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현대아파트. 2019. 9. 11. <한주형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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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대표적 재건축 지역인 강남구 압구정에 최고 70층 높이의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시가 창의적인 디자인을 도입하면 초고층 건축을 허용한다고 밝힌데 따른 것이다. 성냥갑처럼 일률적인 모양이었던 압구정 단지가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을 갖게 될지 주목된다. 초고층 재건축을 통해 총 가구 수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단순히 신규 재건축 단지를 공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대를 하나의 ‘미니 신도시’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울시는 4월 25~26일 이틀간 압구정 아파트 특별계획구역 2·3·4·5 구역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재건축 사업에 대한 청사진을 공개했다. 서울시와 압구정 2~5구역은 그동안 신속통합(신통)기획을 통한 재건축 협의를 진행해왔다. 신통기획이란 서울시와 민간이 정비계획안 초안을 함께 만드는 제도다. 양측은 지난 해 3월부터 본 격적인 논의를 시작했고 최근 어느 정도 의견이 모여 주민들 에게 초안을 선보이게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설명회에서 “압구정은 대한민국 부촌의 중심지이지만 명성에 비해 한강 접근성 등 여러 시설이 부족해 재건축을 굉장히 오래 기다려 왔다”라며 “이 일대 아파트를 모두 합치면 1만 가구에 달하기 때문에 하나의 도시로서 기능할 수 있는 계획안을 짜는 데 중점을 뒀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구역별 단독 기획안이 아닌 압구정 도시 마스터플랜으로 이해해달라”라고 덧붙였다.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와 연계
*서울시 신통기획안 기준, 향후 변경 가능 |
서울시는 지난 3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표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와 연계해 이 일대 정비사업을 추진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아예 압구정 2~5구역 재건축 방향을 ‘수변주거 문화 선도지구’로 잡았다. 매력적인 수변 경관을 확보하고 수변 생활권 단지를 조성하는 동시에 주민들 삶 의 질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압구정 2~5구역 한강변부터 30m에 이르는 지점을 수변특화 디자인 구간으로 설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맞닿은 단지로서 수변을 특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수변에서 안쪽으로 단계적으로 형성되는 스카이라인을 권장한다”라고 밝혔다. 한강변 첫 주동은 20층으로 하고 단지 중앙부에 초고층 랜드마크 주동을 배치해 이른바 ‘파노라마 경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15층 이하의 단조로운 판상형 아파트로 막힌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게 취지다. 다양한 높이의 아파트가 들어서면 단지 간 간격이 넓어지고, 단지 중심부에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보행축이 형성될 수 있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첨단기술이 적용되는 미래 단지로 재건축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앞으로 다양한 첨단 기술이 들어올 텐데 압구정인 만큼 시범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며 “첨단기술인 자율주행, 로봇택배 등 기술을 수용하는 단지로 계획됐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구역별로 세부적인 재건축 가이드라인도 나왔다. 먼저 서울시가 마련한 신통기획 초안에 따르면 압구정 2구역은 총 가구 수가 기존 1924가구에서 2700가구 안팎으로 늘어난다. 최고 층수는 일단 50층 내외로 설계됐다. 서울시는 “원래대로라면 용적률이 230% 정도밖에 안 되는 데 기부채납을 통해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아 263%를 확보했다”라고 말했다.
용적률 추가로 늘어날 수도
용적률이 추가로 늘면 최고 층수는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서울시는 “(263%에서) 임대주택을 추가하면 용적률이 300%까지 더 오를 수 있다. 공공기여를 하는 만큼 용적률이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혁 신적인 디자인을 도입하면 추가로 유연하게 층수를 가져갈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공공기여는 한강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받을 예정이다. 한강과 연결된 입체보행교를 만드는 게 대표적이다. 압구정 2구역과 접한 한강 변에 ‘수상 스포츠 기능’이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서울시는 “여기 한강변 일대에 수상 레저 기능이 있는 만큼 개방형 커뮤니티 시설은 스포츠 관련 콤플렉스가 들어오도록 제안을 드린다”라고 말했다.
근린생활시설은 압구정로 쪽으로 배치하는 걸 권장하기도 했다. 다만 일부 주민들은 아파트 한복판에 한강 변으로 접근하는 공공보행통로가 놓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소음 피해와 청소·시설 관리비는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구현대’로 알려진 압구정 3구역은 총 가구 수가 기존 3946가구에서 1864가구 늘어난 5810가구로 설계됐다. 3구역 안에서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과 인접한 부지는 용도가 준주거지역으로 1단계 올랐다. 덕분에 다른 구역(제3종 일반주거지역)에 비해 높은 용적률(320%)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일단 신통기획안은 최고 높이를 50 층 안팎으로 잡았다. 다만 압구정 3구역 조합 관계자는 “특별 디자인을 적용받으면 랜드마크가 될 몇 개 동의 경우 최고 70층까지도 가능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3구역은 한강변에서 볼록 튀어나온 지역으로 경관상 중요해 파노라마 경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3구역도 한강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공기여를 받는다. 보행교 설치비용을 기부채납 받는 등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압구정에서 서울숲까지 보행교로 연결되고, 서울숲에서 응봉역까지도 보행교가 들어서면 강남~옥수~성수가 일상 30분 생활권으로 연결된다”라며 “파격적인 시도인데 조합이 제안한 보행교 계획을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보행교 건설이 이뤄지면 한강 접근성이 개선되는 동시에 강남·강북 연결 기능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행만 하는 게 아니라 개인형 이동 수단(PM)이나 자전거도 이용할 수 있게 만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보행교 설치비용이 많게는 3000억원까지 들 수 있는 점이 변수다. 당장 주민들 간에도 “기부채납 비용이 너무 많다”라는 반대 입장과 “서울숲까지 연결되는 미래 가치를 고려하 자”라는 찬성 입장이 제각각 나뉘고 있다.
