 억누르려 파스를 달고 산다.
7년 전 지명수배자 23명을 잡아들여 1년 만에 1계급 특진했을 정도로 유능한 경찰관이었다. 그랬던 그는 지금 "부상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 대책 없이 현장에 경찰관을 투입하는 건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고 울분을 토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빚도 서러운데 동료들은 "네 몸 네가 간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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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앞 카페에서 최지현 경사가 불합리한 공상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현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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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은 2017년 2월 시작됐다. 최 경사는 야간근무 중 호프집에서 난동을 부리는 김모씨를 연행했다. 저항이 심하니 수갑을 채우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경찰서로 향하는 내내 김씨는 뒷좌석에서 그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어깨 관절이 찢어졌다.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휴직을 택했다.
몸과 마음만 만신창이가 된 게 아니다. 지금까지 비급여 치료비로 낸 돈은 약 1억2,000만 원. 이날도 수술비로 200만 원을 썼다. 하지만 정부가 준 지원금은 5,000만 원이 고작이다. 공무원 대출에, 연 이자 18%인 캐피털 대출까지 끌어다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매년 갱신해야 하는 공상(공무상 재해 보상) 인정도 복직을 이유로 연장이 불허됐고, 그 길로 지원금은 끊겼다.
"동료들은 '네 몸은 네가 간수해야지'라고 하네요. 경찰관들은 계속 다치는데 제도는 그대로입니다.”
보상 기준 까다롭고, 금액도 턱없이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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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경사 등에 통증마취주사를 맞은 흔적이 선명하다. 최 경사는 온몸에 주삿바늘 자국이 남아 있고, 장기간 통증과 염증에 시달리다 등 피부가 착색됐다고 했다. 최 경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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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비판하는 제도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 지급 기준이다. 이달 1일 부산의 목욕탕 화재 현장에 나갔다 손가락과 얼굴은 물론 신경, 관절까지 화상을 입은 김모(36) 경사는 한 달도 안 돼 1,200만 원가량의 병원비 청구서를 받아 들었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간병비 지원은 화상부위가 신체의 35% 이상이 돼야 받을 수 있다. 이마저도 하루에 많아야 6만7,140원이라 실비(15만 원)를 감당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액수다.
‘이중배상 금지’ 조항도 있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르면, 공상 공무원이 가해자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으면 배상액 범위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손해배상금과 국가가 주는 치료비를 같이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최 경사도 김씨를 상대로 손배소를 냈지만, 1심 재판부는 손해액의 30%인 4,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씨가 불복해 소송이 진행 중이나 판결이 나온 이상 그간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수령해온 지원금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올 6월 '공상추정제'가 시행돼 공무와 재해 사이 인과관계를 개인이 아닌 국가가 부담하도록 법이 바뀌긴 했다. 다만 심혈관계, 정신질환 외에 경찰관들이 주로 겪는 어깨,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은 적용 직무에서 빠져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찰청이 집계한 최근 5년간 공상 경찰관은 8,540명. 이학영 경찰·소방공상자후원연합회 회장은 "공상자들은 돕기 위한 모금도 미미한 실정"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이 원하는 만큼 치료받을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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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골격계 질병의 공무상 질병 추정 기준. 자료=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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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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