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해외 스타 소식

또 다중우주야?…할리우드 영화 수놓는 ‘멀티버스’ 언제까지 통할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영화 ‘플래시’는 빛보다 빠른 히어로 플래시(에즈라 밀러)가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을 역행하면서 멀티버스 세계를 열어버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우연히 갖게 된 능력으로 차원을 이동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이 살던 지구가 아닌 다른 평행세계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런 차원 이동 중에 문제가 생겨 우주의 질서가 뒤틀리고,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미션이 주인공에게 주어진다. 최근 몇 년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른바 ‘멀티버스’(다중우주) 세계관이다.

이달 극장에 걸리는 두 편의 히어로 영화 ‘플래시’(14일 개봉)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1일 개봉) 역시 멀티버스가 주요 소재다. 1961년 코믹스에서부터 멀티버스를 선보였던 DC가 만든 ‘플래시’는 빛보다 빠른 스피드의 히어로 플래시(에즈라 밀러)가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을 역행했다가 또 다른 자신이 살고 있는 평행세계에 불시착해 펼쳐지는 모험을 그린다.

중앙일보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는 방사능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된 마일스(목소리 샤메익 무어)가 모든 차원의 스파이더맨들을 만나게 되며 멀티버스 세계에 균열이 생긴다. 사진 소니픽쳐스 코리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2018년 개봉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전편(‘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 이어 마일스(목소리 샤메익 무어)와 그웬(목소리 헤일리 스테인펠드), 두 10대 스파이더맨·우먼이 다양한 평행세계를 오가며 악당을 물리치려는 이야기다. 이들 영화에서는 어김없이 다중우주의 질서가 흐트러지는 위기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가 주인공의 내적인 고뇌와 성장과 맞닿아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멀티버스 소재 2편 나란히 개봉…할리우드, 왜 또 다중우주?



비단 두 최근작뿐 아니라, 지난 몇 년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들은 마치 유행처럼 멀티버스를 핵심 소재로 내세우고 있다. 히어로 무비 생산의 중심에 있는 마블은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페이즈(서사 구분 단계) 4~6기를 아예 ‘멀티버스 사가(Multiverse Saga)’라 이름 붙이고 다중우주 세계를 무한 확장 중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에 이어 지난 2월 개봉한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도 멀티버스 세계가 소개됐다. 히어로 영화가 아닌 저예산 SF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도 멀티버스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휩쓰는 등 호평을 받았다.

중앙일보

멀티버스를 소재로 한 히어로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왼쪽)와 '플래시'가 이달 나란히 개봉한다. 사진 소니픽쳐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멀티버스가 이처럼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된 배경에는 우선 마블·DC 등의 히어로 무비 스튜디오들의 상업적 속내가 자리한다. 개별 히어로들만 가지고 시리즈를 이어가기 어려운 한계에 봉착한 이들 제작사들은 IP(지적재산)를 확장하고 재생산하는 장치로서 멀티버스를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플래시’는 주인공 히어로로 플래시를 내세우면서도 멀티버스 설정을 통해 31년 전 ‘원조’ 배트맨(마이클 키튼)을 이야기에 자연스레 등장시킬 수 있었다. 여러 캐릭터를 한 무대로 통합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과거 히어로를 불러내 기존 팬들의 향수까지 자극하는 장치로서 멀티버스만 한 게 없는 셈이다.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 교수는 지난해 펴낸 논문(‘멀티버스, 콘텐츠 IP확장을 위한 세계관 재생산 전략’)에서 “하나의 닫혀버린 서사라 할지라도 멀티버스 세계관을 활용할 경우 캐릭터와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변주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멀티버스 세계관은 콘텐트 IP 확장에 있어 중요한 전략적 요소”라고 분석했다.

중앙일보

마블은 '인피티니 사가'로 불렀던 페이즈 1~3을 마무리하고 페이즈 4~6을 '멀티버스 사가'로 명명했다. 사진 마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멀티버스는 지금 우리가 처한 세계가 아닌 다른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가 택하지 않은 길, 혹은 나의 또 다른 자아를 향한 인간 본연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측면도 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켐프 파워 감독은 최근 한국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사실 멀티버스 이전에도 시간을 거스르거나 하는 식으로 다른 삶을 탐구해보는 서사는 무수히 많았다”며 “가보지 않은 길이 어땠을지 보여준다는 점이 멀티버스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부캐’(부캐릭터) 열풍에서 보듯 요즘은 SNS 등을 통해 현실에서와는 다른 여러 자아를 만드는 데 사람들이 익숙해진 시대”라며 “이런 흐름 속에서 멀티 캐릭터, 멀티버스와 같은 개념이 새로운 재미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일보

지난해 5월 개봉한 마블 히어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가 열리며 오랜 동료들, 차원을 넘어 들어온 새로운 존재들을 맞닥뜨리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겨운 일상을 보내던 에블린이 멀티버스 안에 수천, 수만의 자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사진 더쿱디스트리뷰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멀티버스를 도입한 서사가 늘어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관객 목소리도 많다.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즈니+ 드라마 ‘완다비전’ ‘로키’ 등 사전에 봐야 할 작품만 5~6편에 달하는 사례에서 보듯, 멀티버스 세계관을 지나치게 확장하면서 기존 팬이 아닌 새로운 관객에게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멀티버스가 극 중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는 ‘치트키’처럼 쓰이는 경우 허무감을 안기기도 한다.

영화평론가인 강유정 강남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멀티버스는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된 가상 세계이지만, 그러한 판타지도 결국 우리 삶과 맞닿아있어야 쾌감을 줄 수 있다”며 “멀티버스 영화 중에서도 ‘에에올’이 유독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현실의 문제가 서사의 중심축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허남웅 평론가는 “일부 히어로 영화들은 멀티버스라는 설정을 활용하기 위해 이야기가 끼워 맞춰진 느낌”이라며 “관객들의 피로감이 높아지면 결국 멀티버스를 활용해 여러 히어로들을 집단적으로 내세우는 지금의 방식을 뒤로하고 ‘슈퍼맨’ ‘배트맨’ 등 고전적인 히어로들의 솔로 무비라는 원형이 다시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