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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희대의 테러리스트인가, 천재 선지자인가... 미 ‘유나바머’ 81세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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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1995년 미국 폭탄 공포에 떨게한 최악 지명수배자 테드 카진스키

16세에 하버드 입학, 24살에 버클리대 수학교수 돼

몬태나주 산골서 살다 환경파괴에 분노, 과학계와 기업에 사제폭탄 보내

조선일보

시어도어 테드 카진스키가 지난 1996년 4월 몬태나주에서 연방 수사요원들에게 체포돼 법원으로 끌려가는 모습. 카진스키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노스캐롤라이나 교도소에서 10일(현지시각) 숨졌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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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악랄한 테러리스트인가, 기술의 지배와 환경파괴를 내다본 천재 선지자인가.

현대 과학기술과 산업사회에 반감을 품고 생면부지의 인사들에게 17년간 폭탄 수십개를 보내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한 ‘유나바머(Unabomber)’란 별명의 수학자 출신 폭탄테러범 테드 카진스키(81)가 감옥에서 사망했다. 미 연방수사국(FBI)는 10일(현지시각)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교도소 의료센터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돼있던 카진스키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의 대학과 항공사, 기업 등의 고위인사 수십명에게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총 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에게 손가락이나 귀가 잘리는 등의 중상을 입힌 테러범이다. ‘유나바머’는 대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앞글자 ‘Un’과 항공사를 뜻하는 단어의 앞글자 ‘a,’ 그리고 폭탄제조자 ‘Bomber’를 섞어 만든 FBI의 코드네임이었다.

그가 무려 17년이나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해 테러를 일으키면서 80~90년대 미국에선 우편물 수령 공포가 일었고, 단일 사건으로선 FBI가 역대 최고액의 수사 비용(5000만달러)을 지출한, 최악의 지명수배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1942년 시카고에서 폴란드 이민자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카진스키는 어린 시절부터 ‘걸어다니는 브레인’으로 불린 천재였다. 초등학교 때 아이큐 167을 기록했고, 월반을 거듭해 16세때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했으며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박사 논문은 미국에서 10명 정도만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대단히 고차원적인 수학 이론을 담고 있었다. 24세 때 UC버클리 사상 최연소 수학교수가 됐다.

그런데 카진스키는 교수가 된 지 2년만에 별다른 설명 없이 돌연 사직했다. 이후 동생이 운영하는 고무공장 등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살다가 몬태나주 깊은 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들어가 문명세계와 스스로 단절했다. 혼자 사냥과 채집으로 자급자족식 생활을 하며 도서관에서 빌린 과학·문학 분야의 유럽 원서 등을 촛불에 비춰 읽으며 살았다. 가족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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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천재였던 테드 카진스키가 25년간 홀로 고립생활을 한 몬태나주의 산골 오두막. 삼림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로 오두막이 위협받자 분노했다는 카진스키는, 이 곳에서 사제 폭탄을 만들어 전국 과학자와 항공사 홍보사 기업인 등에게 무차별 발송해 3명을 죽였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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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왜 고립으로 빠져들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 한 심리학 수업에서 당시 중앙정보국(CIA)가 냉전시대 스파이나 반체제 지식인 등을 염두에 둔 ‘모욕주기’ 심리압박 실험에 참여하게 되면서 천재로서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거나, 짝사랑하던 여인에게서 거부당한 상처를 크게 받은 뒤 돌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후 또다른 인터뷰나 일기에선 “27세 때부터 살인을 저지르는 상상을 했다”거나 “폭탄 제조가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한 정황도 나와 소시오패스 경향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1970년대 그가 살던 몬태나의 오두막이 인근 부동산 개발로 침범당하자 환경 파괴와 과학·산업 기술 전반에 대한 강한 증오심을 갖게 됐다는 게 직접적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1980년대 정체불명 소포를 열어봤다가 캘리포니아의 컴퓨터 상점 주인, 삼림 개발업계를 홍보하는 뉴저지의 홍보회사 임원과 로비스트 등 총 3명이 사망했다. 당초 수사당국은 폭탄 관련 지식을 현장에서 얻은 항공사 등 기업 출신의 블루칼라 남성일 것으로 추정했다. 폭탄에 지문을 일체 남기지 않은데다 발송처가 추적이 되지 않고, 일부 소포엔 엉뚱한 사람의 체모를 넣는 등의 수법으로 십수년간 수사당국을 교란시키면서, ‘지능적인 확신범’이란 심증이 커져갔다고 한다.

그가 붙잡힌 결정적 계기는 카진스키가 자신의 범행의 동기를 세상에 글로 대대적으로 알리면서다. 카진스키는 1995년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유력신문에 3만5000단어 분량의 장문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미래’를 보내, 이를 실어주면 범행을 멈추겠다고 약속했다. 선언문은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며, 혁명을 통해 산업사회를 전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신문사들은 당국과 논의 끝에, 범죄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대대적으로 홍보해줘야 하느냐는 윤리적 논란을 감수하고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이를 수용했다.

그런데 신문에 실린 선언문을 읽은 동생 부부가 “어쩐지 오래 전 연이 끊긴 형의 문체를 연상시킨다”며 FBI에 제보했고, FBI는 1996년 이 단서를 잡고 몬태나주 오두막을 급습해 카진스키를 검거했다. 카진스키의 유일한 혈육이기도 한 동생 데이비드 카진스키는 현상금 100만달러를 받아 테러 피해자 유족에게 나눠줬다. 또 형의 정신 문제를 들어 사형만은 면하고 무기징역을 받도록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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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바머' 테드 카진스키를 다룬 영화가 작년 국내에서 개봉됐다. /씨네라인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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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진스키의 범행은 폭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설파하려는 급진적 환경주의자, 또는 다른 형태의 테러범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이후 할리우드의 천재 테러리스트 캐릭터는 카진스키를 모델로 한 경우가 많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77명을 죽인 극우 테러리스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빅이 카진스키를 거론하며 그를 따라 자신의 범행 동기를 설파한 ‘선언문’을 게시하기도 했다. 카진스키를 산업화와 비인간화, 자연파괴, 불평등 심화 같은 21세기 글로벌 지구위기를 내다본 ‘선지자’로 열광하는 팬클럽도 있다. 그의 스토리를 담은 영화(유나바머:테드K)와 넷플릭스 시리즈까지 나왔다. 피해자와 유족들, 수사당국은 카진스키를 영웅화 하는 움직임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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