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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中 역대 최악 20%대 실업률… 공산당에 등 돌리는 청년들 [글로벌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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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에 자조하는 中 ‘링링허우’ 세대

16∼24세 5명 중 1명 일자리 없어

美 CNN 추산 젊은 실업자 1100만

공산당 핵심 지지층으로 불리던, 2000년 이후 출생자 ‘링링허우’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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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4월 실업률 통계는 중국공산당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16∼24세 실업률이 20.4%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16.7%였던 청년실업률은 올 1월 17.3%, 2월 18.1%, 3월 19.6%까지 오르다 4월 20%를 넘어선 것이다. 청년 5명 중 1명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5.2%)의 4배에 육박한다. 특히 7, 8월 사상 최다인 대졸자 1158만 명이 취업 시장에 뛰어들면 청년실업률은 더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CNN방송은 “자체 추산한 결과 올 3월 중국 청년실업자는 1100만 명 이상”이라고 전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세대의 불만 표출이 쏟아질 것을 두려워하는 중국공산당은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공산당 퇴진, 시진핑 퇴진’ 구호가 등장한 대학생 ‘백지 시위’도 단순히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이 반영됐다는 시각이 많다.

● 공산당 최대 지지층 링링허우의 ‘반기’

중국공산당에 대한 청년 반감은 중국에서 매우 낯선 현상이다.

2000년대 이후 출생자를 뜻하는 ‘링링허우(零零後)’는 중국공산당 핵심 지지층이었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인 링링허우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철저히 무장돼 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로 가슴 철렁한 중국공산당이 재발 방지를 위해 국가주의 교육을 강화한 세대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중국이 당한 수모의 역사를 교육해 민족주의 씨앗을 뿌렸다. 민족주의가 응집되면서 자연스럽게 애국주의로 굳어졌고 이는 공산당 지지로 이어졌다.

여기에 개혁개방 경제적 성과까지 더해졌다. 링링허우는 물론이고 1990년대 이후 태어난 30대 ‘주링허우(九零後)’까지 학창 시절 경제 성장 혜택을 고스란히 받았다. 교사들은 “공산당 덕택에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다”고 가르쳤다. 이런 심리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잘 파고들었다. 시 주석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 ‘중국몽(中國夢)’ 같은 말은 주링허우 링링허우의 피 끓는 가슴을 겨냥했다.

하지만 경제적 위기가 닥치자 믿었던 청년들이 공산당에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중국 전공)는 “링링허우 세대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완수한 이후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대부분 형제자매 없이 부모와 조부모, 외조부모 등 6명의 관리를 받으며 유복하게 자랐을 확률이 높다”며 “하지만 이들이 성인이 돼서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자 어렸을 때와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절망과 자조가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쿵이지(孔乙己) 문학’이 유행하고 있다. 청년들이 소셜미디어에 스스로를 ‘쿵이지’라고 부르면서 삶을 자조하는 글을 올린다. 쿵이지는 중국 근현대 작가 루쉰(魯迅)의 단편소설 ‘쿵이지’의 주인공이다. 청나라 말기 지식인 쿵이지는 과거시험에 연연하다 밥벌이조차 못 한다. 생계를 위해 도둑질까지 하면서도 선비 신분을 상징하는 낡은 장삼을 끝내 벗지 않았다. 고학력 대학 졸업장 굴레를 벗어 던지지 못하고 저임금 일자리를 거들떠보지 않는 스스로를 쿵이지에 빗대 자조하는 것이다.

한 청년은 소셜미디어에 “학벌은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라는데 나는 거기서 내려올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결국엔 장삼을 벗지 못한 쿵이지와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다른 청년은 “람보르기니를 운전하는 그대여, 열심히 살라고 내게 조언하지 마. 나는 밝고 명랑한 쿵이지, 힘없고 가난해 아등바등 살지”라는 노래 ‘밝고 명랑한 쿵이지’ 노랫말을 올렸다. 이 노래는 중국판 동영상 플랫폼 ‘비리비리’에 올라와 조회 수 400만 회를 넘겼지만 바로 삭제됐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열심히 공부한 끝에 쿵이지 신세가 됐다”는 한탄이 줄을 잇는다. “공부하지 않았다면 나사를 조이는 노동의 기쁨을 알고 만족했을 텐데” “윗세대가 ‘대학에 못 갔다’ 했을 때 우린 비웃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대학까지 나왔는데 출세를 못 했느냐’며 우리를 조롱한다” 같은 글이 이어진다.

● 탕핑 → 바이란 → 쿵이지

쿵이지 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최악의 실업난을 맞닥뜨린 청년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 변화와 흐름이 반영됐다.

2020년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자 중국 청년 사이에서는 ‘탕핑(躺平)’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탕핑은 ‘똑바로 드러누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아예 더는 노력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뜻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꿈을 실현하려 애쓰는 대신 최소한의 생활만 영위하겠다는 것이다. 탕핑이 중국공산당 체제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중국 당국은 탕핑이 청년층의 무기력함을 부추기는 말이라며 금지어로 지정했다.

