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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트럼프 탓에 대법관 낙마한 갈랜드, 트럼프 '운명'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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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임기 말 연방대법관 후보 지명

트럼프 등 공화당 반대로 인준안 '불발'

바이든 정부 들어 법무장관으로 '재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국가기밀 유출 등 혐의로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되면서 트럼프와 연방검찰을 지휘하는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의 ‘악연’이 새삼 눈길을 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분리된 한국과 달리 미국은 법무장관이 곧 검찰총장을 겸한다. 따라서 갈랜드 장관이 곧 트럼프 수사·기소의 최고 책임자에 해당하며, 앞으로 열릴 재판에서 트럼프의 유죄를 입증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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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릭 갈랜드 미국 법무장관.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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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검찰은 9일(현지시간) 총 49페이지 분량의 트럼프 공소장 전문을 언론에 공개했다. 검찰에 따르면 트럼프는 핵무기 등 국방 관련 국가기밀이 담긴 문건을 퇴임 후에도 고의로 사저에서 보관해 온 혐의와 중앙수사국(FBI)의 사저 압수수색 당시 해당 문건을 몰래 빼돌리거나 그와 관련해 거짓 진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트럼프의 범죄 행위는 무려 37건에 달한다.

검찰은 “이들 문건은 중앙정보국(CIA)은 물론 국방부, 국가안보국(NSA), 국가지리정보국(NGIA), 국가정찰국(NRO), 에너지부, 국무부 등 미국 정부 내 여러 정보기구에서 생성한 것들”이라며 “공개될 경우 미국의 국가안보와 외교 관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2022년 트럼프의 기밀 정보 유출 의혹이 불거진 뒤 갈랜드 법무장관이 잭 스미스 변호사를 특별검사로 임명하면서 수사가 본격화했다. 스미스 특검은 최근 몇 년 동안은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일했으나, 과거 미국 주(州)검찰청 검사와 법무부 고위공직자로 오래 근무한 범죄 수사 전문가다.

갈랜드 장관이 연방검사가 아닌 특검한테 사건을 맡긴 것은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기밀 정보 유출 의혹이 불거졌을 때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4년 대선 이전에 정적인 트럼프를 제거하려 한다” “과거 트럼프와 악연이 있는 갈랜드 장관이 사감을 갖고 보복에 나섰다” 등 온갖 말이 많았는데 이를 불식하고자 특검 수사를 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미스 특검이 더 꼼꼼하고 끈질기게 사건을 파헤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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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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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갈랜드 장관의 악연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바마 대통령의 퇴임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2016년 초 앤터닌 스캘리아 연방대법관이 갑자기 숨졌다. 당시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임기도 얼마 안 남은 대통령이 무슨 대법관을 임명하느냐”며 후임 대법관 인선을 다음 행정부로 미룰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를 거부하고 당시 수도 워싱턴을 관할하는 연방항소법원 법원장이던 갈랜드 판사를 새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당시 공화당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이었던 트럼프은 오바마를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공화당 상원의원들한테 “임명동의안을 처리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실제로 공화당은 갈랜드 대법관 후보 인준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가 2016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당선되며 갈랜드 후보자는 자연스럽게 낙마했다. 무려 293일간 ‘후보자’ 꼬리표를 달았음에도 끝내 청문회장에 서보지 못한 채 원래 직장인 고등법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랬던 갈랜드 판사가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요직 중의 요직인 법무장관에 발탁되자 미 정가의 호사가들은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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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연방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메릭 갈랜드 판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하고 있다. 갈랜드는 공화당 반대로 대법관이 되지 못하고 낙마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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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당시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 갈랜드 장관이 이끄는 연방검찰이 트럼프를 수사해 기소하면서 공화당 일각에선 그의 이념적 편향성을 문제삼고 나섰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법치주의 원칙을 내던진 것 아니냐는 의심에서다. 심지어 수사 과정에서 바이든의 백악관과 갈랜드의 법무부 간에 모종의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음모론도 횡행하는 상황이다.

올리비아 돌턴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갈랜드의 법무부가 정치화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는 기자의 지적에 “바이든 대통령은 법치주의를 존중한다”고 답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법무부를 존중하기 때문에 이 사안(트럼프 기소)에 관해 어떠한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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