압구정 아파트 단지에서 한강까지 편하게 가도록 ‘덮개 공원’을 만드는 방안도 제안됐다. 올림픽대로로 단절됐던 한강변을 입체적으로 연결해보자는 취지다. 서울시는 덮개 공원 상부를 다목적 휴게공간, 숲길쉼터 등으로 활용하자고 제시했다.
압구정 4구역에는 현재 한양3·4·6차, 현대8차 아파트가 속해있다. 신통기획안에 따르면 이곳은 최고 층 수 50 층 안 팎의 1790가 구 규모 단지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현재 1341가구에서 449가구 늘어난 수치다. 마찬가지로 층수는 혁신 디자인을 도입하면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서울시는 압구정 4구역 재건축 방향을 ‘공원과 한강을 같이 품은 단지’로 잡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 갈매기 공원이 활성화가 안 되고 버려져있다”라며 “이를 규모 있게 (언주로 쪽으로) 몰면서 공원을 중심으로 전망 좋은 랜드마크 타워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양1·2차 아파트가 포함된 압구정 5구역도 층수는 압구정 4구역과 마찬가지로 계획된다. 현재 1232가구가 1540가구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강 조망권을 확보하기 위해 공중에 떠 있는 복도식 모양인 ‘플로팅 매스’를 도입할 것을 서울시는 권고했다.
이들 구역에 대한 공공기여는 한강을 조망하는 시설로 받는다. 서울시는 “4·5구역 앞에 한강 둔치가 매 우 좁고 겨우 자전거만 지날 수 있다”라며 “이 요건을 어떻게 극복할 지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강변에 완충녹지가 단지보다 약간 높게 형성돼 있다. 단지 레벨을 올려서 완충 녹지와 평평하게 만들고 조망 데크공원을 붙이려고 한다”라며 “조망 데크공원으로 휴식과 조망 이 가능한 공간을 늘리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압구정 2~5구역 재건축이 이같이 마무리되면 아직 정비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지 않은 1·6구역과 합쳐 약 1만4000가구 규모의 미니 신도시가 탄생하게 된다. 서울시는 주민설명회에서 나온 의견을 취합해 최종안을 가다듬는 작업에 나섰다. 조만간 신통기획안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물론 신통기획안은 정 비계획을 수립할 때 참고하는 가이드 라인 성격이다. 최고 층수나 총 가구 수 같은 건축계획은 향후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변경이 가능하다.
설계 공모부터 수주전 치열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3월 서울 중구 시청 브리핑실에서 ‘그레이트 한강(르네상스2.0 프로젝트)’기자 설명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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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 핵심 재건축 단지인 만큼 설계 공모 수주전도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 일부 구역은 국내 주요 건축사무소 3곳이 해외 업체와 손을 잡고 공모전에 뛰어들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압구정 4구역의 경우 현재 9곳의 건축사무소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2구역 역시 4개의 컨소시엄이 경합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2구역과 4구역 모두 예정 설계 금액이 100억원 이상으로 책정됐다.
압구정 2~5구역이 초고층 재건축에 나서자 일각에선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강변 아파트가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공공기여 비율이 10%로 과거(15%)보다 완화 적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공공기여 의무비율이 낮아진 건 맞지만 용적률을 높이려면 그에 상응하는 공공기여를 더 내놔야 한다고 특혜 의혹을 정면 반박했다. ‘비례성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단순히 의무부담률이 낮아졌다고 혜택을 준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조남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공공기여율이 어디는 10%, 어디는 15%라고 단순히 비교해 형평성을 논의하기는 어렵다”라며 “도로·공원·임대주택 등을 기부채납하면 할수록 그에 상응해서 용적률을 높여 받아가는 체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의무부담률 완화는 결국 재건축 단지 주민들의 선택권을 넓힌 것이라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래미안첼리투스는 과거 재건축 과정에서 공공기여율 25%가 적용돼 최종 용적률은 327%로 높아졌다. 당시에는 임대주택을 공공기여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도로·공원 등으로만 기부채납을 받았다.
반면 압구정 2구역은 공공기여율 10%에 따라 용적률이 263%에서 시작한다. 추가로 더 기부채납하면 용적률은 300%대로 오를 수 있다. 서울시는 임대주택을 포함하면 압구정 일대 공공기여율이 15~20%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강변 단지이기 때문에 공공기여 10%란 규제를 적용받는 것이기도 하다. 조 국장은 “한강변이 아닌 일반 재건축 단지는 공공기여 의무비율이 없다”라며 “다만 한강변은 지역적 특성이 있으니까 조금 더 공공기여를 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부동산부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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