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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천재에서 폭탄테러범 된 ‘유나바머’ 카진스키 수감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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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유나바머로 알려진 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의 머그샷. 1996년 검거 당시의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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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유나바머'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미국의 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가 수감 중 사망했다. 올해 81세.

로이터 등 외신들은 카진스키가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교도소 의료센터에서 숨졌다고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잔스키는 이날 오전 자신의 감방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됐으며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7년에 걸쳐 미국의 대학과 항공사 등에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을 다치게 만든 연쇄 폭탄 테러범이다.

그의 테러 대상이 주로 대학과 항공사였기에 유나바머(Unabomber)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는 대학(Univercity)을 뜻하는 영어단어의 머리글자 'Un'과 항공사(Airline)를 뜻하는 영어단어의 머리글자 'A', 폭탄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Bomber'를 섞어 만든 조어다.

수학과 교수였던 그가 대학과 기업에 폭탄을 보낸 것은 기술문명과 산업사회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그는 검거 전인 1995년 각 언론사에 보낸 선언문 '산업사회와 미래'를 통해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혁명을 통해 산업사회를 전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이로 인해 꼬리가 밟혀 약 1년 뒤 체포됐다. 선언문을 본 카진스키의 동생이 필적이 형과 같다며 신고했기 때문이다. FBI는 동생의 신고를 받고 1996년 몬태나주 강가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자급자족 생활을 하던 그를 체포했다.

그는 기술문명과 산업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대학과 항공사 등에 사제 폭탄을 보낸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그는 폭탄 제조술을 독학으로 익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42년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아이큐(지능지수) 167을 기록했다. 16세 때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한 수학 천재였으며, 24세 때인 1967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사상 최연소 수학교수가 됐다.

그러나 그는 2년 후 사표를 냈고, 몬태나주에서 자신이 만든 오두막에서 문명사회와 단절된 채 생활했다.

그가 폭탄 테러범이 된 것은 자신이 거주하는 몬태나주 산림지역의 생태계 파괴와 개발에 분노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FBI는 그를 17년간 추적했고, 미국 역사상 수사비가 가장 많이 든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됐다.

선언서로 단서를 잡은 FBI는 그를 체포했고, 재판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범행 일체를 인정했다. 법원은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교정시설에 수감돼 왔다.

천재였던 카진스키가 비뚤어진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하버드 재학시절 악명 높은 실험에 참여한 것이 한 가지 이유였을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당시 하바드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측정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그를 포함한 자원봉사 학생들에게 몇 시간 동안 극심한 언어 및 정서적 학대를 가했다. 이 실험은 3년 동안 지속됐었다.

또 일부에서는 카진스키가 어린 시절에 심한 두드러기로 오랜 기간 홀로 지낸 것이 그를 사회와 고립되게 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인생스토리는 ‘유나바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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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바머 영화 포스터


sino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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