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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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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 마감한 아빠…"나는 자살 생존자" 웹툰작가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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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황웃는돌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자주 쓴다. 지난 14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며 연필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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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살 생존자입니다』를 쓰고 그린 황웃는돌 작가는 2014년을 잊을 수 없다. 그해 봄, 아버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도로에서 맞은 편 차량이 "깜빡이 없이 중앙선을 침범해 나를 향해 달려오는데 피할 길 없는" 사고 같은 사건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삶은 계속된다. 2020년, 그는 웹툰을 그리기로 했다. 그 나름의 애도의 방식이기도 했고, 어둠의 늪 속에 빠진 이들에게 "튜브가 되어 주자"는 마음도 있었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은 10만명 당 11.1명(2020년 기준)인데 한국은 24.1명. 그 유가족인 자살 생존자들의 숫자는 그의 몇 배다. 이 책은 그들을 위해 황 작가가 던지는 구명튜브다. 책은 담담하게 절망을 마주하고 차분하게 희망을 바라본다. 다음은 지난 14일 그와의 만남 요지.

Q : 재미있는 필명, 아버지가 지어줬다고.

A : "웃긴 이름으로 불러주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며 붙여주신 이름이다. 이름 후보에 '당무계'도 있었는데, 성씨를 붙이면 '황당무계'가 된다(웃음). 가족 반대로 포기했다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분이었다. 영화 제작사를 했는데 배우 이병헌 씨의 미국 진출 계기가 된 영화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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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버지 품에 안겨 환히 웃고 있는 황웃는돌 작가. 황 작가가 가져온 사진을 촬영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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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날 가져온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유품 중엔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자들이 받는 ID카드도 있었다. 그의 영어 이름 '빅터(Victor, '승리자'를 의미)'가 선명했다. 그의 오른 손목에도 아버지 이름이 타투로 새겨져있다. 그러나 공익광고에 나올법한 따스한 부녀 관계를 으레 짐작하면 오산. 여느 인간 관계가 그러하듯 두 부녀의 관계는 복잡미묘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안 되며 알코올에 중독되고, 황 작가는 아버지와 불화를 겪으며 탈선했다. 아버지가 죽음 뒤엔 그가 남긴 빚을 갚으려 몸을 혹사하다 기절도 수차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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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웃는돌 작가가 가져온 아버지의 유품. 칸 영화제 초청자에게 주어지는 ID카드다. 그는 손목엔 아버지 이름을 타투로 새겼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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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어려운 이야기를 담담히 풀었는데.

A : "지금의 '안정'이라는 텃밭을 가꾸기 위해 뼈를 깎았다. 아직도 완전히 극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외상후 성장'이라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만들며 가장 주의했던 포인트는 힘든 과정을 건강하게 전달하는 거였다. '제가 해냈으니 여러분도 힘내세요'라는 느낌은 피하고 싶었다. 극복 아닌 회복, 저항 아닌 수용의 과정이었다."

Q : 아버지가 지금 여기 있다면.

A : "(눈시울을 붉히며) 이제는 좀 편안했으면 좋겠다. 아빠가 좋아했던 햄버거와 단팥빵, 콜라 맘껏 드시면 좋겠다."

Q :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은 어찌 보나.

A : "그 표현은 그 사람의 평생의 삶과 그 사람이 처했을 상황과 가졌을 마음을 납작하게 본다. 자살은 그냥 자살이다. 자살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물어봐야 하는 질문 방식은 '너, 자살하려는 건 아니지?'라는 빙빙 돌리는 접근법이 아니다. '너 지금 자살을 생각하는 거니?'라는 단도직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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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웃는돌 작가는 웃음을 잃지 않고 희망을 얘기한다. "빛과 어둠을 함꼐 아는 사람"이어서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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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자살률 높은 까닭은 뭘까.

A : "사람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세상이 나에게 다정했던 순간이 있었더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반대로 아버지는 평생 세상이 다정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세상이 그 다정함을 거둬간 경우다. 있었던 다정함이 없어진 절망감도 굉장히 컸을 터다. 이유는 다들 다르겠지만 '자살'을 죽음의 한 선택지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이라는 사회가 비교적 덜 다정한 환경이라서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손을 건네기엔 다들 여유가 너무 없으니까."

Q :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A : "최근에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 얘기를 대신 하고 싶다. 캔을 주워 생계를 잇는 분이셨는데, 갑자기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씀하더라. '세상은 개인의 사정을 이해해주지 않지만, 인생은 결국 강물처럼 빨리 지나간다. 작은 행복을 찾고 감사할 줄 안다면, 우리의 삶도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맞는 말 아닌가. 삶은 결국 강물이다. 흘러야 하고, 흘러간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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