탕핑보다 더 심각한 현상이 ‘바이란(擺爛)’이다. 바이란은 상황 악화로 자포자기하는 태도다. 원래 중국 농구 경기에서 크게 지고 있는 팀이나 선수들이 따라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을 뜻했다.

바이란은 지난해부터 유행이었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에서 탕핑은 옛말이 됐고 그보다 더 나쁜 상황을 뜻하는 바이란이 새롭게 뜨고 있다”면서 “달성할 수 없는 사회적 기대와의 싸움에서 무력함을 느낀 많은 낙담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히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중국 청년들은 불가능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에너지를 쏟느니 더 높은 곳을 향한 노력이나 성취도 본질적으로 포기하는 바이란을 결심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훙수에서 바이란을 검색하면 게시물 약 230만 건이 조회된다. 비리비리에서도 바이란 관련 영상이 적지 않다. SCMP는 “중립적 표현인 탕핑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 말고는 하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으로 무해하다”며 “그러나 완전히 포기하면서 악화하는 상황조차 받아들이겠다는 바이란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주링허우 링링허우 세대는 대학 입학할 무렵 탕핑을 택했고 학교를 다니면서 바이란을 선언했으며 졸업을 앞두고 사회에 나아갈 시기에는 쿵이지에 빗댈 수밖에 없는 암울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져 중국공산당 최대 파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단원 감소로 나타났다. 공청단 중앙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공청단원은 7358만 명으로 전년보다 13만2000명 줄었다. 공청단 핵심인 학생단원이 8.3% 급감했다. 기업 및 지역사회 단원은 증가했지만 유독 학생 단원만 감소한 것이다.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통제에 따른 경제 침체와 실직, 취업난 그리고 방역 완화 이후에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에 실망한 젊은층이 공산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연일 청년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졸업한 지 2년 미만 미취업 대졸자를 1년 이상 고용하면 고용 보조금을 1회성으로 지원한다. 많은 인력을 고용하는 기업에는 우대 대출금리를 제공한다. 중국 정부 영향력이 미치는 국유기업에는 대졸 신규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밑돌게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창업을 원하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창업 지원 대출과 이자 할인 혜택도 제공할 예정이다.

청년 취업률 제고를 위한 ‘100일 질주’를 추진하는 중국 교육부는 청년들에게 블루칼라 직종을 택하거나 농촌으로 이주할 것을 촉구한다. 시 주석은 지난달 5·4 청년절을 맞아 중국 농업대 학생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 “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일을 하며 민생을 이해하고 학문을 연마한다니 내 마음이 매우 기쁘다”면서 “새로운 시대 중국 청년은 이런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시 주석 지시에 따라 남부 광둥성은 2025년 말까지 대졸자 30만 명을 농촌으로 보내 자원봉사자 등으로 일하게 할 방침이다.

또 중국 정부는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지한 노점상을 다시 허용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청년 일자리도 늘리고 내수도 진작한다는 구상이다. 남부 최대 도시 선전은 9월부터 지정된 구역에 노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경제 수도’ 상하이도 특정 시간 지정된 구역에서 노점상 영업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점상 규제 완화 카드 역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15일 CNN은 “중국 지방정부가 실업률 감소를 위해 펼치는 노점 경제가 중국 경제를 살리는 동력이 되긴 힘들 것”이라면서 “중국 정부가 고용 창출이나 안정 및 질서 유지 방법으로 젊은이게게 ‘노점상이 돼라’는 것 이상을 찾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디지털 시대 기술을 갖춘 노동자나 대학 졸업자가 노점에 힘을 쏟는다면 절망적 징후”라고 지적했다.

● 청년 불만, 공산당에 위협 될 수도

이 같은 청년 취업 대책은 해결책이라기보다 구호에 가깝다. 국유기업 고용 확대, 신규 채용 민간 기업 보조금 지급, 청년 창업자금 금리 우대 등은 과거에 나왔던 대책이다. 청년층 농촌행(行) 독려도 실망감만 키우고 있다. 취업난이 심할 때마다 귀향과 농촌 구직 활동 카드를 다시 꺼내든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대혁명(1966∼1976년) 때 마오쩌둥(毛澤東)이 노동을 통해 학습하고 농촌에서 배우라는 취지로 지식인과 학생을 강제로 농촌에 보낸 ‘하방(下放)’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많다.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실업과 취업난 해결을 위한 당국 해법은 하방뿐”이라거나 “농촌으로 가는 것은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도 택할 수 있는 방법” 같은 비판 글이 속속 올라온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불만인 셈이다.

임 교수는 “젊은이들의 농촌행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 50, 60대 이상 세대는 문화대혁명 시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 필연적으로 퇴행적인 느낌을 줄 것”이라며 “중국공산당이 역사를 역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중국 사회 전반에 확산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청년 불만은 중국공산당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지난달 30일 “취업난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중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일자리를 잃거나 구하지 못한 청년층이 분노하게 되면 당국에 큰 악몽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홍콩 힌리치재단 앨릭스 카프리는 중앙통신사에 “지난해 11월 백지 시위의 의미는 중국 도시에서 분출된 분노”라며 “잘 교육받은 청년층이 들고일어난다면 공산당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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