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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생이던 때 모 선생님이 암 진단을 받아 학교 차원의 모금을 한 일이 있다. 1990년대에는 학교에 무언가 가져가야 할 이유가 많았다. 연말마다 크리스마스 실을 공구(강매)했고, 다달이 폐품을 모아 가져갔고, 교실의 어항이나 화분, 각종 준비물, 소풍 때마다 담임 교사와 버스 기사의 도시락까지. 집에 가서 이러저러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어머니는 10만원을 선뜻 내주셨다.
다음 날 아침, 반장이 돈을 걷으며 누가 얼마, 얼마, 이렇게 표기해 나가던 중 내가 가져온 돈을 보고는 "야, 너 10만원이 맞아? 왜?" 하고 물었고, 여럿이 모여들어 웅성대기 시작했다. 너희 집이 부자냐, 부자라고 해도 왜 성금을 그렇게 많이 내냐. 나도 사실 궁금하던 참이었다.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간 성금을 그렇게 낸 일도 없고. 그러다가 생각난 게 하나 있어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 아빠도 고등학교 선생님이야." 그때 다들 궁금증이 풀렸다는 얼굴이 되었다. 아아, 그러면 그럴 수 있지, 인정이지.
나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퇴직하셨다. 그는 나에게 훌륭한 아버지였으나 학생들에게 어땠는가는 잘 모르겠다. 좋은 아버지가 좋은 직장인은 아니니까. 다만 자신의 일을 잘하셨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통지표를 받아왔던 때를 기억한다. ‘학교에서 가정으로’라는 난과 ‘가정에서 학교로’라는 난이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초중고교를 졸업하는 동안 거기에 늘 다음과 같이 썼다. "가정은 학교를 믿습니다. 잘못한 게 있으면 많이 혼내 주십시오." 그때는 왜 학교는 믿으며 아들은 못 믿는가, 하는 마음이 되었으나, 지금은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교사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학교를 믿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러한 마음이 지금의 나를 키웠다. 그가 나에게 화를 낸 일이 두 번 기억나는데, 문과에 갈지 이과에 갈지 물었을 때와 어느 대학에 갈지 물었을 때였다. 민섭아, 그런 건 아빠에게 물을 게 아니라 너에게 물어야지. 네가 국어를 좋아하면 문과를 선택하면 되는 거야. 대학은 네가 원서를 쓰고 어디에 썼는지 말해줘 그럼 아빠는 응원해 줄게. 내가 정서적 자립을 이루는 데는 그의 몫이 무척 크다.
몇 년 전 아이가 첫 통지표를 받아온 날 ‘가정에서 학교로’ 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가정은 학교와 교사를 믿습니다. 잘못한 게 있으면 많이 혼내 주세요." 그러한 마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미완의 존재인 내가 역시 미완의 존재인 아이를 매일 학교에 보낸다. 내 아이만 옳거나 소중하다 여기지 않는다. 내 주변의 평범한, 그러나 선생이라는 존재의 소명을 고민하는 교사들을 보면서, 아이를 믿는 만큼 그들을 역시 믿을 뿐이다. 그리고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겠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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